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파병, 절대 안전하지 않습니다"

시인 박노해, 레바논 파병 반대 긴급 기자회견

등록 2007.07.11 18:11수정 2007.07.16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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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오는 19일 동명부대 본대가 레바논에 파병될 예정인 가운데 최근 레바논을 다녀온 박노해 시인이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 나눔문화 강당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전투병 파병 중단을 촉구했다.

오는 19일 동명부대 본대가 레바논에 파병될 예정인 가운데 최근 레바논을 다녀온 박노해 시인이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 나눔문화 강당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전투병 파병 중단을 촉구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몸의 중심은 심장이 아니다
몸이 아플 때 아픈 곳이 중심이 된다

가족의 중심은 아빠가 아니다
아픈 사람이 가족의 중심이 된다

총구 앞에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히고
양심과 정의와 아이들이 학살되는 곳
이 순간 그곳이 세계의 중심이다"


시인 박노해씨가 2007년 '세계의 중심' 레바논을 위해 시를 읊었다. 지난 1989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결성을 주도했고, 시집 <노동의 새벽>(1984년)을 발간하며 국내 노동자의 인권을 노래하던 그다.

박씨는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나눔문화 포럼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레바논의 실상을 알리고, 한국 정부의 레바논 파병을 규탄하기 위해서다.

12일은 이스라엘이 자국병사 2명을 구출한다는 명목으로 레바논을 침공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박씨는 기자회견에서 "조용히 평화활동을 해오다가 오늘 절박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한국 정부의 파병지인 레바논 남부 수르(Tyre)는 결코 안전하지 않다"며 "한국의 전투병 파병은 재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5년과 2006년, 두 차례 레바논 남부 국경지대 등을 누빈 박씨는 "레바논 시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의료·재건부대"라고 강조했다.

"유엔평화유지군에 대한 착각"

a 시인 박노해씨는 레바논 전쟁 발발 1주년을 하루 앞둔 11일 한국군의 레바논 파병과 관련해 전투병 대신 의료 재건부대를 파병할 것을 주장하며 거리선전전을 벌였다.

시인 박노해씨는 레바논 전쟁 발발 1주년을 하루 앞둔 11일 한국군의 레바논 파병과 관련해 전투병 대신 의료 재건부대를 파병할 것을 주장하며 거리선전전을 벌였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박씨는 "레바논과 관련해 출판만 하고 나서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대로 두면 큰일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긴급 기자회견을 열게 된 배경을 밝혔다. 그는 지난 6월 <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라는 신간을 통해 레바논의 현지 상황을 국내에 전했다.


그는 "지금 레바논은 중동 분쟁의 뇌관"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지를 다녀본 결과 파병국인 한국에 대한 레바논 시민들의 감정이 좋지 않았다, 현지의 분위기가 험악하다"며 "만약 레바논에서 사고가 난다면, 병사 한두 명이 죽는 것이 아니라 대형 사고가 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한국군 파병지인 수르는 결코 안전하지 않다"며 "레바논 국민 70% 이상이 지지하는 헤즈볼라와 현지인들은 한국군의 파병을 날카롭게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요청으로 한국이 군대를 파병했다는 사실을 레바논 국민들이 곱씹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유엔평화유지군이라는 이름 때문에 파병에 대해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다"며 "만약 일제 시대에 독립투사를 감시할 목적으로 친일 외국군이 들어온다면, 한국 국민 중 누가 반기겠느냐"고 반문했다. 현지인들이 유엔군을 중립적 군대로 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는 유엔평화유지군으로 350여명의 전투병을 레바논에 파병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4일, 선발대(60여명)가 출발했고, 300명 규모의 본대가 19일 현지로 파견된다.

박씨는 "한국 정부가 진실을 알리고 있지 않다"며 "파병지가 안전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위험요인에 대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차단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일부 국내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레바논 주민 대다수가 전투병 파병을 환영하는 듯 왜곡보도를 하고 있다"며 불쾌감을 나타냈다.

박씨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거리선전전을 벌였다. 그는 오후 1시부터 "레바논 이들 앞에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레바논 파병의 부당성을 알렸다.

"헤즈볼라의 저항운동, 테러 아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중동 전문가들이 참석해 레바논의 생생한 상황을 전하며 파병의 부당성을 강조했다.

최창모 한국중동학회장(건국대 히브리 중동학과 교수)은 "중동지역에 가장 필요한 것은 외세의 간섭이 아닌 외부의 지원"이라며 "하지만 국제사회는 평화를 명분으로 무력을 앞세워 그들을 간섭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은 "한국의 파병군이 유엔안보리 의결을 통과한 평화유지군이지만, 외세의 침략과 오랜 내전을 겪은 레바논 국민들은 한국의 파병을 모욕적, 적대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라자이 알 칸지 국립요르단대학 교수는 "레바논 남부지역은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점령한 곳으로, 아주 위험하다"며 "헤즈볼라와 같은 단체가 알라의 이름으로 저항운동을 시작한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외부에서는 저항운동을 '테러'라고 부르지만, 사실과 다르다"며 "저항운동은 점령지 국민들이 해방을 원하는 욕구를 나타낸 것이다, 저항운동은 중동지역에서 대중적"이라고 반박했다.

노동운동가에서 평화활동가로 변신한 박노해

시인 박노해씨는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나눔문화 포럼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레바논에 전투병이 아닌 의료·재건부대를 보내야 한다"며 전투병 파병의 부당성을 호소했다.

1980년대 노동운동으로 이름을 알렸던 그가 '반전평화'라는 주제로 2007년 언론 앞에 다시 선 것. 그는 레바논뿐만 아니라 이라크, 인도네시아 아체 지역 등을 방문했다. 그가 변신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군사독재 시절, 온몸으로 투쟁했다. 그러다 감옥에서 사회주의가 붕괴하는 것 등을 보면서 '우리가 너무 세계를 몰랐다'고 생각하게 됐다. …사형을 선고받고 무기징역을 살았는데, 다시 삶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세계를 다니면서 한국의 진보운동을 새롭게 펼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한국은 지금 충분히 잘 사는 나라"라면서도 "내부적으로 양극화,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등 심각한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에만 안 나왔을 뿐, 국내에서도 현장을 누비며 해결책을 모색했다"며 "누구나 관심을 갖고 주목하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저 이외에 일하실 분들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문제, 양극화 등에 열심히 투쟁하는데도 왜 '진보의 위기'라는 말이 나오겠느냐"며 "국경을 넘어서 세계평화, 미 제국의 패권주의와 전쟁, 생태위기 등 새로운 쟁점들을 열린 시야로 보면 시급한 국내 문제를 해결할 동력을 얻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언론에 모습을 보인 데 대해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당분간 이 일(세계의 분쟁지역)에 집중할 생각"이라면서 "7년여간의 묵언하면서 고뇌한 진보의 문제에 대해 내년 여름께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책으로 새로운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박노해 #나눔문화 #레바논 파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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