신학교가 무슨 군 사관학교인가?

한국 최초 '청각장애인 사제' 탄생에 즈음하여

등록 2007.06.26 12:36수정 2007.06.27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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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으로 한국에서 처음 사제 서품을 받은 박민서 부제(가운데). ⓒ 연합뉴스

한국 가톨릭교회에 큰 경사가 생겼다. 청각언어장애인 박민서(39) 부제가 다음달 6일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사제로 서품된다. 세계적으로 15번째이고 아시아에선 처음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최초'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이미 몇 번은 생겨났어야 할 경사임에 분명하다. 특히 소외받은 자에게 다가가기를 무엇보다도 소중히 한다는 가톨릭이라는 종교적 차원에서 생각한다면 이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야 이런 경사가 났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행보를 한번쯤 부끄럽게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다.

박 부제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그동안 한국가톨릭교회가 신학교 입학에 있어서 얼마나 장애인에게 배타적이었는가를 보여주는 단편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제를 몇몇의 주변사제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솔직히 사제라는 직업이 팔과 다리라는 육체적 도구보다 영적 마음이라는 정신적 도구의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신체검사까지 하면서 신학교 입학기준을 엄격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지만 대답은 한결같다. 그리고 모호하다. "사제의 역할은 그것 이상이다. 그리고 그런 결정은 로마교황청의 권한이다"라는 식이다. 사제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리고 로마교황청의 권한은 그렇게 불변의 법칙인가?

먼저 사제의 역할에 대한 소고다. 예전에 한 후배가 시력이 너무 좋지 않아서 신학교 입학이 최종면접 단계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소리를 선배들로부터 듣고 와서는 푸념을 늘어 놓은 적이 있다. 물론 그는 지금 신학교를 잘 다니고 있다. 이런 고민이 본인 스스로가 아니라 주변에서 먼저 한다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사제라는 역할이 얼마나 역동적인지를 보여주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앞이 안 보여도 사제는 사제직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말 그대로 사제는 하느님의 말씀을 신자들에게 설명하는 영적인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사제는 너무나 대외지향적 리더십을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제들 스스로도 물론이고 신자들이 생각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상호작용들은 신학교 입학의 신체조건을 대한민국에서 사관학교 다음의 수준으로 만들고 말았다. 내가 본 신학생은 언제나 육체적으로 건강한 청년들이다. 하지만 이런 육체적 완벽함은 왠지 모를 씁쓸함을 비추고 있다.

미국 석사학위 받고 사제복 입을 수 있었던 박 부제

박 부제의 사제서품 과정을 살펴보면 장애인 사제에 대한 가톨릭 교회내 제도적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다. 먼저 이번 일을 자칫 한국가톨릭교회가 마음의 문을 연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박 부제의 사제서품은 철저히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값진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의 인생사를 보면 결코 한국 가톨릭이라는 제도적 차원에서 도움을 받은 것이 별로 없다. 그는 정순(53) 사제와 그의 해외 지인들을 통해서 자신이 가야할 길을 볼 수 있었고 그 꿈의 시작은 바로 미국이었다.

물론 미국에서도 장애인이 사제가 쉽게 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때론 동료들과 제도 자체의 따돌림이 있었지만 그는 농아종합대학인 갈로뎃대학을 졸업하고 뉴욕 성요셉신학교, 뉴욕성요한대학원을 거쳐 신학석사를 취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이미 취득한 학력자본 덕택에 사제의 옷을 입을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그에게 "과연 국내에서도 시작부터 이러한 것이 가능했을까"라고 묻는다면 답은 상당히 부정적일 것이다. 이는 한국 가톨릭교회의 구조적 단편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모습을 보면, 장애인도 얼마든지 사제가 될 수 있는 제도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한국가톨릭 교회의 사제는 사회에서 민주화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또한 일반인들은 과감히 말하지 못할 내용을 대변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사제역할의 역동성은 사제가 될 사람을 암묵적으로 제한하는 역효과를 낳기도 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사제의 역할은 가히 초인적이라 할 만큼 바쁘고 다양하다. 이제 본연의 사제 역할이 무엇인지를 되물어 보아야할 시점이다. 비록 역동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사제라 할지라도 영적인 도움을 신자들에게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그 역할에 장애인이 배제되어야 할 이유는 결코 없다.
#가톨릭 #사제 #청각장애인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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