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225회

등록 2007.06.29 08:31수정 2007.06.29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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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문을 진즉부터 가지고 있었기에 자네가 그렇게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었군.”

풍철한이 더 이상 자신은 생각이나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지 않고, 함곡의 판단에 무조건 따르려한다고 한 말을 지적한 것이었다.


“자네는 나를 빼놓고 다른 사람을 만난 적이 없어. 그럼에도 자네는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좌총관의 보고나 다른 사람들의 보고를 듣지 않았음에도 이미 그 다음의 수순을 무의식중에 흘리기까지 했거든….”

사람이란 아무리 완벽해도 자신의 머리 속에 들은 사실을 완벽하게 감추지 못한다. 어느 순간 자루 속에 든 송곳처럼 삐쭉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네가 지금 이것과 같은 것을 보는 모습을 두어 번 보았지. 처음에도 의아스러웠어. 하지만 자네를 의심하기 시작하자 이 운중보 내부의 누군가가 계속 전해주고 정보라는 생각이 들더군. 그래서 자네가 그렇게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고….”

“역시 자네답군.”

“그리고 나는 결정적으로 둘째 아우가 가져온 여러 가지 정보를 취합해 보았다네. 그랬더니 결론이 나오더군.”


“자네 눈을 끝까지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네. 그래…. 자네가 궁금한 것이 무엇인가? 아니지…. 자네는 이미 나에게 다섯 가지 질문을 했네. 그것부터 대답해 주는 것이 좋겠지? 그러면 대충 자네의 의구심도 정리되겠나?”

함곡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풍철한이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모두 대답할 생각인 것 같았다. 그것으로 보아 함곡은 어느 순간 풍철한에게 모두 털어놓으려고 작정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머리가 자네만큼 명석하지 않아 좀 더 쉽게 설명해 주길 바라네.”

말이란 때로 하는 사람의 의도와 듣는 사람의 이해가 매우 다를 수 있다. 지금 풍철한의 말도 그렇다. 숨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면 듣는 함곡 쪽에서는 장황한 설명을 해주길 바란다고 이해할 것이었다.

허나 함곡은 풍철한이 한 말의 의미를 충분히 알아들었다. 풍철한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더 이상 그에게 감추거나 속이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이런 때도 얄팍하게 속이려 든다면 용서할 사람이 많지 않다.

“좋으이…. 우선 이곳에 자네를 끌어들인 사람이 내가 아니냐고 물었지? 물론 나는 자네가 필요했네. 자네는 어렸을 적부터 나의 든든한 방패가 되어 주었지. 나는 이 세상에서 오직 자네만이 나를 지켜줄 사람이라 생각했네.”

“자네의 호위무사가 필요했던 모양이군.”

“그렇게 비난한다 해도 부인하지는 않겠네. 충분히 그런 목적이 있었으니까…. 나는 자네를 어떻게 이 운중보로 끌어들일까 고민했네…. 하지만 누군가가 그것을 먼저 해결해 주더군. 정작 자네를 이곳으로 부른 사람은 내가 아니네. 그럴 생각은 가지고 있었지만 자네를 끌어들인 사람은 정작 내가 아니란 말이네.”

“보주인가?”

“물론이네. 자네를 이곳에 부른 사람은 보이는 그대로 보주였네.”

“왜…?”

풍철한의 다그침에 함곡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도 모르네. 나 역시 자네를 보주가 왜 불렀는지 매우 궁금하네. 분명한 것은 자네가 내 친구이고 나와 같이 철담어른의 시해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자네를 부른 것만은 아닐 것이란 의구심은 가지고 있네. 그래서 나는 자네와 보주 간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까지 했다네.”

“어처구니가 없군. 운중보에 들어오기 전까지 보주와 나는 일면식도 없었고, 연락을 주고받은 바도 없었던 사이였네. 전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단 말일세. 그런데 보주가 다른 의도를 가지고 나를 불렀다는 말인가? 정말 점점 더 머리 속이 복잡해지는군.”

풍철한 역시 이상한 생각이 들기는 했다. 하지만 되도록 그저 철담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을 불렀으리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려 했다.

“그렇게 심각할 필요는 없네. 적어도 나쁜 의도로 자네를 불렀다고 생각하지는 않네.”

그 말에 풍철한은 눈을 치켜뜨면서 불쑥 물었다.

“이 엄청난 사건들을 보주와 손잡고 벌이는 중인가?”

함곡은 잠시 풍철한을 애매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무슨 뜻인지 충분히 납득하면서도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스런 모습인 것도 같았다. 허나 곧 그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만 아니네. 보주에 대해서는 자네가 직접 알아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네. 자네를 부른 이유도 알아보는 것도 좋지.”

보주를 직접 만나보라는 말이다. 가장 확실하고 명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다.

“다만 내가 누구와 손을 잡고 이 사건을 진행하는지는 잠시만이라도 궁금증을 덮어두게. 설명을 하려면 매우 복잡하고 쉽게 납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네.”

함곡은 매우 진중하게 부탁을 하고 있었다. 풍철한이 다그친다면 말해줄 수 있지만, 그리고 언제라도 말해 줄 용의가 있지만 조금 기다려 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었다. 풍철한은 함곡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좋네…. 그럼 자네가 이런 사건을 벌이는 목적은 무언가?”

함곡의 대답이 나오기 무섭게 다시 풍철한이 묻자 함곡은 나직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너무 그렇게 죄인 취급하듯 다그치지 말게. 어차피 내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하지 않았나?”

풍철한 역시 미안한 마음에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함곡이 입가의 미소를 지으며 얼굴을 진중하게 굳혔다.

“내 목적은 동림당의 복수이네.”

수년 전부터 중원 각지에 퍼져있던 동림당원들은 태반이 죽음을 당했다. 역모죄로 몰려 죽은 이가 있는가 하면 다른 죄를 꼬투리 잡아 관청의 감옥에서 모진 고문이나 병으로 죽은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그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암살되거나 실종되었다.

“그럴 듯 하군. 그렀다면 자네의 목적은 추태감에게 가 있는 것인가? 동창과 득세하고 있는 환관들에 대한 복수란 말인가? 허나 내 눈엔 단순히 동림당원의 복수만을 위함이 아닌 것 같아 보인다네.”

“그럼 자네 눈에는 어떻게 보이나?”

“자네의 목적은 이 중원의 모든 것을 암중에서 쥐고 흔드는 회(會)의 붕괴지. 그래서 보주가 자네에게 혈옥(血玉)으로 깎아 만든 목단화 세 송이…. 즉 회의 신물을 목갑에 넣어 보낸 것이 아닌가?”

그 말에 함곡이 화들짝 놀라며 눈을 크게 치켜떴다.

“자네…?”

“걱정 말게…. 자네 아내가 가지고 있으니까…. 종아우가 그것을 목갑에서 빼내어 제수씨에게 주었다고 하더군.”

생사판 종문천을 말함이다. 함곡의 얼굴에 뭔가 불안한 표정이 어렸다.

“혹시…. 자네…. 종아우가 그 목갑 안에서 뭔가 종이를 발견하지 않았다고 하던가? 뭐 혈서라든가…. 편지 같은 것 말이네.”

매우 조심스런 질문이었다.

“혈서…? 누가 자네에게 혈서를 보내기로 되어 있나?”

“으음…. 정말 다른 것은 없었다고 하던가?”

함곡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재차 조심스럽게 물었다. 풍철한이 매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물론이네. 둘째 아우는 성격이 괴팍하기는 하지만 그런 것을 숨길 사람이 아니네. 그런데 나는 그 혈서라는 것에 매우 흥미가 당기는군. 왜 자네에게 회의 신물 뿐 아니라 혈서인가 하는 것을 보냈는지 말이네….”

함곡은 고개를 끄떡였다. 어차피 말해주고자 했던 것을 숨길 이유가 없다는 태도였다.

“회의 신물이 담긴 목갑은 보주가 보낸 것이 아니네. 보주는 나에게 아무 것도 보내오지 않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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