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선수들, 밥·빨래에 성추행까지..."

[토론회] 그들에게 인권은 있나... "소속 회사 대응에도 문제"

등록 2007.06.27 16:33수정 2007.06.28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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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운동선수들이 겪는 고충은 많다. 제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여자들은 한달에 한번 주기적으로 생리를 한다. 생리통이 심해도 선뜻 감독에게 말하지 못한다. 남자 감독이라 부끄럽고 창피스럽다. 결국 (경기를) 강행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시합에 지면 야단맞는다. 이것은 아주 가벼운 예를 든 것일 뿐이다." (국가대표 농구선수 출신 박찬숙씨)

"이번 성추행 사건이 박명수 전 감독이나 우리은행만의 문제인가. 선수들이 작전타임에 벤치로 들어올 때 남자 감독이 여자 선수들의 엉덩이를 툭툭 친다. 그들은 20∼30대 여성이거나 심지어 주부이기도 하다. 안 될 일이다. 훈련 도중에는 여자 선수들의 가슴을 지휘봉으로 찌르거나 손으로 꼬집는 등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일도 있다." (김동훈 <한겨레> 스포츠부 기자)


여자 운동선수들에게 인권은 있는 것일까.

박명수 전 우리은행 감독의 성추행 사건이 불거지면서 여자 운동선수들의 코트 바깥 생활이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이들의 고충이 한 자리에서 터져 나왔다. 한국여성민우회와 문화연대가 27일 오전 서울 정동 배제학당 학술지원센터에서 연 토론회에서다.

'스포츠 하는 여성을 위협하는 폭력과 차별'이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는 국가대표 농구선수 출신인 박찬숙씨와 스포츠 담당 기자, 학계 인사 등이 참석해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여자 운동선수들의 실태를 꼬집었다.

참석자들은 "여자 선수들에 대한 성추행이나 폭행은 오래된 스포츠계의 오랜 악습"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 ▲성폭력 사건에 대한 전담 기구 마련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 예방교육 실시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여자 선수에게 추가되는 인권 침해

a 한국여성민우회와 문화연대는 11일 '여자 운동선수들에 대한 폭력과 차별'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는 국가대표 농구선수 출신 박찬숙씨 등이 참석해 스포츠계 안팎에서 일어나는 여자 운동선수들의 인권 실태를 꼬집는 사례가 공개됐다.

한국여성민우회와 문화연대는 11일 '여자 운동선수들에 대한 폭력과 차별'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는 국가대표 농구선수 출신 박찬숙씨 등이 참석해 스포츠계 안팎에서 일어나는 여자 운동선수들의 인권 실태를 꼬집는 사례가 공개됐다. ⓒ 오마이뉴스 이민정

a 국가대표 농구선수 출신 박찬숙씨.

국가대표 농구선수 출신 박찬숙씨. ⓒ 오마이뉴스 이민정

박찬숙씨는 자신의 선수시절을 떠올리며 "여자 선수들이 이성관계, 집안문제 등을 선뜻 남자 감독에게 털어놓지 못한다"며 "매니저가 있지만, 이들 역시 감독이 추천하는 이들이기 때문에 선수들이 속내를 다 털어놓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여자 감독이 있었다면 여자 선수들의 고충이 조금이라도 덜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박씨는 "여자 프로농구의 역사가 10년이 돼가지만, 지금까지 여자 감독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며 "능력, 결단력 부족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지만, 정작 여성들에게 감독이 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고 스포츠계를 질타했다.


박씨는 지난 11일 "우리은행 여자 농구팀 감독 공모에서 탈락한 것은 스포츠계의 심각한 여성 차별 때문"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출한 바 있다.

김동훈 <한겨레> 기자는 "2년 2개월간 스포츠 담당을 하면서 선수들에 대한 인권 침해가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여자 선수라고 해서 폭력의 강도가 약하지 않다"며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남자보다 더 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외로 전지훈련을 가면, 남자팀의 경우 현지에 객실 청소부가 있다. 하지만 여자 선수들의 경우, 1년∼3년차 후배 선수들이 밥 짓고 빨래하다가 돌아온다. 혹시나 경기에서 진 뒤 가는 전지훈련이라면 분위기는 더욱 살벌하다. 선수 입장에서는 차라리 안 가는 것이 마음 편할 것이다."

김 기자는 "회식에 가면 여자 선수들이 밥을 먹다 말고 고기를 굽는 등 감독 옆에서 시중을 든다, 남자 선수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도자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며 "선수들을 위한 성희롱 예방 교육은 있지만, 정작 지도자들을 위한 그것은 없다"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은행 폭력 감독 보호하려고 소속 선수들 팽개쳐"

a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부 교수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부 교수 ⓒ 오마이뉴스 이민정

발제를 맡은 정희준 동아대 교수는 박 전 감독의 성추행과 관련해 "박 전 감독은 19년간 우리은행을 이끌면서 선수선발권, 선수연봉책정 등 전권을 거머쥐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여자 선수들이 감독에게 저항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무모한 짓"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우리은행이 이번 사건에서 보인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며 "박 전 감독의 성추행이 처음이 아님에도 우리은행측은 박 전 감독에 대한 해고, 징계없이 사표를 받는 것으로 공론화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은행이 폭력감독 보호를 위해 소속 선수들을 팽개친 셈"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번 사건 이후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이 개설한 '핫라인'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어제 직접 전화를 해봤지만, 전담 상담사조차 없는 등 선수들의 고민을 적극적으로 대응할 자세가 돼있지 않았다"며 "기존의 상담전화와 다를 바가 없었다"고 말했다.

박봉정숙 한국여성민우회 사무처장은 "박 전 감독은 성폭력특별법에 의해서만 처리될 뿐 직장내 성희롱에 대해서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며 "우리은행이 정확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박 전 감독에 대한 처벌을 강조했다.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직장내 성희롱 발생이 확인될 경우 가해자에 대한 징계 및 이에 준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5백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박봉 사무처장은 이 외에도 문화관광부의 정기적인 실태관리 및 감독,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 예방교육 등 구단 및 연맹의 노력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박명수 #성추행 #우리은행 #여자 운동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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