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주석 기념관 앞의 기념품 판매점 유리벽에 걸린 모택동의 사진. 집권 시절 유교적 제왕의 행태를 보인 모택동은 현재 중국 지식인들에 의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김종성
또 모택동은 형식적으로는 ‘법률의 통치’(Rule of Law)를 내세웠을지 몰라도 실질적으로는 ‘법률을 이용한 통치’(Rule by Law)를 통해 일종의 봉건적 통치를 행했다는 것이 장쉬산의 비판이다.
비단 모택동 시기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중국 공산당의 정치에서는 유교적인 봉건제 통치의 양상이 극복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장쉬산은 강조했다. 장쉬산은 군군신신의 권위적 정치질서가 현재의 공산당에서도 극복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유교가 중국공산당 내에서도 강력한 지배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1949년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섰지만, 실질적으로는 지금도 여전히 유교사상을 활용한 정치행태가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다른 중국 학자들도 대체로 공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유교사상은 일반 중국 서민들에게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문화혁명 시절에 전통문화 파괴에 동원된 나이 어린 홍위병들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한국인들은 중국 서민들의 기억 속에서 유교사상이 잊혀졌을 것이라는 오해를 하기 쉽다.
하지만, 1949년 이후의 체제 속에서도 유교사상은 중국 서민들에게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 중국 학자들 사이의 일반적인 견해라고 할 수 있다. 장쉬산은 어릴 때에 할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을 예로 들어 유교사상의 영향력을 소개했다.
다른 가정에서도 그렇게 했겠지만, 장쉬산의 할머니는 식사 시간 때마다 늘 “스우위!”(食勿語)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먹을 때에는 말하지 말라”는 뜻이다. 필자의 경우에도 어릴 때에 ‘봉건적’인 아버지로부터 식중불언(食中不言)이라는 말을 귀에 따갑도록 들은 적이 있다.
장쉬산은 “학교교육을 받지 못한 ‘무식한’ 할머니로부터 ‘스우위!’라는 말씀을 들을 당시에는 그저 그렇게 무감각하게 받아들였는데, 나중에 그 말이 공자의 논어에 나온다는 걸 알고는 깜짝 놀랐다”면서, “중국에서는 이처럼 서민의 의식 속에도 유교사상이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비단 현대뿐만 아니라 전통시대에도 중국 서민들은 유교의 강력한 영향력 하에 있었다고 장쉬산은 말했다. 전통시대에 중국의 상류 지배층은 주로 노장사상의 지배를 받은 데 비해 하층 서민들은 주로 유교사상의 지배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민족 출신의 왕조(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 등)들이 결국 중원 문화에 동화된 데에는 바로 이 유교문화의 영향이 크다는 장쉬산의 주장이다.
그는 “로마제국 멸망으로 로마 문화는 사라졌지만, 과거 여러 차례의 한족정권 멸망에도 불구하고 한족문화는 사라지지 않았다”면서 “이는 한족문화의 풀뿌리에 유교사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말을 풀어서 설명하면, 하층 한족 서민들을 지배하고 있는 유교사상이 한족의 아이덴티티 중 하나를 형성했고 이민족 정권은 이 아이덴티티를 깨뜨리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한족문화에 동화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피정복민인 한족이 정복민인 이민족을 흡수할 수 있도록 한 데에 유교문화의 기여가 크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실증성을 갖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논외로 하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만큼 유교사상이 중국 서민들의 의식 속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현대에 와서도 그 점은 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모택동과 장쉬산 할머니의 사례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유교사상은 중국 지배층의 정치행태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의 문화의식에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개혁·개방 이전의 중국이 형식적으로는 사회주의를 했다고 해도 중국인들의 내면에서는 유교사상이 여전히 강력한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점은 개혁·개방 이후에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위와 같이 중국이 시장경제 시스템을 통해 자본주의로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고 해도 그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여전히 전통적인 유교사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중국의 경우에는 유교사상이 사회주의나 자본주의 등의 서구적 요소와 결합하면서 독특한 형태의 사회 시스템을 표출하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혁·개방 이전에는 사회주의가, 개혁·개방 이후에는 자본주의가 전통적인 유교사상과 결합하여 사회에 대한 지배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사회주의니 자본주의니 하는 경제체제만을 매개로 중국을 이해하려 하는 일부 한국인들의 인식 방법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중국을 이해하려면 여전히 봉건시대의 유교사상을 밑바탕에 깔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장쉬산의 경우처럼 1990년대 이후의 중국 지식인들은 유교사상으로 회귀하려는 의식적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또 유교 속에서 중국 및 동아시아의 미래를 발견하려는 경향까지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점을 볼 때에, 경제체제 외에 유교라는 별도의 문화적 코드를 통해 중국 사회를 전체적으로 분석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모택동은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유교주의자”라는 장쉬산의 말처럼, 중국사회는 결코 경제코드만으로 이해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닐 것이다. 그의 말을 응용하면, 어쩌면 중국도 사회주의나 자본주의 국가가 아니라 일정 정도는 유교주의 국가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가 아직도 중국을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 하는 코드로 바라보는 것은 과거 냉전 시기의 독재정권이 우리에게 그러한 시각을 강요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과거의 대립적 시각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시각으로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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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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