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7월은 담장에 포도 익어가는 시절

힘들이지 않고 인심 쓰게 됐네

등록 2007.07.03 18:49수정 2007.07.04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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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담장 안 포도넝쿨

담장 안 포도넝쿨 ⓒ 조명자


이육사의 청포도가 떠오르는 7월이 왔다. 때마다 찾아오는 제철 과일, 나는 그 중에서도 탱탱한 먹빛 알갱이에 하얀 분이 서려 있는 포도를 가장 좋아한다. 다행히 봄에는 딸기, 초여름에는 메론 그리고 한여름을 시작으로 초가을까지 포도 축제까지 열리는 포도 고장에 살고 있는 덕에 좋아하는 포도는 실컷 먹고 살 수가 있다.


우리 집 담장가에도 포도나무 한 그루가 있다. 내가 심은 것이 아니고 전 주인께서 심으신 것이다. 그런데 영양이 부실했던지 이 포도나무에 시원스럽게 포도가 매달린 것을 본 적이 없다. 자잘한 알갱이들이 오글오글 붙어 있는 포도송이가 어째 과일도 아니고 관상용도 아닌 어정쩡한 스타일로 서 있어 아예 관심밖에 있었던 유실수다.

a 에구, 저 탐스런 포도송이들, 입안에 침부터 괴네...

에구, 저 탐스런 포도송이들, 입안에 침부터 괴네... ⓒ 조명자

a 탱글탱글한 포도, 예술이야...

탱글탱글한 포도, 예술이야... ⓒ 조명자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올해는 입이 벌어질 만큼 포도송이가 흐드러지게 매달려 버렸다. 포도나무 근처뿐만 아니라 쭉 뻗은 넝쿨 끝까지 아주 탐스러운 송이들이 주렁주렁 달린 것이다. 세상에, 있으나 마나 한 과일나무라고 구박했더니 보란 듯이 열린 것인가?

하긴 지난 겨울에 남편이 뭔 생각이 들었는지 포도나무 주위로도 친환경 퇴비를 듬뿍 뿌려 준 기억이 나긴 한다. 담장 안에도 많이 달렸지만 담장 바깥엔 더 많이 열렸다. 주렁주렁 매달린 포도송이를 본 후배가 담장 밖 포도 걱정을 했다.

a 담장 밖 길가 포도송이

담장 밖 길가 포도송이 ⓒ 조명자

a 포도가 꽃보다 아름다워

포도가 꽃보다 아름다워 ⓒ 조명자

길가에 달려 있어 주인 차지가 되기 힘들겠다는 걱정이었다. 그 말을 듣고 한참 웃었다. 도회지에 사는 친구라 역시 내 것 네 것 없는 시골생활을 잘 모르는구나. 나는 담장 안보다 밖이 더 풍성한 포도송이를 본 순간 동네 어른들과 몇 명의 꼬마들 생각부터 떠올랐는데.

힘들이지 않고 인심 쓸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완전 땡 잡은 기분이었다. 오며 가며 알알이 익어가는 포도 알갱이 따먹는 재미, 마을 사람들에게 완전 유기농, 무농약 포도 맛도 보게 하고 따먹는 재미도 느끼게 할 수 있다니 이거야말로 일석이조 아닌가.


게다가 확성기를 달고 수시로 마을길을 오가는 장사꾼들. "개 삽니다 오리 삽니다"부터 시작해 고물장수, 야채장수, 방충망, 깨진 유리 갈아준다는 장사까지… 하루종일 조용할 새가 없는 마을 고샅길이다. 떠돌이 방문객들에게까지 '과일 보시'를 하게 됐으니 가만히 앉아 좋은 일 하게 된 셈이다.

a 한 그루에서 퍼진 넝쿨이라고 믿기지 않지요?

한 그루에서 퍼진 넝쿨이라고 믿기지 않지요? ⓒ 조명자

a 설치미술이 따로 없어요. 이것이~~ ^^

설치미술이 따로 없어요. 이것이~~ ^^ ⓒ 조명자


사실 먹을 것이 있어도 마을 어른들 청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다. 그 양반들 시간과 내 시간을 맞추는 것이 우선 힘들고, 혹시 뵙게 되더라도 그때는 딱히 대접할 음식이 없어 청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요것들이 다 익으면 얼추 몇 십 kg은 문제없겠다. 가만 있자. 동네 어른들 맛보시려면 신맛이 강하면 안 되는데… 아무래도 포도밭 하는 이웃 마을 지인에게 비법을 배워야겠다. 우리 집 담장가 포도농사 재미 좀 보면 내년에는 한두 주 더 심으리라. 길고 긴 담장가에 맘껏 올려 마을 사람들 간식거리가 된다면 얼마나 오지겠는가. 벌써부터 설레는 기분이다.
#포도 #담장 #이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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