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먹을거리가 우릴 병들게 한다

<희망의 밥상>을 읽고 우리 밥상을 들여다 보자

등록 2007.06.28 10:59수정 2007.07.03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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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의 사람들은 식료품점에서 반조리된 냉동식품을 사다 먹거나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한다. 하지만 그 먹을거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어떻게 재배되었으며 어떻게 조리되었는지, 어디서 나는 재료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른 채 그 음식을 먹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먹는 음식이 얼마나 먼 거리를 이동해 왔는지, 그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자원이 투입되었는지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개발 논리와 식량 증산이라는 목표 아래 우리 농촌은 비료와 농약의 대량 살포로 환경을 변화시켜 왔다. 유전공학이라는 이름으로 개발된 식물(위는 토마토이고, 뿌리는 무인 식물)을 감탄 어린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런 길만이 인류의 미래를 책임질 거라 교육 받고, 그것을 믿어 의심치 않던 시절도 있었다.


사람은 먹지 않고 살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희망의 밥상>은 이러한 이야기들을 쉽고 재밌게 풀어놓았다. 제인 구달 박사는 우리가 매일매일 먹고 있는 것들이 어떻게 생산되고 있으며 어떤 경로로 우리 밥상에까지 올라왔는지, 우리의 건강과 나아가 지구의 건강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동물들은 이미 알고 있다

a 제인 구달 지음. 김은영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1만1000원

제인 구달 지음. 김은영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1만1000원 ⓒ 사이언스북스

<희망의 밥상>에서 제인 구달 박사는 농산물의 생산과 유통을 장악하고 있는 거대 기업들로 인해 지역 농민들이 농사짓는 것을 그만두거나 거대 기업의 소작농으로 전락하고 있으며, 이익만을 앞세우는 거대 기업들의 농간에 소비자의 건강마저 위협받고 있는 현실을 조목조목 밝히고 있다.

거대 기업들은 대량 생산을 위해 지역 주민들을 몰아내고, 숲을 밀어 농경지로 만든다. 과학 기술력을 총동원해 만든 유전자 변형 농산물(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GMO)로도 모자라 각종 성장 호르몬제와 화학 비료, 항생제를 사용해 농작물을 길러낸다.


축산물의 경우 좁은 공간에 많은 수를 몰아넣고 항생제와 성장 호르몬제가 범벅이 된 동물성 사료를 먹여 각종 질병에 노출된 소나 돼지, 닭을 만들어 낸다. 수산물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미국산 콩 81%, 옥수수 40%, 면화 73%가 유전자조작으로 생산된다. 살충제 사용이 줄어 환경에 좋다지만 그 효과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동물들은 알고 있다. 논밭에 뿌려진 살충제가 해충에 가서 닿는 양은 0.1%에 불과하다. 그렇게 하여 매년 300만톤의 농약이 지구상에 뿌려지고 있다.


젖소는 유전자조작 옥수수와 보통 옥수수 가운데 후자를 먹는다. 야생 너구리와 사슴, 멧돼지 역시 농약을 사용하는 밭과 유기농 밭이 있으면 유기농 밭만을 골라 습격한다. 동물들은 다 알고 있는데, 사람만이 모르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열매를 맺지 않는 불임씨앗을 먹는 것이다.

축산업도 다를 바 없다. 한마디로 공장식 사육장. 동물들을 사물 또는 기계로 취급한다. 닭, 오리, 칠면조, 돼지, 소 등 이것들 모두는 더럽기 짝이 없는 좁은 공간에서 일체의 불필요한 운동과 신진대사가 배제된 채 달걀과 고기와 우유만을 생산해낸다.

닭은 부리와 발톱을 자르고 밤낮 주기를 바꾼다. 수평아리는 산 채로 빻아져 닭모이로 된다. 젖소에게 젖을 더 짜내기 위해 호르몬을 주사하고 인공수정으로 해마다 송아지를 빼낸다. 슈퍼돼지는 관절염, 슈퍼닭은 심장질환에 시달린다. 모두가 인간의 탐욕에서 빚어진 기괴한 현실이다.

제인 구달 박사는 실제 거대 기업에서 생산해 낸 농작물 및 축산물들이 값이 싼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없어진 숲을 되살리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과 그곳의 농작물들을 키우기 위해, 운반하기 위해 사용되는 화석 연료 비용, 엄청난 양의 물, 온갖 약물로 범벅이 된 농축산물을 먹은 우리와 자손이 치러야 할 각종 의료비 등은 전혀 계산되어 있지 않다.

또 거대 기업들에 의해 전 세계 모든 곳의 밥상이 단일화되면서 지역적 특이성을 가진 먹을거리들이 몰락했다. 뿐만 아니라 그 지역 고유의 문화와 지역 사람들의 건강까지도 함께 몰락할 위기에 처했다. 실제로 세계 최고의 장수촌으로 일컬어지던 일본의 오키나와 현은 서구식 패스트푸드들로 인해 두부와 야채 위주의 전통 건강식을 버리게 됨으로써 심각한 비만과 당뇨, 심근경색 등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 밥상에 변화 불러일으킬 제인 구달의 메시지

제인 구달 박사는 비만이나 당뇨, 심장 질환 같은 만성적인 질환에서부터 에이즈, 사스, 조류 인플루엔자 같은 전염성 질병까지,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수많은 질병들이 바로 우리가 잘못된 먹을거리를 택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단지 나 하나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아이가 잘 살기 위해, 그리고 그 후대의 아이들이 잘 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식습관을 되돌아보고 우리 밥상에 진정한 변화를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밥상에 일대 혁명을 불러올 중요한 생활 지침을 제안한다.

제인 구달 박사는 최근에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내 고장 식품 먹기 운동('local foods' movement, 신유기농 운동('new organic' movement)이라고도 한다)에 주목한다. 내 고장 식품 먹기 운동이란 말 그대로 내 고장, 내 지역에서 난 농축산물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제철에 난 싱싱한 과일과 채소를 먹게 될 것이며 지나치게 먼 거리까지 운송하기 위해 식품에 처리를 하고 과도하게 포장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도 해결될 수 있다. 또 내 고장 식품 먹기 운동이 지역 재배 농가나 축산 농가를 살리는 길이며 결국에는 기업형 농장에서 기른 식품들에서 볼 수 있는 농약 잔류물과 항생제, 성장 호르몬, 그리고 감춰진 유전자 변형 농산물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 운동은 한때 우리나라를 휩쓸었던 '신토불이(身土不二)'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제인 구달 박사는 아이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학교 급식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대부분의 가정이 핵가족화 되고 부모 모두가 생업 전선에 뛰어들게 되면서 아이들은 학교에서 일괄적으로 지급되는 급식을 먹고 성장한다. 이러한 급식에 의존하는 아이들이 비만과 영양 부족이라는, 일견 서로 반대선상에 있을 것 같은 건강상의 문제에 만성적으로 시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 당국과 학부모들은 교과 과정에만 지대한 관심을 쏟을 뿐 정작 건강과 직결되는 먹을거리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며 무지하다고 제인 구달 박사는 말한다.

제인 구달 박사는 이 책에서 우리 아이들의 건강한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영양가 있으면서 환경 친화적인 급식 식단을, 비용이 크게 부담되지 않는 범위에서 실제적으로 꾸릴 수 있는 방법을 상세하게 알려준다.

국내에서도 우리 아이들에게 내 고장 농산물을 사용한 질 좋은 급식을 제공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요즘, 제인 구달 박사가 들려주는 실제적인 지침은 우리 아이들의 건강한 밥상을 위한 실용적이면서 효과적인 가이드라인이 되어 줄 것이다.

제인 구달 박사님은 이 책에서 나 한 사람이 과연 무슨 힘이 있겠냐며 주저앉지 말라고 독려합니다. "소비자가 세상을 바꿉니다." 소비자가 원하면 바뀔 수밖에 없는 게 상업이고 그러면 제조업과 농업도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을 읽고 모두 나름대로 작은 혁명을 일으키시기 바랍니다. 그 작은 혁명의 물결이 서로 모이기 시작하면 조만간 적지 않은 파도를 일으킬 겁니다. 그 파도에 이웃마을의 사람들이 동참하기 시작하면 해일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소비자가 왕'이라는 구호가 결코 헛되지 않다는 걸 실감하게 될 겁니다. 기왕에 불기 시작한 웰빙 바람이 나만의 건강과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주변 환경, 그리고 내 후손을 위한 보다 현명한 웰빙의 태풍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 최재천 '추천의 글'


희망의 밥상

제인 구달 외 지음, 김은영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6


#제인구달 #밥상평화 #희망의 밥상 #사이언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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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말이 적어야 하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하고, 머리에 생각이 적어야 한다. 현주(玄酒)처럼 살고 싶은 '날마다 우는 남자'가 바로 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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