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리 공연, 마오리식 인사는 눈을 크게 뜨고 혓바닥을 내미는 것이다.배지영
사고를 쳤다. 마음속으로 저울질하지 않고 무작정 저지르고 봤다.
2주 전의 어느 밤, 퇴근한 남편이 샤워하면서 말했다.
"배지영, 작은누나(아이의 작은 고모)가 현기(작은누나 아들, 고등학생) 보러 뉴질랜드 간대. 그래서 배지영하고 제규도 함께 가면 좋겠다고 했어. 잘했지?"
"우와! 끝내준다. 다음 달쯤에 가신대?"
"그건 모르겠어. 가긴 갈 거래."
다음날 낮에 작은 누나 전화를 받았다. 내일 날짜로 비행기 좌석이 딱 3개 남아서 당장 예약했다고 했다. 아이는 학교 기말 시험을 봐야 하고, 나는 일터에 휴가도 안 냈는데 일단 여권 사본을 보냈다. 그 다음 날, 우리는 국제운전면허증을 발급받고서 인천 국제공항으로 갔다.
공항에는 탑승 수속을 하기 위해 두 시간 전에 도착했다. 예약한 좌석은 세 자리, 그러나 우리 아이 좌석은 안 떴다. 항공사 직원은 아무리 해도 좌석이 없다고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간 다음에 오클랜드 대사관으로 찾아가라고 했다. 아이가 지금 보다 더 어렸을 때부터 둘이서 여행을 다녔지만 무릎에 앉힌 적은 없었다. 독립한 채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시간은 고르게 흘렀지만 내 마음은 갈팡질팡했다. 아이는 자리에 앉히고, 나는 비행기 날개에 매달려서라도 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뉴질랜드에서는 승인을 하지 않았다. 1시간 가까이 컴퓨터를 잡고 뭔가를 시도하는 항공사 직원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심란했다. 전 날, 갑작스런 휴가에 대한 양해 전화 50여 통을 할 때보다 진땀이 났다.
마침내 사라진 좌석에 대한 미스터리는 착오였다고 밝혀져서 탑승권을 받았다. 비행기 출발 시각 10분 전이었다. 화물로 보낼 짐은 특별대접을 받아서 따로 커트에 실렸다. 우리는 탑승구까지 전력질주 해야 했다. 아이의 탑승권을 찾지 못해 애를 먹던 항공사 직원은 '훈남'이어서 혹시 일이 잘못될까 봐 탑승구까지 함께 달려와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