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했지만 너무나 사랑받은 천재, 이상

[서평] 고은 선생의 <이상평전>을 읽고

등록 2007.07.22 09:55수정 2007.07.22 10:22
0
원고료로 응원
이상은 사람이 아니라 사건이었다./수많은 꿈이 지나가야 할
통과의례의 난해/그 난해의 현대였다.
원보다/각도의 기수였다.
도시의 자식아/도시의 자식아
- 고은, <만인보>중에서


그렇다. 이상은 한국 현대문학사상의 거대한 사건이었다. 식민지 시대에 태어난 푸른빛의 탕아 이상은 22세의 나이에 <오감도>라는 기상천외한 시를 형형하게 발표한다. 그리고 모두가 그의 시를 보고 경악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시인가, 미친놈의 잠꼬대가 아니냐, 그게 대체 어쩌자는 시냐 등등 세인들은 엄청난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이상은 그의 시가 <조선중앙일보>에 발표되던 날, 흥겹고도 냉정한 어조로 박태원에게 속삭였다. '박 형! 바야흐로 광채를 발산할 단계에 이르게 됐지! 참, 이제 유상무상들이 모조리 무색해질 거야, 카카.'

a 책 표지

책 표지 ⓒ 향연

이상은 자신의 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시였기에 스스로 이런 예측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그가 생산해낸 언어들은 파격과 기행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의 시는 언어를 너무 파괴하였으며, 국문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는 쉬르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을 빙자한 엉터리 시를 쓴 시인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고은 선생은 바로 이런 문제의식을 안고 이상에 대한 본격적인 평전을 써 냈다. 그게 바로 2003년의 연말에 향연 출판사에서 펴낸 '이상평전'이다.

국문학사상 단일 인물에 대하여 가장 많은 연구서와 논문을 유발시킨 이는 단연 이상이었다. 그는 생전에도 리얼리즘의 연구 대상이었으며 28세의 나이로 요절한 후에 동료문인들이 유고집과 평론집을 바로 펴낼 정도로 심각한 관찰대상이었다. 그의 전집은 수도 없이 편집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전집은 문학사상사에서 출간된 이상전집 시리즈였다. 김윤식 교수의 주도하에 그의 시와 소설, 수필, 연구논문들이 망라된 이 전집은 이상 문학에 대한 체계적인 탐구서라는 점에서 상당한 호평을 받은 바가 있다.

그러나 고은 선생의 이상 평전은 문학사상사의 전집과는 달리 인간 이상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서라는 점에서 상당한 시사를 받을 만하다. 그리고 이상 찬양이나 이상 연구가 아닌 이상의 문학관과 언어에 대하여 상당히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고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고은 선생은 이상이 모던 보이적 용어를 파렴치하게 취득하였으며, 국문학적 소양의 부족에서 오는 혼란과 전문 용어 남용에 의한 자기도취를 일삼았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그가 과감하게 시도한 직유나 은유법은 여태까지와 다른 질을 생산하였으며, 그가 근대인의 관념 및 정서에 강렬한 설득력을 공급한 것은 상당한 기교였다고 밝히고 있다.

a 책 표지

책 표지 ⓒ 향연

결국 고은 선생은 이상의 문학이 국문학에 마냥 긍정적인 효과만을 주었다고 이야기하진 않는다. 특히 그의 무분별한 여성 편력에서 생산된 섹스시나 불행한 가정사에서 파생된 세기말적인 인생관에 대해서는 엄청난 메스를 휘두르고 있다. 그러면서도 고은 선생은 청년 이상에 대한 애정을 굳이 숨기려 들지 않는다. 그의 비판적 태도 이면에는 시대의 아픔 속에 스러져간 한 지식인에 대한 애정이 진진하게 녹아 있는 것이다.

이상 평전은 이상의 삶이 크게 보아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고 분석했다. 첫 번째는 그의 불행한 가정환경이다. 3살 때, 백부의 집에 양자로 들어가야 했던 이상은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할 때까지 백부의 집에서 지내야 했다. 친부모의 무능에 의해 백부의 집에 양자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이상. 그런 처지에서 오는 허무주의적 사고는 이상의 관념을 늘 지배하게 되었다.

두 번째는 총독부 건축기사 시절과 문단 데뷔 시절이다. 백부의 소망대로 총독부 건축부서에 들어간 이상은 공무원으로서 안정적인 생활을 보내게 된다. 이때 이상은 그의 친부에 대한 부양도 착실히 하였으며, 가문의 장자로써 행해야 할 의무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 깊숙이 자리 잡은 회화와 문학에 대한 열망은 눈에 띄게 커져만 갔다. 결국, 그의 백부가 사망하자 이상은 가문에 대한 의무를 훌훌 털어버리고 본격적인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된다.

세 번째는 다방 제비를 비롯한 카페 학, 카페 69 등을 경영한 사회 시절과 금홍으로 대변되는 여인들과의 편력 시절이다. 공무원 생활을 그만 둔 이상은 백부의 유산을 정리하여 다방 제비를 개업하게 된다. 그는 다방을 경영하면서 구인회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구본웅이나 이태준, 김기림, 김유정, 유치진 등 당대의 문인들과 다양한 교류를 하게 된다. 특히 김유정과는 동반 정사(情死)를 계획할 정도로 동성애적인 친밀감을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시기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금홍'이란 여인이다. 기생 출신인 금홍은 전형적인 팜므파탈이었다. 금홍은 보들레르를 파멸로 이끈 잔 뒤발을 연상시키는 여인이었다. 작고 깜찍한 외모에 되바라진 태도를 지닌 그녀는 이상의 수족이자 이상의 암세포였다. 이상과 금홍은 이별과 만남을 반복했는데, 결국 금홍은 한마디 말도 없이 이상을 떠나고 만다. 이상 역시 그런 금홍의 태도를 충분히 예상했을 뿐이다. 금홍과 이상의 비정상적인 관계는 소설 날개와 봉별기 등에서 잘 녹아 있다. 어찌 보면 금홍은 이상 최고의 작품인 날개를 탄생시키기 위해 잠시 활용된 오브제였는지도 모른다.

그 후 이상은 카페 여급인 권순희, 지식여성 변동림 등과 동거를 거듭했지만 이 여인들을 다른 남자에게 보내는 기행을 되풀이한다. 적어도 그에게 있어 여인이란 존재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었던 것이다. 그의 이런 모호한 태도는 그의 불행한 가정사에서 오는 허무주의의 반영이었던 것이다.

고은의 이상 평전은 바로 이런 인간 이상의 모습을 밀도 있게 그려낸 수작이다. 이상의 언어 저변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 아주 흥미롭게 실려 있다. 또한 이상의 여인들이 그의 작품에 끼친 영향을 다각도로 연구한 대목도 독자의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고은 선생은 서두에서 밝혔듯이 이상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가졌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가 천착한 것은 이상문학에서 이제까지 언급되지 않은 이상의 패륜과 이상의 마취에 의해 가려진 사실을 들추어내는 것이다. 그는 이상문학은 양파 껍질과 같다고 말하면서 이상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들추다 보면 결국 양파 껍질처럼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이상문학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이상의 역할을 우리의 역할로 인수함으로써 그에게 완전무결한 휴지부를 찍어주자고 권유하는 것이다.

그는 신비주의와 초현실주의라는 도그마에 이상을 가두지 말 것을 주문한다. 이상이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무형의 비평가로 존속될 때, 우리 시대의 문학이 이상 초극으로 열려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평전은 우리가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이상을 신비주의자가 아닌 인간 이상으로, 불행하지만 너무나 사랑받은 천재로 재인식하게 해주는 책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상 평전

고은 지음,
향연, 2003


#이상평전 #고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AD

AD

AD

인기기사

  1. 1 "전세 대출 원금, 집주인이 은행에 돌려주게 하자" "전세 대출 원금, 집주인이 은행에 돌려주게 하자"
  2. 2 단풍철 아닌데 붉게 변한 산... 전국서 벌어지는 소름돋는 일 단풍철 아닌데 붉게 변한 산... 전국서 벌어지는 소름돋는 일
  3. 3 늙음은 자전거 타는 친구가 줄어들고, 저녁 자리에도 술이 없다는 것 늙음은 자전거 타는 친구가 줄어들고, 저녁 자리에도 술이 없다는 것
  4. 4 "한달이면 하야" 언급한 명태균에 민주당 "탄핵 폭탄 터졌다" "한달이면 하야" 언급한 명태균에 민주당 "탄핵 폭탄 터졌다"
  5. 5 대법원에서 '라임 술접대 검사 무죄' 뒤집혔다  대법원에서 '라임 술접대 검사 무죄' 뒤집혔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