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타킨테도 이곳에 있었을까?

[생뚱맞은 과학선생의 아프리카 여행 9] 탄자니아 잔지바르섬의 노예시장

등록 2007.08.30 10:35수정 2007.08.31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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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노예를 가두어 두었던 지하감옥의 안내원이 직접 당시 노예들이 끌려가는 모습을 재연해 주었다. 쇠사슬로 만든 조그만 구멍에 한사람씩 목과 손을 묶은 채 가둬졌다.

노예를 가두어 두었던 지하감옥의 안내원이 직접 당시 노예들이 끌려가는 모습을 재연해 주었다. 쇠사슬로 만든 조그만 구멍에 한사람씩 목과 손을 묶은 채 가둬졌다. ⓒ 조수영

a 대성당의 지하에는 노예를 감금하던 두 칸의 쪽방이 보존되어 있었다. 이 어둡고 좁은 방에 노예들을 쇠사슬로 묶은 채 감금해 두었다고 한다. 단아래 통로에 쌓인 오물은 바닷물에 의해 씻겨 나갔다.

대성당의 지하에는 노예를 감금하던 두 칸의 쪽방이 보존되어 있었다. 이 어둡고 좁은 방에 노예들을 쇠사슬로 묶은 채 감금해 두었다고 한다. 단아래 통로에 쌓인 오물은 바닷물에 의해 씻겨 나갔다. ⓒ 조수영

여행 10일(1월 11일), 스톤타운의 복잡한 골목 못지않게 잔지바르의 역사는 복잡하고 그 사연도 절절하다. 1499년 바스코 다 가마의 발길이 닿은 후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고, 1832년부터 150년 동안은 아랍 해상왕국 오만의 술탄이 통치했다. 술탄의 궁전이었던 경탄의 집을 비롯한 이슬람 유적지는 대부분 이 시대의 것이다.

아랍의 술탄은 이 곳 잔지바르 노예시장으로 동아프리카에서 생포한 아프리카인들을 데려와서 유럽 상인들에게 팔았다. 잔지바르는 향료와 노예를 노린 유럽 상인들의 아프리카 전초기지가 되었고, 술탄은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아름다운 섬, 잔지바르의 슬픈 과거

졸지에 사냥당한 동아프리카의 흑인들은 목에 쇠고랑이 채워진 채 채찍을 맞아가며 이 곳 잔지바르로 끌려왔다. 스톤타운 중심에 위치한 대성당에는 수만 명의 노예가 잡혀 팔려나간 흔적이 남아있다.

안내원을 따라 들어간 대성당의 지하에는 노예를 감금하던 두 칸의 쪽방이 아직까지 보존되어 있었다. 방에는 높이 1m 정도의 단을 만들어 거기에 노예들이 앉게 했는데 일어서지도 못할 만큼 천정이 낮고 비좁다. 이 어둡고 좁은 방에 적게는 60명에서 많게는 80명 정도의 노예들을 쇠사슬로 묶은 채 감금해 두었다고 한다.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우리가 서있는 단아래 작은 통로를 화장실로 사용했다. 오물은 고여 있다가 바닷물이 들고나갈 때 씻겨 나갔다고 한다. 물도 음식도 제공되지 않았다. 그들은 이 곳에서 먹지도 못하고 자신이 팔리기를 기다렸다. 창문이라 하지만 약간의 빛만이 들어오는 작은 틈이 세 개 있을 뿐이다.

노예상인들이 그들을 하나하나 발가벗겨놓고 검사해 품질등급을 정한 뒤 달군 쇠로 가슴에 낙인을 찍고 다시 이 곳에 가뒀다. 어린 노예들은 저울에 올려 몸무게가 미달되면 그 자리에서 죽였다.


이곳에서 수만 명의 흑인들이 노예로 팔려간 것이 불과 200년 전의 일이다. 천장에는 당시의 쇠사슬이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 안내원의 설명이 끝나지 않았지만 온몸으로 축축함이 느껴지고, 두려움에 몸부림치던 흑인 노예들의 혼령이 방안에 떠도는 것 같은 느낌을 견딜 수가 없어 서둘러 지상으로 올라왔다.

노예 시장의 자리에 세워진 대성당


a 대성당 뒤뜰에는 당시의 쇠사슬을 그대로 사용하여 노예무역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대성당 뒤뜰에는 당시의 쇠사슬을 그대로 사용하여 노예무역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 조수영

a 지하감옥 입구에 걸려있는 당시 노예선의 설계도. 노예 상인들은 목과 손발을 쇠사슬로 묶고 차곡차곡 흑인들을 채워넣었다.

지하감옥 입구에 걸려있는 당시 노예선의 설계도. 노예 상인들은 목과 손발을 쇠사슬로 묶고 차곡차곡 흑인들을 채워넣었다. ⓒ 조수영

지하감옥에서 며칠을 견뎌낸 흑인들은 노예 시장에서 경매에 붙여졌다. 1873년까지 이곳에 열렸던 노예시장은 긴 네모꼴로 세면은 야자수로, 한 면은 돌로 담장을 했다. 시장은 주로 오후 4시쯤에 열렸는데 노예들이 건강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기름을 바르거나, 액세서리로 장식을 하기도 했다.

그러한 비극적 역사를 치유하고자 폐쇄된 노예시장 위에 대성당이 지어졌다. 대성당의 방향 또한 죽은 노예들이 실려나갔던 방향대로 지은 것이다. 뒤쪽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노예무역에 반대한 영국인 선원을 기려서 만든 것이다. 지금은 기독교도들의 예배장소나 결혼식 장소로도 이용되고 있다고 하는데, 오늘 우리가 만난 이들은 대부분 노예감옥을 보러온 관광객들이었다.

흑인 '상품' 다섯 중 둘은 아프리카 내륙에서 이곳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죽어 버렸고, 남은 상품 셋 중에서 하나는 기나긴 항해를 하는 동안 목숨을 잃었다. 결국 5명 중 2명만이 그나마 목숨을 부지하고 잔혹한 노예 생활을 하게 되었다.

당시 노예선의 상황은 어땠을까? 아프리카에서 북아메리카 대륙을 가는 데는 일반 범선보다 좀 빠른 쾌속선을 이용했는데 약 1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빨리 가야 인간 화물의 생존률이 높고, 그래야 돈을 더 많이 벌기 때문이다.

이윤에 눈이 먼 노예 상인들은 한 명이라도 더 채워넣기 위해 좁은 공간에 글자 그대로 인간 '화물'을 꽉꽉 채워 넣었다. 보통 무릎을 구부린 상태에서 옆으로 눕게 해서 목과 발을 쇠사슬로 묶었다. 낮은 선반에 2중 3중으로 첩첩이 쌓았다. 그 열기와 악취, 답답함을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배설물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었고 위에서 떨어지는 오물을 그대로 밑에서 뒤집어써야 했다.

먹지도 못하고 팔리길 기다리는 '상품'

a 영국 대성당은 1873년 폐쇄된 과거 노예시장 자리 위에 세워졌다.

영국 대성당은 1873년 폐쇄된 과거 노예시장 자리 위에 세워졌다. ⓒ 조수영

a 성당의 방향은 죽은 노예들이 실려 나갔던 방향대로 지은 것이다. 기독교식 성당과 고딕 건축, 아랍풍이 조화되어 잔지바르 특유의 조각이 있다

성당의 방향은 죽은 노예들이 실려 나갔던 방향대로 지은 것이다. 기독교식 성당과 고딕 건축, 아랍풍이 조화되어 잔지바르 특유의 조각이 있다 ⓒ 조수영

a 북쪽의 연단 위에는 리빙스턴이 생애를 마친 땅, 치탐보에서 운반되어 온 목재로 만든 십자가가 걸려 있다. 탐험가 리빙스턴은 노예무역을 유럽에 알려 이를 금지시키는데 노력을 했다.

북쪽의 연단 위에는 리빙스턴이 생애를 마친 땅, 치탐보에서 운반되어 온 목재로 만든 십자가가 걸려 있다. 탐험가 리빙스턴은 노예무역을 유럽에 알려 이를 금지시키는데 노력을 했다. ⓒ 조수영

안내원의 상세한 설명을 들으면서 그동안 궁금했던 한 가지 의문이 풀렸다. 왜 북아메리카의 노예는 흑인일까 하는 것이다. 원주민인 인디오도 있고, 유럽의 죄수들도 있었을 텐데 왜 힘들게 오지인 아프리카까지 가서 흑인들을 잡아왔을까?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후 농사일과 사금 채취 등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던 유럽인들은 튼튼한 신체의 노예들이 필요했다. 그러나 원주민인 인디오들은 유럽인들이 갖고 온 질병이나 열악한 대우로 숨졌고, 장시간의 힘든 노동에는 적합하지 못했다. 결국 악조건을 버텨내고 긴 항해에서 살아남은 튼튼한 신체조건의 흑인들이 가장 인기가 좋았다.

물론 노예가 되는 흑인들을 백인들이 일일이 찾아내서 납치한 것은 아니다. 현지의 족장이나 왕이 다른 부족을 습격하거나 해서 노예를 마련해놓고 백인 노예상인들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노예가 된 후에도 잘못을 저지른 노예를 체벌하는 일은 대부분 노예 신분을 어느 정도 벗어난 흑인들이 도맡아 했다고 한다. 마치 우리나라 친일파들을 보는 듯하다.

본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노예 상인들은 노예선에 사탕수수나 커피·면화 등을 가득 싣고 돌아왔다. 노예의 운반 과정에서 많은 수가 죽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일단 항해에 성공만 하면 이윤이 두배나 세배는 기본이었다니 아주 경제성이 높은 장사였다.

지하감옥 복도에 걸린 액자에 쓰여진 문구가 기억난다.

"커피와 설탕이 유럽인의 행복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두 식물이 두 대륙을 불행에 빠뜨렸음은 확실하다. 그들은 이것을 심을 땅을 얻기 위해 아메리카를 공략했고, 이것을 키울 사람을 얻기 위해 아프리카를 약탈했다."

아프리카에도 포장마차촌이

a 포로하니 공원에 열린 장터에는 구운 문어, 오징어, 소고기나 간 꼬치, 염소고기 등 음식과 수산물을 팔고 있다.

포로하니 공원에 열린 장터에는 구운 문어, 오징어, 소고기나 간 꼬치, 염소고기 등 음식과 수산물을 팔고 있다. ⓒ 조수영

a 경탄의 집 앞에 위치하는 포로하니 공원에는 저녁 6시가 넘으면 수 많은 포장마차가 열리고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경탄의 집 앞에 위치하는 포로하니 공원에는 저녁 6시가 넘으면 수 많은 포장마차가 열리고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 조수영

오후 6시가 넘으면 경탄의 집 앞에 있는 포로하니 공원에 수많은 포장마차가 열린다. 주 메뉴는 구운 문어, 오징어 같은 수산물이지만 소고기나 간 꼬치, 염소고기 등도 있다. 꼬치는 1개 100실링(우리 돈으로 100원), 문어다리 1개 500실링, 오징어 몸통은 1000실링이다.

상인들은 모두들 직접 자신이 배를 타고 나가서 낚시로 잡아온 것들이라 신선하다고 자랑을 한다. 저녁식사는 공원 잔디에 앉아 해지는 인도양을 바라보며 우리 입맛에 딱 맞게 양념이 된 오징어와 먹는 맥주 한 잔이면 충분했다.

타망고의 이야기

뮤지컬로도 공연되는 프로스페리 메리제가 쓴 <타망고>는 흑인매매가 성행하던 시대에 흔히 일어났던 노예들의 반란에 대한 이야기다.

프랑스 국적의 희망호는 르두 선장이 이끄는 튼튼한 노예선이었다. 르두 선장이 아프리카의 노예 해안에 왔을 때 이름난 전사이자 노예상인인 타망고를 만났다. 타망고는 30명 가량의 노예를 팔아넘겼다.

거래의 성사를 축하하는 파티에서 타망고는 술에 취한 나머지 그의 아내 중에 가장 아끼던 에이세를 르두 선장에게 팔아넘겨 버렸다. 다음날 술이 깬 타망고가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노예선은 이미 출항하고 난 후였다.

그는 서둘러 작은 배로 쫓아가 선장을 설득했다. 그러나 선장의 눈에 힘세고 건장한 타망고는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는 노예일 뿐이었다. 선장은 타망고를 다른 노예들과 함께 배 밑바닥에 실었다.

다음날 아침, 타망고는 갑판위에 에이세를 발견한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지만 그녀를 구해줄 수 없었다. 타망고는 반란을 결심했다. 에이세는 그의 부탁에 따라 쇠사슬을 자를 수 있는 도구를 빵 속에 숨겨 건넸다. 타망고는 자신과 동료들의 몸을 묶고 있는 쇠사슬을 조금씩 자르며 계획을 세웠다.

어느 날 모든 쇠사슬이 끊기고 타망고의 외침에 따라 무리를 이룬 흑인들이 갑판 위로 쏟아져 나왔다. 긴 시간 전투가 이어지고 마침내 타망고는 승리의 외침을 했다. 르두 선장을 비롯한 백인들은 남김없이 바다에 던져졌다.

그러나 타망고는 배를 다루는 법을 몰랐다. 실수로 돛대가 부러지고, 구명정에 옮겨 탄 사람들은 배가 뒤집혀 죽음을 맞이했다. 남은 이들은 심한 바다에 흔들리며, 때로는 타는 듯한 햇빛을 받으며 먹을 것을 위해 서로 싸웠다. 과자 한 조각에 싸움이 일어났고, 그 때마다 약자는 죽는 것이다.

얼마의 시일이 지났을까 인근을 지나던 영국 선박이 정처 없이 떠도는 선박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죽은 흑인 여자와 겨우 사람이란 것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앙상한 흑인 남자가 있었다. 부서진 돛대의 발치에 앉아있는 그는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한다. 그가 바로 타망고였다.

덧붙이는 글 | <생뚱맞은 과학선생의 아프리카 여행>는 30일간 동남부 아프리카를 여행한 기록이다. 케냐- 탄자니아-잠비아-짐바브웨-남아프리카공화국-나미비아를 거쳐 6개국을 2006년 1월 2일부터 1월 31일까지 여행했다.

덧붙이는 글 <생뚱맞은 과학선생의 아프리카 여행>는 30일간 동남부 아프리카를 여행한 기록이다. 케냐- 탄자니아-잠비아-짐바브웨-남아프리카공화국-나미비아를 거쳐 6개국을 2006년 1월 2일부터 1월 31일까지 여행했다.
#아프리카 #탄자니아 #잔지바르 #영국대성당 #타망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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