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 쳐서 제대로 못 들었다?

[取중眞담] 공성진 의원 '분당' 발언 보도의 진실

등록 2007.07.06 11:32수정 2007.07.07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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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5월14일 서울시 동대문구 구민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서울시당 당원교육 행사에 참석한 이명박 후보가 공성진 의원(오른쪽)와 박수를 치고 있다.

5월14일 서울시 동대문구 구민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서울시당 당원교육 행사에 참석한 이명박 후보가 공성진 의원(오른쪽)와 박수를 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이명박 캠프 서울지역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의 '수도권 분당' 발언이 정치권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킨 한 주였다.

'분당' 발언의 진위에 대해 기자는 지금도 많은 질문을 받고 있다. 산행 도중 나온 공 의원의 말을 기사로 처음 쓴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 보도가 나간 후 공 의원이 "분당을 말한 바 없다"는 보도자료를 낸 것도 기사의 진위 논란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 "비바람이 쳐서 제대로 못 들었을 것이다" "기자 외에 증인이 없다"는 식으로 당시 상황을 호도하는 얘기도 나왔다.

첫 보도 이후 반응들... 쓴웃음이 나왔다

공 의원의 발언과 관련해 한나라당 안팎의 인사들이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 말들을 대충 정리해봤다.

"공 의원이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했을 리가 있습니까?" (2일 홍사덕 박근혜 후보 선거대책위원장, 2일 KBS라디오 <안녕하십니까 이몽룡입니다>)

"두세 사람의 증인이 있으면 확인이 쉽겠는데 명백하게 확인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중략)…공성진 의원이 어떻게든지 이런 오해가 될만한 발언을 했다면 저는 큰 실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명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3일 MBC라디오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공 의원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어떤 인터넷 기자가 얘기를 들었다고 하는데 그 상황이 평온하고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 날 비바람이 많이 쳤습니다." (박희태 이명박 후보 선대위원장, 4일 KBS라디오 <열린토론>)

"공성진 의원이 농담했겠죠. 뭐 말실수했거나 유머러스하게 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을 설마 정상적으로 그런 말 했겠습니까? 당심을 합치는 것이 공인의 태도 아니겠습니까?" (김진홍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 6일 KBS라디오 <안녕하십니까 이몽룡입니다>)



박근혜 캠프도 설마 공 의원이 그런 말을 했겠나 싶었는지 "정말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해당 언론사를 언론중재위에 제소하라, 그러면 공 의원 말을 믿겠다"는 논평을 냈다. '이명박 지지' 성향의 한 인터넷매체는 공 의원의 말을 근거로 '<오마이뉴스> 완전 오보'라는 제목의 기사를 용감하게 내보냈다. 쓴웃음이 나왔다.

명백한 사실을 놓고 이러저러한 잡음이 나오는 것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당' 발언, 나만 들은 게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공 의원의 입에서 '분당'이라는 말이 나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거나 애써 무시하려는 부분이지만, 공 의원이 그런 말을 할 당시 KBS기자도 현장에 있었다. 발언을 확인한 KBS도 당일 저녁 9시뉴스에 이를 보도했음은 물론이다.

만약 기자만 공 의원의 말을 들었다면 스스로도 정말 그런 말을 들었는지 의심해 볼만하다. 그러나 두 명의 기자가 동시에 공 의원이 하지도 않은 말을 들을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 "분당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던 공 의원에게 기자가 "두 사람 모두 잘못 알아들을 수 있었겠냐"고 항의하자 "그런 말 한 기억이 안 나는 걸 어떻게 하냐"고 한발 물러섰다.

비바람 속의 산행 중에 나온 대화였기 때문에 기자가 공 의원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추론도 어불성설이다. 산행이 있던 날 비가 온 것은 사실이지만, '분당' 대화가 있었던 하산 길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산을 내려오다가 약수터에서 기자들과 한담을 나눈 박희태 위원장이 그때 정황을 아마 더 잘 알 것이다.

그렇다면 공 의원은 어떤 의도로 그런 말을 했을까? 기자는 당시 정황상 공 의원이 실언을 했다고 생각한다.

"기자가 발언의 일부를 침소봉대·왜곡한 게 아니냐"는 얘기도 들린다.

이런 얘기를 듣기 싫어서 그날 수첩에 적은 얘기들을 기사로 다 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공 의원은 그날 박근혜 캠프의 몇몇 핵심인사들을 거명하며 '헌신과 희생이 없다'느니 '교만한 자들의 본색이 드러났다'느니 하는 얘기를 했다. 상대 후보에 대한 이런 식의 비방은 요즘 한나라당에서 아주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이런 험담까지 시시콜콜 보도할 필요는 없지만 '분당' 발언은 다르다는 판단이다.

그의 입에서 "박근혜 캠프 말대로 하면 우리는 '장돌뱅이' 하수인 아니야?"는 얘기가 나온 것을 보면 박 후보가 당 대선후보가 될 경우 이 후보 측근들로서는 새로운 진로를 모색할 수 있다는 속내가 드러난 셈이다.

비록 실언이지만 발언 자체를 사실로 인정할 경우 아슬아슬한 당내 경선 분위기를 크게 흔들 수 있기 때문에 공 의원으로서는 애써 사실을 부인하고 싶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 대화가 있었을 때, 비는 내리지 않았다

취재원이 사석에서 한 얘기를 기사로 쓴 것과 관련해 공 의원을 두둔하는 목소리도 있다. 공 의원처럼 늘 기자들을 만날 수밖에 없는 정치인들이 그런 얘기를 한다.

그러나 취재원이 적극적으로 오프더레코드를 요청하지 않는 이상 취재원이 기자와 나눈 대화는 보도될 가능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취재원의 민감한 발언을 보도한 후 이러저러한 시비에 휘말리는 상황에 대해 기자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기자가 '불편한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오마이뉴스> 독자들도 취재원의 계산된 발언만을 전하는 기자는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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