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만에 세상 구경 나선 할머니 '뭉클'

관절염 휴유증 라문순 할머니, 병원 도움 받아 걸어

등록 2007.07.23 14:10수정 2007.07.23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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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절염 후유증으로 집안에서만 생활하고 바깥 외출을 하지 못하던 할머니가 이웃 주민들과 지역 병원의 도움으로 30년만에 세상구경에 나서 화제가 되고 있다.

울산 북구 강동동 제전마을에 사는 라문순(78) 할머니는 지난 21일 주민들의 축하속에 땅에 두 발을 내디뎠다.

할머니에게 불행이 찾아온 것은 40여년전 심한 관절염이 찾아와 당시 울산에 이렇다할 병원조차 없는 상황에서 방치된 관절염은 악화일로로 치닫다 급기야 할머니를 '앉은뱅이'로 만들었다.

관절염 후유증은 무릎 뼈와 인대에 심한 변형을 유발해 오른쪽 무릎과 발목을 구부러져 펼수가 없게 만들었고, 왼쪽 무릎 역시 관절염이 심해 설 수 없는 상태로 악화됐다.

할머니는 다리를 쓰지 못한채 오직 엉덩이로 몸을 밀어가며 30여년을 생활해왔다. 이웃을 만나러 나가는 일도, 바깥 외출을 꿈꿀 수 없는 세월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북구보건소 방문 간호사가 울산 북구 연암동에 위치한 C병원에 할머니의 소식을 전한 것을 계기로 지난해 3월 조현오 병원장의 진료가 이루어진 것이다.

조 원장은 할머니를 세워보기로 결심했다. 조 원장은 "할머니의 상태가 너무 안좋아 주변에서는 수술을 말렸지만, 확신이 들었다"며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상황은 낙관적이지만은 않았다. 30여년을 엉덩이로 기어다닌 결과 오른쪽 다리는 무릎과 발목 부위에 피부 괴사가 심한데다 쇠약, 시력장애까지 동반되어 합병중까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살아서 한 번이라도 걸어서 집을 나가 보는 게 소원"이라며 원장에게 수술을 부탁했다.

할머니는 지난해 3월 24일 병원에 입원해 8월 퇴원일까지 140여일동안 9차례의 수술을 이겨내야 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으나 문제는 30년동안 걸어본 적 할머니의 다리 혈관과 신경, 근육은 일어서야 한다는 의지를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기적이 일어났다. 병원 진료진과 이웃들의 노력으로 불가능하게만 보이던 재활치료가 성공적한 것. 할머니는 C병원에 입원해 재활치료를 시작했고, 급기야 다리에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퇴원 후 다시 집으로 돌아간 할머니는 세상에 발을 내디디기가 두려웠던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때 할머니의 생활을 돌봐주던 북구 자원봉사센터의 김순희(58)씨가 다시 재활훈련을 시작했고, 이웃들도 할머니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드디어 할머니는 지난 5월 각고의 노력끝에 처음으로 집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당시 할머니의 눈가에는 감격의 눈물이 맺혔다고 이웃들이 전했다.

마을 구경에 나선 할머니는 "살아 생전에 이렇게 세상구경을 할 줄 꿈에도 몰랐다"며 "30년만에 다시 본 마을은 옆에 사는 이웃 집도 못찾아갈 정도로 많이 변했다"고 감격해했다.

"이제 세상구경을 하실 수 있으니 어디를 가고 싶냐"는 주위사람의 질문에는 "나를 걷게 해주려고 모든 짜증을 받아주며 훈련시켜준 물리치료사를 만나러 가고 싶다"고 했다.

라문순 할머니의 감동적인 사연을 계기로 지난 21일 오후 1시 울산 북구 강동동 제전마을 회관에서는 울산시티병원과 제전마을간의 조촐한 자매결연식이 열렸다.

마을 주민들이 할머니를 다시 만나게 해 준 시티병원 식구들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했고 C병원도 무료진료와 병원 진찰료 할인을 약속했다. 자매결연식에는 제전마을 주민 30여명과 C병원 의료진, 북구의회 윤임지 부의장과 박병석 의원도 참석해 할머니의 세상 나들이를 축하해줬다.

할머니는 "이렇게 된 건 다 기적"이라며 "나를 세우려는 주위 사람들의 의지가 없었다면 이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울산 북구 제전마을은 7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강동해변의 작은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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