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임금의 옥새. 이성계의 죽음과 함께 태조시대의 막을 내렸다.이정근
태조 이성계의 병환이 예사롭지 않다. 아버지의 환우가 깊어 시름에 잠겨 있는데 대간들은 간쟁을 일삼으니 태종 이방원은 짜증스러웠다. 아버지의 병환 때문에 세자의 성공적인 명나라 방문 결과를 국정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데 상소라니 답답했다.
형 정종과 번갈아 아버지의 곁을 지켰다. 때로는 환궁하지 않고 아버지 곁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별전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갈이 왔다. 거여를 챙길 겨를도 없이 뛰었다. 사대부는 비가와도 뛰지 않는 것이 법도였는데 임금이 뛴 것이다.
태조 이성계, 세상을 떠나다
손수 청심원을 드렸으나 삼키지 못하고 두어 번 태종 이방원을 바라보더니만 숨을 거두었다. 태조 이성계가 세상을 뜬 것이다. 태종 이방원을 용서한다는 말은 없었다. 말을 타고 달려 온 정종과 함께 태종 이방원은 통곡했다. 애증이 서려있는 아버지다. 효도하고 싶어도 이 세상에 없으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태종 이방원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내가 항상 아버지께 환심(歡心)을 사지 못하는 것을 한(恨)하여 항상 덕수궁에 머물고 싶었으나 좌우 시종이 많아 내 마음을 이룰 수 없었다. 세자에게 전위(傳位)하고 한가한 사람이 되면 매양 단기(單騎)로 출입하여 시인방(寺人房)에도 들어가고 사약방(司鑰房)에도 들어가 아버님을 뵙든지 못 뵙든지 간에 항상 곁에 있으면 환심(歡心)을 사리라고 여겼는데 이제는 그럴 수도 없구나." - <태종실록>
태조 이성계가 세상을 떠났다. 고려의 무장으로 혁혁한 무공을 세우던 장군이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가 유명을 달리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이제 역사의 평가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가 부관참시를 당하느냐? 역사의 평가를 받느냐? 그것은 오로지 태종 이방원 자신에게 달려있다 생각하니 어깨가 무거웠다.
광화문 앞에 천막을 치고 아버지의 항복문서를 받아내며 권력을 장악했지만 그래도 태종 이방원에게는 최후의 버팀목이었다. 이제 그 버팀목이 사라졌으니 허허 벌판에 홀로 서 있는 느낌이었다. 형 정종이 살아 있지만 기댈 언덕은 아니었다. 오로지 자신의 두 어깨에 짊어지고 가야 한다 생각하니 아버지의 빈 자리가 더욱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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