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은 우리의 표심이 무섭나요

헌재는 '재외국민 선거권' 인정했는데 표 계산에만 관심

등록 2007.07.11 15:06수정 2007.07.1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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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8일 헌법재판소가 주민등록이 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재외국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지 않은 공직선거법 관련 조항 등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도 선거법 개정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각 정당간의 이견으로 올 대선부터 재외국민들이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실정이다. 특히 열린우리당은 헌재의 위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단기체류자들부터 선거권을 주자는 종전의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지금까지 재외국민의 선거권 회복을 위해 활동해온 재일동포 이건우씨의 '긴급발언'을 싣는다. <편집자주>
a 지난 5월 10일 헌재의 공개변론에 앞서 헌재 정문 옆에서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는 이건우씨.

지난 5월 10일 헌재의 공개변론에 앞서 헌재 정문 옆에서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는 이건우씨. ⓒ 백병규

재일국민으로서 지난 95년 말, 국민 된 자격을 회복하기 위해 재외국민의 선거권운동을 막 시작할 무렵, 그 당시 경북대학교 김영호 교수(전 산자부장관)는 모임의 대표로 모셨던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재일동포는 결코 역사에서 매장되는 '부(負)'의 유산이 아니라 '정(正)'의 자산이 되어야 한다. 재일동포의 역사는 곧바로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말해준다. 그 아픔을 가해자인 일본정부 뿐 아니라 조국마저 외면한다면 결코 올바른 역사 창조의 미래는 없다고 본다."

2007년 6월 28일, 헌법재판소가 지난 99년의 기각 판결을 뒤엎고 영주권을 가진 재외국민의 국정선거권(대통령·국회의원), 국민투표권, 지방자치선거권(한국 국내거주 재외국민)에서 주민등록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재일동포를 '특별한 관계'로 팽개친 한일협정

이 판결은 재외유권자 약 210만 명의 기본권을 구제했다는 점에서 한국 민권사상 아마 기념비적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앞서 지적한 대로 재일동포가 역사에서 잊혀져가는 유산이 아니라, 함께 걸어가는 자산으로 인식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는 한일국교정상화 과정에서 일본과 과거 역사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그저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라는 배상금만 받고 재일동포문제를 '특별한 관계'로 매듭지어 버렸다.

이는 두고두고 국가가 마땅히 책임져야 했을 국민 보호 의무를 방기했다는 점에서 부끄러운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을 것이다. 당시 한국 정부의 이 같은 처사는 사실상 재일국민을 버린 기민정책이나 마찬가지였다.


국가의 이런 재일동포에 대한 기민정책은 문민 정권이 들어선지 20년이 지나도록 계속됐다. 이는 이번 헌법 소원 과정에서도 확인됐다. 외교통상부는 "현지화 정책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영주권자의 선거권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을 정도다.

이는 일본에 과거사 청산을 요구하기는커녕 일본과 함께 재일동포 문제를 회피하고 싶은 '부의 유산'으로 치부하면서 군사정권이 남긴 나쁜 유산을 그대로 유지하려 했던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제 재일국민을 비롯한 재외국민의 선거권이 인정됨으로 이런 기민정책은 더 이상 정부 안에서 설 자리가 없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재외국민들 또한 우리의 민족적 살길을 방해하는 후보자에게 반대표를 던질 수 있는 뚜렷한 의사표시의 수단을 갖는 '국민의 자격'을 비로소 행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영주권자는 보수-단기체류는 진보? 단순하지 않다

그런데 이번 헌재 판결에 대한 언론의 시각은 그저 표계산에만 관심을 두는 흥미위주의 보도에 그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영주권자 국민은 보수적이고, 단기체류자 국민은 진보적이어서 그 표의 향방 또한 그렇게 갈릴 것이라는 정치권의 당리당략적 해석을 그대로 인용 보도하는 태도가 특히 그렇다.

재외국민의 표는 체류기간에 따라 그 표의 향배가 갈릴 정도로 단순하지 않다. 해방 후 62년 만에 처음으로 인정된 선거권인 만큼 재외 유권자들의 선택은 그만큼 더 신중할 수밖에 없다. 과연 어느 정당이, 어떤 후보가 얼마나 좋은 비전을 제시하느냐가 선택의 주된 기준이 될 것임을 재외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단언할 수 있다.

또 재외국민의 표는 당연히 정당과 후보의 재외국민 정책에 크게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재외국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재일동포·재미동포 정책의 향배가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런 만큼 각 재외국민 정책이나 각 정당의 태도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지금까지 일본에 오는 정치인들은 주로 민단 간부들을 만나는 게 고작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민족학교에도 들르고 일본의 차별 정책에 맞서고 있는 시민운동 단체도 찾게 될 것이다.

미적미적 열린우리당, 표계산 때문이 아닌가

헌재 결정이 있고 난 다음에도 열린우리당 관계자들은 여전히 단기체류자들부터 선거권을 주자는 이른바 '단계론'을 고집하고 있다. 이는 영주권자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하지 않은 현행 선거 관련법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자체를 잘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곡해하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촉박한 일정 문제 등을 그 이유로 들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지금까지 영주권자들의 선거권 문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일관되게 표명해왔다는 점에서 이를 감추기 위한 군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내심은 올 연말 대통령 선거 때 재외국민의 선거권을 부여할 경우 해외 영주권자의 표가 자신들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타산적인 표계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열린우리당의 이런 정치적인 행보는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 재외국민들에게는 재외국민의 선거권 문제에 대해 각 정당과 후보가 어떤 입장을 취하는가가 초미의 관심사가 돼 있다. 재외국민들에게 그 첫 반응(인상)은 두고두고 그 정치세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자 잣대가 될 것이다.

진정 국민의 기본권과 인권에 관심을 갖고 지구촌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는 선진적 정치세력이라면 이 문제가 갖는 정치적 함의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충분히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인권 존중과 개혁의 초심 되찾아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이 이런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왜 그런 것일까.

하나는 앞서 지적한 것처럼 당장 유불리를 따져본 표계산 때문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야말로 정말로 근시안적 태도다. 한마디로 소탐대실의 실수를 저지르는 자충수가 될 것이다. 국민의 기본권과 인권을 진정으로 존중하지 않는 정치세력에게는 아마도 미래의 희망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또 하나는 관료 주도의 인식의 한계에 갇혀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열리우리당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그분들이 보인 반응은 외교부가 하는 말들을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관료들이 제시한 인식의 틀에 갇혀 인권과 기본권에 대한 원칙을 잃어버리고, 지구촌의 흐름에 대한 탐색과 모색을 게을리 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어째든 헌재의 위헌 판결이 나온 지금에 와서도 재외국민 선거권 문제에서 단계론을 고집하는 것은 스스로 자멸로 가는 길이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위헌행위'를 계속하겠다는 위헌적 발상이기도 하다. 열린우리당이 표방했던 개혁의 정신에 비춰볼 때도 맞지 않는 일이다.

열린우리당이 인권과 국민의 기본권을 존중하는 정당이라면 부디 그 초심으로 돌아가 위헌상태의 법 개정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애써 그 파장 외면한 일본 언론의 반응

일본 사회의 반응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일본 언론들은 한국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소식을 보도하는 데 아주 인색했다. 그 보도 내용 또한 민단이 주도해왔던 지방참정권 운동(일본에서 지방참정권을 보장하라는 운동)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 같다는 논조가 주류를 이뤘다. 이번 헌재의 위헌 판결로 이 같은 주장이 일본 사회에서 더 설득력이 약해질 것 같다는 분석인 셈이다.

일본 언론의 이같은 보도 태도는 일본 또한 재외일본인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고, 이들 재외 일본인들이 한국이나 북유럽 국가에서 이미 지방참정권을 누리고 있는 현실에 비춰 볼 때 지극히 이중적인 태도일 뿐만 아니라 기만적이다.

더 안타까운 일은 재일한국인을 대표한다는 민단이 외면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단 기관지나 민단계 동포 신문들은 그동안 재일국민의 조국 참정권 회복 운동에 대해서 전혀 보도하지 않아왔다.

이번 헌재의 위헌 판결 소식도 마찬가지다. 재일국민들의 기본권인 선거권을 인정한 역사적인 판결임에도 불구하고 민단에서는 이를 재일동포 사회에 전혀 알리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이같은 소식을 접하지 못한 재일동포들이 적지 않다. 민단의 역할과 그 존재 이유를 의심케 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재외국민들, 성숙한 자세 보여야

마지막으로 너무 앞서나가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국민의 주권을 회복한 재외 국민들도 조국의 선거권 회복 조치에 대해 성숙한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재외국민들은 선거권이라는 국민의 주권을 행사하는 데 있어서 선거 열풍에 휩쓸리거나 하는 일 없이 성숙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불필요한 행동은 최대한 자제하고, 잔잔한 바다처럼 질서 있게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겠다.

이를 위해서는 동포 조직들이 특정 후보자나 정당의 대변 역할을 하는 행위를 삼가고, 그 조직의 간부들이 지위를 이용해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들을 지지하는 선거운동을 주도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동포조직을 선거에 활용해 동포 사회를 분열시키고, 거주국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일 만큼은 절대 없어야 한다. 그것이 조국의 선거권 회복에 부응하는 재외국민의 자세일 것이다.

정당이나 후보들 또한 재외국민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 해외동포 사회를 선거열풍으로 몰아가는 일은 자제에 자제를 거듭해야 할 것이다.

재외국민은 한국정치의 고질적인 지역주의에 얽매이지 않고 보다 냉철하고 객관적인 눈으로 후보자와 정당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그만큼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정치권 또한 국제화에 노력을 기울이고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는 재외국민들의 역량과 조국애를 모아낼 수 있는 정책을 적극 개발해야 할 것이다.

부디, 다음 대통령부터라도 국내외 모든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 대통령이 선출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건우 기자는 재일국민 조국참정권 회복을 위한 시민연대 일본측 대표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건우 기자는 재일국민 조국참정권 회복을 위한 시민연대 일본측 대표입니다.
#재외국민 #선거권 #열린우리당 #헌법재판소 #재일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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