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신 수제비에 얽힌 옛 이야기로 어머니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고 주변에 벌써 어둠이 깔렸다.전희식
나는 기겁을 하고 얼른 다 건져냈다. 그러면서 설명을 하니 헤~ 웃는 얼굴로 쳐다만 보시더니 이제는 반죽 한 밀가루를 밀대로 밀기 시작했다. 수제비를 뜯으면서 40년 50년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하시더니 수제비와 얽힌 일화들을 소개 하셨다.
“미룽지처럼 얄푸락하게 밀믄 입에 넣고 씹을 새도 없이 목구멍에서 잡아 땡기는지 그냥 미끄름 타득끼 넘어가삐는기라.”
“보리타작 하기 전에 그때는 먹을끼 있어야지. 수제비 떠서 신 김치 넣고 푸욱 긇이믄 내금이 온 동네에 퍼져서 지나가던 사람도 ‘항그럭 주소’ 하고 오고 그라는 기라.”
육수물을 걸러서 넣은 냄비에 감자 익는 냄새가 나자 “감자가 다 물크져서 국물이 잠방잠방 할 때까지 불을 더 때라”고 하셨다. 한참 후 됐다 싶었는지 수제비를 떠 넣기 시작했다.
“아야. 저서라. 안 뭉치고로 살살 저서라. 뭉치삐믄 떡이 되는기라. 이걸 둥그렇게 맹글라서 밀가루 떡 해 먹어도 새참이 단디 되는기라.”
냄비가 뻑뻑해져서 수제비 그만 넣었으면 했는데 남겨 두기 어중간하다고 어머니는 반죽을 다 떼어 넣으셨다. 몽고 간장을 가져다 드렸더니 이거는 ‘맛대가리’ 없는 거라고 집 간장 가져오라고 했다. “조선간장요?” 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몇 번 간을 보시더니 “먹자”고 하셨다. 우리는 큰 대접에 수제비를 퍼서 먹었다. 남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국물하나 없이 냄비를 싹 비웠다. 어머니는 “그 많은 걸 다 먹었디 일어서지도 못하것다”고 하셨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수제비 세 그릇 채운 내 배만 부른 건 아니었다. 우리집 주방장으로 등극하신 어머니 도우미 노릇을 하게 된 보람이 수제비를 먹기 전부터 내 배를 불렸다.
청국장 만들기, 아궁이 불 때기, 텃밭 물 뿌리기, 마늘까기, 산 뽕잎 따기, 가죽 자반 만들기, 매실 껍질 까기, 바느질하기, 마루 걸레질 하기 등의 정점에서 해낸 어머니 밥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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