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흔하던 맨드라미를 수소문 끝에 구하다

[산채원 촌장이 만난 우리 산나물1] 전 부쳐 먹는 얼룩덜룩 맨드라미

등록 2007.07.10 09:50수정 2007.07.10 10:45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친구 어머니가 새벽같이 내려놓고 가신 맨드라미 예닐곱 포기 ⓒ 산채원 촌장


어제 전주 처제 결혼식에 다녀온 뒤 동네 친구 어머니께 전 부쳐 먹는 토종 맨드라미가 없느냐고 여쭈었다. 있다고 하신다. 한두 포기는 줄 수 있다고 했다. 올 가을 씨를 받을 생각으로 딱 한 포기만 달라고 했다.

안도의 숨을 쉬었다. 불과 몇 십 년 전엔 남부지방 집집마다엔 살림집 치고 가죽나무 한두 그루와 초피나무 한 그루, 맨드라미는 기본이었다. 그 흔하던 작물이 이렇게 귀해지니 내가 안도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몇 차례 수소문 끝에 얻은 희소식이었다.

친구네는 추석 때 해마다 예전 그 맨드라미로 부침개를 만들어 먹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작년 11월 귀향 했을 때 분명히 큰댁에 있던 걸 보았던 터였다. 봄에 싹이 텄을 때 몇 개만 뽑아오면 양을 늘리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달포나 지났을까, 막상 큰집 마당에 가보았다. 옆집사람들은 빈집 마당을 일곱 집이나 제 텃밭으로 만든 양심불량자들이다. 아니나 다를까, 콩을 심는다며 제초제를 마구 뿌린 통에 한 개도 남지 않고 죄다 말라 비틀어 죽어 있다. 화가 치밀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두 달만에 승호네에 그게 아직 남아 있단 말을 들었다. 다음날 아침 5시쯤 일어나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있는데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자요?"
"아뇨, 아짐 저 화장실에 있어라우. 아침 일찍 웬일이세요?"
"어저께 말한 맨드라미 갖고 왔는디..."
"저, 못 나간께 거기다 두싰쇼. 고맙구만이라우."
"알았어라우. 여러 개인께 땅에다도 심고 화분에 몇 개 심어 놓더라고. 글고 밖에 화분이 여러 개 있더구만. 두 개만 주싯쇼."
"예, 가져가셔요. 살펴 가시구요. 감사합니다."

a

꽃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상용 꽃 맨드라미 ⓒ 산채원 촌장

붉다 못해 선혈이 곧 터져 나올 듯한 찬란한 수탉 벼슬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자주색 꽃맨드라미는 그냥 보는 걸로 족하다. 내가 오늘 아침에 구한 잎이 얼룩덜룩한 식용 맨드라미는 이제 우리들 어머니, 할머니들에게도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마당에 시멘트를 깔아서 없어지고, 풀 매기 힘드니까 제초제를 뿌린 통에 사라지고 말았다. 이 상황에서 또 하나의 나물 종자를 얻었으니 이 아니 기쁠쏘냐. 한 뿌리도 좋고 열 뿌리도 좋다. 종자 한 알이어도 좋다. 수 백 수 천 년 약초로 나물로 먹어왔던 소중한 자산을 하나 더 추가한 아침이 무척이나 즐겁다. 이렇게 늘려가다 보면 곧 200가지에 도달하리라.

벌써 쌀쌀한 가을이 기다려지는 건 마당에 숯불 피우고 솥뚜껑 뒤집어 걸어서 돼지기름 둘러 화전(花煎) 부쳐 먹는 그 시절이 그립기 때문이다. 하여 난 행복한 하루를 맞았다. 흐릿한 여름날 아침 밭으로 나가봐야겠다.

a

무럭무럭 자라면 잎을 따서 화전을 부치리라. 봄엔 진달래 가을엔 맨드라미 화전이 좋더라, ⓒ 산채원 촌장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 뉴스큐와 산채원 카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규환 기자는 작년 11월 7년 여 동안 준비한 귀향을 위해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전남 화순군 북면 백아산 자락으로 귀농해 2만 여 평에 200여 가지 산나물 농사를 짓고 있다. 산채원(山菜園) 영농조합법인 결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 뉴스큐와 산채원 카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규환 기자는 작년 11월 7년 여 동안 준비한 귀향을 위해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전남 화순군 북면 백아산 자락으로 귀농해 2만 여 평에 200여 가지 산나물 농사를 짓고 있다. 산채원(山菜園) 영농조합법인 결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맨드라미 #화전 #산나물 #산채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이 기자의 최신기사 역시, 가을엔 추어탕이지

AD

AD

AD

인기기사

  1. 1 모임서 눈총 받던 우리 부부, 요즘엔 '인싸' 됐습니다
  2. 2 카페 문 닫는 이상순, 언론도 외면한 제주도 '연세'의 실체
  3. 3 생생하게 부활한 노무현의 진면모... 이런 대통령은 없었다
  4. 4 서양에선 없어서 못 먹는 한국 간식, 바로 이것
  5. 5 "개도 만 원짜리 물고 다닌다"던 동네... 충격적인 현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