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일해 69만원, 어떻게 사나?"

노동자들 "최저임금 93만원 돼야"...결국 85만원으로 결정

등록 2007.06.27 11:03수정 2007.06.2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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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소속 노동자 2500여 명이 26일 오후 3시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최저임금 936,320원 쟁취! 최저임금 현실화 쟁취! 민주노총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 2500여 명이 26일 오후 3시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최저임금 936,320원 쟁취! 최저임금 현실화 쟁취! 민주노총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오마이뉴스 선대식
"한 달 일해서 69만원 번다. 이렇게까지 해서 살아야하나? 지금 우울증 걸려서 삶의 회의를 느끼고 있다."

지난 26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 앞에서 만난 권숙자(가명·53)씨의 하소연이다. 권씨는 "지금 거지처럼 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6개월 전부터 서울역 앞 대우빌딩에서 청소를 하고 있다.

권씨에게 노동 강도에 대해 묻자 "마대걸레를 손으로 짜야 하는데 관절에 무리가 갈 정도"라고 말했다. 권씨는 하루 10시간 씩 주5일 일한다. 하지만 점심시간이 포함 안돼 주 40시간만 인정된다. 상여금이나 연월차 휴가는 '당연히' 없다.

이렇게 한달 일하면 76만2000원을 받는다. 현재 주 40시간 기준 최저임금은 월 72만7320원과 큰 차이가 없다. 그마저도 5대 보험을 제하면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69만원에 불과하다. 서울 대치동 ㅅ아파트 경비인 권씨의 남편도 벌이가 비슷하다.

대학 4학년인 아들까지 세 식구가 140만원으로 한달을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집은 이미 7평짜리 전세로 옮겼다. 권씨는 "3000원짜리 옷 사 입는다"면서 "하루하루 겨우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권씨는 "최저임금으로 생활이 되느냐"고 따졌다.

"평균 임금의 50%" vs "최저임금 동결"

"최저임금 현실화"를 요구하는 권씨의 외침은 외롭지 않았다.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 2500여 명은 이날 오후 3시 최임위 앞에서 '최저임금 936,320원 쟁취! 최저임금 현실화 쟁취! 민주노총 결의대회'를 열었다.


먼저 발언대에 선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우리는 돈을 그냥 달라는 게 아니라 뼈 빠지게 일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음 놓고 일하고, 쉬고, 가족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고 외쳤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이 26일 오후 3시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열린 '최저임금 936,320원 쟁취! 최저임금 현실화 쟁취! 민주노총 결의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이 26일 오후 3시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열린 '최저임금 936,320원 쟁취! 최저임금 현실화 쟁취! 민주노총 결의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오마이뉴스 선대식
같은 시각 최임위에서는 2008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5차 전원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사용자, 노동자, 공익 위원 9명 씩, 모두 27명으로 이뤄진 최임위는 4월부터 6월까지 이듬해에 적용될 최저임금안을 심의하고 전원회의에서 결과를 낸다. 그 결과는 6월 29일까지 노동부장관에게 제출하도록 되어있다.


벌써 5년 째 6월 말 최임위 앞에서 "최저임금 현실화"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집회가 이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08년 최저임금이 결정되기까지 이날 전원회의와 27~28일에 열리는 6차 전원회의가 남아있었다.

올해도 사용자 쪽과 노동자 쪽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맞섰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 187만여 원의 50%인 93만6320원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덕순 여성연맹 부위원장은 "현재 최저임금인 72만여 원(주 40시간 기준)으로는 먹고 살 수가 없다, 부채만 늘어간다"고 밝혔다.

반면 사용자 쪽은 "현재 최저임금 수준이 이미 저임금 단순 노동자의 최저 생계보장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달 30일 "최저임금을 올린다면 국내 사업 기반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전원회의 때 '2.4%인상'이라는 수정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주40시간 청소해서 받는 월급= 74만7500원"

이날 잡회한 참가한 노동자가 '최저임금 월 93만6320원 쟁취'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이날 잡회한 참가한 노동자가 '최저임금 월 93만6320원 쟁취'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오마이뉴스 선대식
그렇다면 실제 최저임금사업장의 노동자의 현실은 어떨까? 2007년 법정 최저임금은 시간 당 3480원, 주 40시간 기준으로는 72만7320원이다. 주 44시간 사업장의 경우 78만6480원.

주40시간 경북대에서 청소를 하는 정봉자(63)씨는 "돈을 빌려야 한달을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주40시간 청소를 해서 받는 돈은 74만7500원. 교통비는 물론 밥값도 안 나온다.

일은 고되다. 분류배출이 잘 안돼 모든 쓰레기통을 엎어서 허리를 숙인 상태에서 일일이 분리수거를 해야 한다. 정씨는 "허리, 무릎, 다리 안 아픈 곳이 없다"며 "병원비로 많은 돈을 쓴다"고 밝혔다.

아들, 딸을 출가시키고 혼자 사는 정씨는 "자식들 공부시키느라 대출받은 돈을 갚아야 한다"며 "매일 나물과 김치에 밥을 먹어도 돈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 역사 청소를 하고 있는 최은자(가명·53)씨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산다"며 "죽지 못해 산다"고 밝혔다.

하루에 8시간 씩 화장실을 포함해 역사 내 모든 시설을 닦고 쓸면 온몸이 땀에 젖는다. 최씨는 "다리, 어깨, 팔 파스 안 바르는 곳이 없다"며 "약값이 많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주 48시간 일하는 최씨는 최저임금에 시간외수당, 식대가 더해진 100여 만원을 받는다.

최저임금만 주는 다른 곳보다는 낫지만 형편이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현재 14평 임대아파트에서 비정규직인 아들과 같이 살고 있지만 그나마 아들의 벌이가 일정하지 않아 최씨의 수입으로 생활하고 있다. 최씨는 "최저임금이 93만원으로 올라도 너무나 부족하다"고 말했다.

결국 최저임금 8.3% 올라, 노동계 내년을 기약

지난 5월 통계청이 발표한 '2007년 1/4분기 가계수지동향'에 따르면 전국 2인 이상 도시 근로자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376만4000원이었다. 또한 3인 가구 최저생계비는 288만6700원이었다.

이해삼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은 "우리의 요구조건인 93만6320원은 너무나도 소박한 것"이라며 "사용자 쪽에서 동결을 주장한 건 말도 안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사용자 쪽에서 최저임금을 올리면 회사 망한다고 떠들고 있다"며 "최저임금 올라서 망한 회사는 한 곳도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발의대회가 끝난 저녁 8시 노동자들이 최임위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면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철문을 뜯어내자 경찰이 물대포로 진입을 저지하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이 결정 날 때까지 농성을 이어나갔다.

결국 27일 새벽 최임위는 2008년 최저임금을 8.3% 인상된 78만7930원(주 40시간 기준)으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시급 기준으로는 3770원. 주 44시간 근무자의 경우 최저임금은 85만2020원이다. 올해도 노동계가 요구한 노동자 평균임금의 50%인 93만6320원은 이뤄지지 못했다. 노동자들의 요구는 결국 내년 6월 최임위를 기약하게 됐다.
#최저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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