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사제의 역할을 줄이자

[재반론] 오종훈 기자의 반론에 대하여

등록 2007.06.27 14:46수정 2007.06.27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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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여성이 가톨릭사제가 될 수 없다는 것에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세상 모두가 그렇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톨릭에서도 굳이 구체적인 이유를 제시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던 시대가 있었다.

조금 시대가 변해 여성의 사제직 제한에 의문이 등장하였다. 가톨릭교회는 성서에 근거하여 이를 설명하였다. 예수는 남성이며 또한 예수의 12제자가 모두 남성이기 때문에 사제직은 남성이 수행해야 할 임무라고 가르쳤다. 이유를 들으니 그런 것도 같았다. 그래서 또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생각은 시대에 따라 다시 변하게끔 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설명을 그대로 믿지 않았다. 일종의 의심이고 일탈이다. 수긍하기에는 교회의 입장이 너무 고전적이라는 것이다. 상호갈등의 시기가 도래하였다.

그러자 가톨릭교회는 사제직의 남성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제의 역할을 기형적으로 확장하는 이상한 시기를 초래하고 만다. 초인적인 사제역할이 표출될수록 여성이 사제직을 수행하기가 힘들 것이라는 그릇된 오해는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타당할 것이다. 여기에 장애인이 빈틈을 찾는 것은 말 그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만큼 대한민국의 사제는 할 일이 많다.

내가 쓴 글은 장애인이 빈틈을 찾을 수 없다는 것과 이런 상황을 대다수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가톨릭교회의 현실을 비판하는데 주목적이 있었다. 이런 의도였기 때문에 박민서 사제에게 축하의 인사를 할 이유는 없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는 그가 축하받을 일을 안했다는 것이 아니라 내 글은 그를 축하하거나 비판하는 글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가톨릭교회의 사제상이 과잉해석되었으며, 이 때문에 지금까지 여러 가지 자격기준이 의도적으로 강화된 것은 아닌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자 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오마이뉴스>는 나에게 유일한 소통의 장소다. 오종훈 기자가 말씀하신것처럼 '방법과 시기'를 상황적으로 따진다면 <오마이뉴스>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마이뉴스> 논조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다. 시스템이 기존언론하고는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다들 축하할 때, 어디선가의 잡음이 아주 중요한 변화의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잡음을 단순한 소음으로 무시하고 방치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단지 축하받을 곳의 물을 흐린다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류가 방치한 불평등은 수도 없다.

다시 글로 돌아가자. 개인적 차원에 대한 보충설명을 하고자 한다. 물론 청각장애인 사제가 탄생하기 위해서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를 '제도'라고 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내가 그들의 수고를 무시했단 말인가? 결코 아니다.

정확히 말해 나의 글은 그들과는 상관없는 글이기 때문이다. 난 전반적인 상황을 '짚어볼 시점'이 등장하였음을 강조하고자 했다. 개인적 차원이란 것은 말 그대로 '지인', 그리고 '주교' 등 사람의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것이다. 쉽게 말해 박민서 신부가 여러 지인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런 상황이 애초에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즉 제도적으로 정착되지 못하니, 이런 결정을 내린 교회 관계자들이 '대단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사제는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되짚어야 할 것은 역시 사제의 역할이다. 오종훈 기자뿐만 아니라 여러명이 문의를 했다. 핵심은 사제직에 대한 나의 이해가 부족한다는 것인데, 결국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가 핵심이다. 그리고 여러 부연설명을 하신다. 고해성사가 어떻고, 복음전파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 여튼 소임이 남다르다는 해석이다. 싱겁게 말하면 기자는 이런 내용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직분이 자격배제를 단순히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인류는 정말로 백인이 흑인보다 생물학적으로 뛰어난 줄 알았다. 이것이 잘못된 과학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여성이 사관학교에 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시대가 있었다. 여성이 사관학교에 입학한지는 고작 10년전부터이다.

장애인이 사제직을 수행하기 힘들다는 것은 말 그대로 사제직의 과잉해석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휠체어를 탄 사제가 사제직을 수행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본다. 우리가 백인과 남자를 대단히 여긴 것처럼, 사제직 자체를 대단히 여긴다면 이는 반드시 배제요인들을 생산할 것이라는 점을 유의하기 바란다.

하지만 나의 기사는 단순히 육체적인 완벽성만을 문제삼는 것은 아니다. 박 신부의 사례는 어디까지이나 사례일 뿐이다. 신학교에 입학을 하기 위해서는 육체적인 부분만이 아닌 여러 가지 요소들을 검증 받는다. 물론 이는 교구마다 다르고 주관하는 관계자들의 입장마다 다르다. 나는 이 검증요소들이 과연 타당한것인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요소들이 사제직을 과연 온전하게 하는 필수요소인지를 묻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전적으로 나의 생각이지만 만약 교회의 사제직이 그렇게 엄격하여 장애인이 도무지 수행할 수 없다면 차라리 사제직의 의미를 다시 정립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세상을 향한 교회의 참된 걸음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사회의 사제가 지금보다 훨씬 덜 역동적인 것이 바람직하다는 개인적 소견이다. 영적인 도움을 주는 것도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직분에 사회적 활동성까지 가미되어 이것이 사제가 되는 자격으로 재구성된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박민서 신부의 등장을 재차 주목하고자 한다. 오종훈 기자의 바램처럼 이것이 한국교회의 변화의 물줄기로 이어지길 기대하지만, 적어도 본인의 짦은 판단에 따르면 현재의 제도적 상황에서는 그 물줄기가 아주 제한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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