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들을 닮아가는 아메리칸 무슬림 2세들

[아메리칸 홈리스의 현지보고] 로다이에서 만난 파키스탄 이민자들

등록 2007.07.24 09:44수정 2007.07.2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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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중부의 로다이라는 시골 마을의 파키스탄계 아이들이 동네 공원에서 농구를 하고 있다. 복장은 이슬람적이지만 사고 방식은 미국의 주류 아이들과 차이가 없다고 부모 세대들은 말한다. ⓒ 김창엽


인종 문제는 미국에서 기본적으로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될 소재입니다. 3년 전 쯤, 캘리포니아의 한 중국계 고교졸업반 학생이 아시안 학생과 히스패닉 학생 사이의 학력차 문제를 놓고, 원인을 분석해 내놓는 바람에 벌집쑤신 듯 시끄러웠던 적이 있습니다.

한국 교포들도 꽤 많이 사는 엘에이 근처의 샌개브리얼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었는데요, 스탠포드 대학 입학 허가를 받아 두었던 이 중국계 학생은 상당히 진지하게 이 문제에 접근, 부모들의 교육열 차이 등 인종간 문화 차이를 학력 격차의 주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중국게 학생의 분석이 아니더라도 미국에서 인종간 학력 격차는 무슨 공식 마냥 굳어져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느 주를 따질 것 없이, 공립학교라면 아시안-백인-히스패닉-흑인 대략 이런 순서입니다.

중국계 학생이 내놓은 분석이 정답인지 여부는 알 길이 없습니다만, 혹 정답일지라도 미국에서 인종간 우열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라는 점에서 화제가 됐던 겁니다. 단순한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모를까, 특정 인종 그룹의 열등한 이미지를 불러올 수 있는 분석은 특히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실제 당사자들은 인종간 우열 상황, 아니면 최소한 인종간 차이를 모를까요. 전혀 아닙니다. 마음을 툭 터놓을 수 있는 사이라면, 청소년들 특히 남학생들간에는 인종 비하의 뜻이 담긴 농담도 심심치 않게 오갑니다.

예컨대 카지노의 슬롯 머신에서 토큰 떨어지는 소리를 빗대, '칭크', '칭크' 하면서 중국계를 놀리는 등이 그런 예입니다. 친한 사이라면 이런 농담은 히스패닉계 남학생이 중국계 남학생한테도 할 수 있습니다.

뉴욕이나 엘에이 같은 대도시는 인종 분포가 미국내 다른 지역에 비해 좀 더 다양합니다. 백인, 히스패닉, 흑인, 아시안 외에 무슬림도 주요 소수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고등 학생들, 특히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암암리에 인종 그룹에 대한 일반적 호감도가 형성돼 있습니다. 일반적 호감도란 말하자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이 누구냐'는 식으로 물었을 때 나오는 답변과 비슷합니다. 개인적 지지후보와 관계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각자들 추측하는 것이지요. 나름대로 대세를 읽는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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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다이의 회교사원 입구. 중장년층의 파키스탄계 남성 몇몇이 모여있길래 다가갔더니 몇마디 말을 남기고는 불편한듯 자리를 피했다. 회교사원은 파키스탄계 이민자들의 구심점 역할을 동시에 비 무슬림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 김창엽

인종 그룹 등에 대한 일반적 호감도는 하루 아침에 변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무슬림의 경우는 좀 예외인 것 같습니다. 2001년 뉴욕 등지에서 일어난 9·11 사태가 결정적인 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9·11 사태를 전후해 캘리포니아의 한 고등학교 남학생들 사이에서 일반적인 호감도가 바뀌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기존 백인-아시안-히스패닉-무슬림-흑인 순에서 무슬림과 흑인이 자리를 바꾼 거지요.

실제로 이런 순서로 인종 혹은 그룹별로 사람이 좋고 나쁘다는 식으로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태가 학생들, 나아가 인종, 종교 그룹별 이미지에 까지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최근 세태와 관련 미국에서 가장 괴로운 사람들은 여러모로 무슬림일 것 같습니다. 특히 같은 무슬림이라도 중동과 서아시아 출신들이 그런 것 같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의 무슬림 국가지만, 미국에서 인도네시아계는 종종 아시안으로 우선 인식됩니다.

캘리포니아 한복판에 있는 로다이(Lodi)라는 곳에서 만난 파키스탄계 사람들의 행동거지에 무슬림들의 괴로움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면소재지 정도에 해당하는 이 작은 도시에는 3000명 가까운 파키스탄 이민자들이 몰려 살고 있는데요, 9·11 사태 이후 백인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 때문에 곤혹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몇몇 사람들이 말하더군요.

지역 신문에 무슬림 공격을 업으로 삼다시피하는 백인 컬럼니스트까지 활개를 칠 정도였습니다. 사람이 꽤 많은 만큼, 모스크도 들어서 있는데요, 모스크 정문 벤치에 장년 남성 너댓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가까이 다가서니까,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하더라고요.

미국의 무슨 주류 언론에서 취재나온 걸로 알고, 한 남성은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느냐고 다그치듯 묻고, 다른 한 남성은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졌는데 뭘 볼 게 또 있느냐는 식으로 비아냥 거렸습니다.

반면 모스크 길 건너편 놀이 공원에 있는 파키스탄계 아이들은 농구를 하다 말고, 우르르 몰려와서 사진 찍는데 포즈를 취해주기도 했습니다. 일부 어른들과는 달리 파키스탄의 전통복장을 입고 있는 아이들도 많았는데요, 아이들은 여느 인종그룹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아주 순수한 모습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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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다이의 동네 공원에서 만난 모하마드 칸. 30대 초반인 그는 파키스탄계 이민 2세들이 무슬림으로서 정체성을 잃어 가는 바람에 부모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고 말했다. ⓒ 김창엽

그러다가 농구장 저편 벤치에 앉아있던 모하마드 칸과 얘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10년 전 이민 온 그는 30대 초반이었는데요, 파키스탄 이민사회가 외부의 따가운 눈초리는 말할 것도 없고, 내부적으로도 진통이 적잖다고 얘기하더군요.

모하마드의 말은 한 마디로 요즘 10대, 20대 무슬림 아메리칸, 즉 이민 2세들의 대다수가 무슬림적 정체성이 없다는 겁니다. 외모만 무슬림일 뿐 전자게임에 매달리고, 여자친구를 사귀는데 열중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무섭게 이민사회를 벗어나려 하는 등 머릿속은 백인들 청소년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슬림은 어느 인종, 종교 그룹 보다도 자신들의 신앙에 철두철미한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헌데 국교가 아닐 뿐 미국이라는 나라는 기독교 신앙을 바탕에 깔고 있는 나라잖습니까.

이슬람과 기독교 사이에는 어떤 건널 수 없는 강 같은 것이 있다는 느낌을 받는데요. 미국이라고 예외는 아니지요. 무슬림의 대다수는 좀 더 안정되고, 풍요로운 생활을 위해 미국에 이민을 오기는 했는데, 안팎으로 정신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환경과 부딪히다 보니 괴로운 거지요.

소수지만 일부 무슬림은 이런 이유로 최근들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무슬림 국가의 상당수가 정정이 불안한 편이어서, 절대 다수의 무슬림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좌불안석의 모습이었습니다.

무슬림 부모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식들이 껄끄럽기 짝이 없는 '적'들의 모습을 닮아간다고나 할까요.

덧붙이는 글 | 길거리에서 자면서 2006년 8월부터 네 계절 동안 북미지역을 쏘다닌 얘기의 한 자락입니다. 아메리카 노숙 기행 본문은 미주중앙일보 인터넷(www.koreadaily.com), 김창엽 기자 스페셜 연재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의 블로그(http://blog.daum.net/mobilehomeless)에도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길거리에서 자면서 2006년 8월부터 네 계절 동안 북미지역을 쏘다닌 얘기의 한 자락입니다. 아메리카 노숙 기행 본문은 미주중앙일보 인터넷(www.koreadaily.com), 김창엽 기자 스페셜 연재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의 블로그(http://blog.daum.net/mobilehomeless)에도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회교사원 #캘리포니아 중부의 로다이 #무슬림 #미국 #홈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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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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