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며느리 노릇 좀 하고 왔습니다

시댁 식구들과 함께 떠난 1박 2일간의 펜션여행

등록 2007.07.06 08:53수정 2007.07.06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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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에, 막내 시동생이 양평의 한 펜션에서 교회지도자세미나를 가졌는데 정원이 아름다운 통나무펜션이 너무 좋더라고…. 자세히 들어보니 내가 아는 곳이다. 홍송으로만 지어서 건축비가 엄청 많이 들었다는, 그리고 정원은 제주도 중문단지 조성을 직접 설계, 감독하신 분이 만들었다는 꽤 멋진 곳. 그 후 어머니께선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야, 거기 좀 가봤음 좋겠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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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불꼬불 강원도 산길 ⓒ 이정옥

모처럼 며느리 노릇 좀 해보자는 맘에서 이모님 두 분과 시누이들과 함께 하룻밤 자고 오기로 했다. 패키지로 예약을 하면 식사까지 해결되니 편하긴 하겠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서, 비싼 방에서 재워드리는 거니까 먹을 건 좀 준비해 오시라고 하니, 좋다고 하신다.

예약 통화 중에 사장님이 "텃밭에 채소가 많으니 채소는 가져오지 마세요" 한다. 나는 쌀과 멸치고추볶음만 준비했다.

서울 송파에서 한 시간 반 남짓 거리. 청정지역 양평에서도 가장 때묻지 않은 곳이라는 '산음휴양림' 입구다. 멀찍이 산들이 둘러 있고, 무릎을 훨씬 넘어서는 풍성한 계곡물이 자장가를 불러줬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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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모님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시던 펜션 정원 ⓒ 이정옥


계곡을 끼고 10여 분 달려가는 내내 '오메 조은 거~~!' 하며 감탄하시던 시이모님들이 펜션 입구에 내리자 입을 다물지 못하시며 '조카! 고맙네 이'를 연발하신다. 짐을 풀자마자 동네 정찰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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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닮아서 짙푸른 텃밭 ⓒ 이정옥


먼저 펜션에서 패키지 손님들 식사에 사용하려고 가꾸는 무공해 채소밭. 손이 딸려서 제대로 돌보진 못한다는 채소밭엔 내 키만큼 자란 옥수수를 선두로 해서 호박, 아욱, 깻잎, 가지, 고추, 피망, 토마토, 근대, 시금치, 쑥갓, 상추, 치커리를 비롯한 각종 쌈채소가 즐비하다.

사장님이 "맘대로 따서 드세요" 했기 때문에 저녁 반찬거리로 맘껏 뜯고 막내 시이모님은 염치없다며 고구마 밭 풀뽑기를 시작하시는 바람에 나도 동참해서 길다란 밭고랑 네 개를 깨끗이 다듬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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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나물 찾기 ⓒ 이정옥

뜯은 채소를 숙소에 갖다놓고 다음은 펜션 뒤 산 더듬기. 둥글레도 캐고(흩어져 있느라 사진을 못찍은 게 아쉽다), 아예 밭을 이룬 돌나물, 아직 먹을 만한 고사리며 두릅잎(부침개를 해먹으니 제법 맛있다), 미역취랑 머위대…. 펜션에서 얻은 커다란 비닐봉투 세 개에 터져라 담아왔다.

이모님들은 연신 '내년 봄에 또 한 번 데려와 주소 잉' 하시며 싱글벙글. 봄에 와보면 산나물이 엄청나게 많을 거라면서 아쉬움 가득이다.

펜션에서 피워준 숯불에 갈비를 구워서 뜯어온 채소를 곁들여 저녁을 먹고 하하 호호, 얘기꽃을 피우다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시끌벅적해서 잠을 깨니 6시 30분, 새벽인데도 어른들은 벌써 일어나 화장까지 마치셨다.

"아니, 며느리가 시어머니보다 늦게 일어나믄 어쩐당가?" 시이모님들의 농담에 "에구, 난 우리 며느리 9시, 10시까지 맘껏 자라고 조용히 해주는데…" 이제는 능구렁이된 피 안 섞인 외톨이 며느리가 능청스럽게 대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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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흐드러진 야생화 ⓒ 이정옥

어제 해놓은 밥과 가져온 반찬으로 아침식사를 마친 뒤 채소밭에 가서 집에 가져갈 채소 뜯어다 놓고 휴양림으로 산책을 나간다. 길가엔 여름꽃들이 제법 많다.

까치수염, 꿀풀, 뱀딸기, 쇠별꽃, 물레나물, 산수국, 다래꽃, 노루오줌풀, 고삼, 시들고 있는 인동덩굴꽃, 그리고 붉게 익은 산딸기, 금세 손톱을 까맣게 물들여버린 오디….

나도 '봄에 왔더라면 좋았을 걸!' 아쉬움 가득이다. 휴양림 안에 들어가 산림욕을 하고, 휴양림 입구의 넓은 계곡에 발도 담근다. 행복하다! 편안하다! 그리고 뿌듯하다! 이모님들이 노래교실에서 배웠다는 가요를 흥얼거리니 길 밑 민박집의 멍멍이가 합창을 한다.

오는 길에도 부지런하신 이모님들은 길가에서 또 나물을 뜯으신다. 두 손 가득 채우다 넘치니 블라우스랑 티셔츠를 잡아늘여서 나물을 담길래 내가 가져간 파라솔을 펴서 거기에 담게 해드렸다. "오메, 자네는 머리도 잘 돌아가네 잉" 하시며 더 열심히 나물을 찾으신다.

점심으론 또 먹다 남은 갈비 굽고, 산나물 부침개로 배 두드리고 있는데 평일이라 손님이 많지 않으니 어른들 대접한다고 펜션 주방에서 맛있는 국수를 삶아줘서 "이건 저녁밥"이라고 우기며 또 신나게….

원래 12시에는 방을 비워줘야 한다는데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눈치가 보여서 사장님을 찾아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어른들이 너무 좋다고 가기 싫다네요"라고 멋적게 웃으니 맘씨 좋은 여사장님이 "오늘 특별서비스 할게요. 평일이라 괜찮으니까 천천히 떠나세요" 한다. 이게 바로 한국인의 정서겠지. 조금 불편해도, 조금 싫어도 참고 배려해 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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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에 뛰어들어 장난질치는 젊은이들 ⓒ 이정옥


산나물과 텃밭에서 뜯어온 채소들을 여섯 덩어리로 나눈다. 꾹꾹 눌러도 큰 쇼핑백으로 한 가득씩이다. 양손에 나물보따리랑 옷가방 들고 떠나려는데 밖이 떠들썩하다. 조금 전 소낙비가 오다가 잠시 갠 틈을 타서 다른 방에 묵었던 젊은이들 열댓 명이 펜션 계곡에 뛰어들어가 놀고 있다. 10분 전까지만 해도 검붉은 흙탕물이던 계곡이 제법 맑아진 것이다.

하긴 작년엔 밤새 억수로 비가 쏟아진 다음 날 계곡에 나가보고 깜짝 놀랐었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바닥 자갈이 말갛게 비치던 것이었다. 금수강산의 한 자락답다.

아이들 노는 모습이 옛 사진을 보는 거 같아서 쉽게 돌아서지질 않는다. 아쉽다, 하룻밤은. 그래도 어쩌겠는가, 마냥 머물 수는 없는 일. 이모님들과 내년 봄을 약속하면서 돌아오는 길, 싱그런 풀냄새는 너무 빨리 달아나고 있다.

그래도 가슴에 담아온 행복은 내년 봄까지 삶의 윤활유로 남겠지!

덧붙이는 글 | sbs U포터 기사로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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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 식구 #콘도 #행복 #양평 #펜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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