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릿한 고통, 그들의 '자전거 허니문'

[여름 자전거 휴가①] '메가쇼킹' 만화가 고필헌씨 부부 이야기

등록 2007.07.29 12:46수정 2007.11.2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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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1@"노숙을 제안했다가 진짜 크게 싸웠다. 우리가 싸우던 카페 안에 사람들이 다 깜짝 놀랐을 것이다. 나는 힘들게 자전거를 타고 난 뒤 편하게 숙소에서 자면 어중간한 상태가 된다고 생각했다. 이왕 고생한 것 숙소까지 분위기가 이어져야 일관성이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아내는 쉴 때만이라도 편하게 자자고 하더라. 아쉽지만 결국 여관에서 자기로 결정했다."이렇게 여행가기 전부터 부인 윤혜영(32)씨와 한 바탕 홍역(?)을 치렀다는 '메가쇼킹' 만화가 고필헌(34)씨. 두 달 간의 전국 자전거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만화 연재를 준비 중이다. '여자를 전혀 배려할 줄 모르는 신랑'과 '식탐 많은 신부'의 여행기라는 그의 만화는 조만간 한 매체를 통해 선보일 예정이다.4월 16일 출발해 6월 12일 끝냈으니 정확히 58일 간의 여행. 처음 나선 자전거 장거리여행인 데다가 마침 닥친 이상저온 현상까지 겹쳐 이들의 여행은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게다가 둘은 취향이 너무 달랐다. '불편은 미덕'이라고 생각하며 '없이' 사는 데 익숙한 고필헌씨와 커피전문점·편의점·패스트푸드점을 즐겨찾는 서울 토박이 윤혜영씨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두 달 간의 자전거 신혼여행은 이런 그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었을 터."자기, 날 인간병기로 생각하는 것 아냐?"힘든 자전거여행을 결정했으니 날씨라도 맑았으면 좋았을 텐데, 출발하는 날부터 하늘이 도와주질 않았다. 아침부터 날이 꾸물꾸물하더니 비가 내렸다. 아침 최저기온이 5℃, 낮 최고기온은 16℃였다. 무모해서 유쾌하고, 유쾌해서 아름다운 이들의 여행은 이렇게 시작됐다.23일 오후, 한강 성산대교 밑에서 고필헌씨를 만나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개성 만점 신혼여행 이야기를 들었다.@IMG2@ "보통 자전거 전국여행을 하면 천안까지 지하철에 싣고 서울과 경기도를 빠져나간 뒤 시작하더라구요. 서울과 주변 지역 교통량이 워낙 많아 빠져나가기가 힘들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그냥 서울에서 시작했어요. 매연 속의 질주였죠. 왜 그렇게 무모했는지…."하지만 달리 신혼인가. 모든 게 즐거울 때가 아닌가. 여행의 설렘만으로 서해안 지역은 비교적 쉽게 통과했다. '해가 진 뒤엔 절대 달리지 않는다' '비가 내릴 땐 절대 달리지 않는다' '하루 세 끼는 무조건 먹는다'는 약속을 악착같이 지키며 말이다.첫 위기는 목포 지역이었다. 도로가 대부분 2차선인데, 화물차들이 아주 거칠게 달렸던 것. 대형차들은 보통 길을 비켜 자전거를 피해가지만, 화물차들이 자전거는 아랑곳없이 쌩쌩 달렸다. 화물차가 지나갈 때마다 자전거는 휘청거렸고, 신부 뒤에서 따라가던 고필헌씨는 그 때마다 머리끝이 곤두섰다.가장 큰 고비는 여행 초반 들른 제주도에서 찾아왔다. 신부가 가보지 못한 곳이라 찾아간 곳인데,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휴식에 노곤해진 신부가 계속 화를 낸 것. "왜 이런 여행 하자고 그랬냐" "날 인간병기로 생각하는 것 아니냐" "나도 여자인 걸 까먹을 때가 있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고필헌씨가 "혼령이 씐 것 같았다"고 말했을 정도.마침 부부가 들른 식당의 주인이 신부의 하소연을 듣고 "제주도에서 인천까지 바로 가는 배가 있다. '오하마나호'다"라고 말해준 것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것이었다. 신부는 넋나간 사람처럼 "오하마나, 오하마나"를 읊었고, 마음을 돌리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는 게 고씨의 증언이다.싸대기 바람에 넘어진 신부, 맞은편에선 화물차가@IMG3@어렵게 신부의 마음을 돌려 전남 고흥 녹동으로 나온 부부는 남해안 여행을 시작했고, 벌교-하동-진주-남해-통영-거제도를 거쳐 부산에 도착했다. 그러나 다시 위기상황. 신부가 다시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부산역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기 몇 시간. 자전거 여행을 그만 두든지, 고씨 혼자 자전거여행을 하든지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위기를 넘기고 두 사람은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겨우 다시 출발한 신혼부부는 동해안 도로를 타고 포항으로 향했고, 여기서 울릉도로 들어갔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섬 일주를 하기 위해 두꺼운 옷은 이미 서울로 부친 상태였다. 그런데 울릉도에 내리자 사람들이 죄다 외투 차림이었다. 반팔 티셔츠를 입은 사람은 고필헌씨와 윤혜영씨 뿐.처음에는 "모두 등산하러 온 사람들인가"라고 의아했지만 곧 자신들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1년 중 가장 더울 때가 24℃라는 울릉도에서 5·6월은 너무나 시원(?)한 달이었기 때문이다."울릉도가 그렇게 추우리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그 곳에서 찍은 사진 중 웃는 사진은 한 장도 없어요. 오들오들 떨면서 잔뜩 웅크린 사진뿐이에요. 빨리 탈출하자는 생각뿐이었죠."오로지 악전고투의 경험뿐이다. 과연 이것을 '허니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뜨아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는데, 고필헌씨는 여행 중 생사를 오간 순간을 이야기했다.속초에서 고성 통일전망대 가던 길었는데, 그 구간은 산에서 불어오는 옆바람이 심했다. 고필헌씨 표현으로는 '싸대기 바람'.그런데 이 싸대기 바람이 갑자기 거세게 밀어닥치면서 윤혜영씨가 바닥에 그대로 털퍼덕 넘어졌고 곧바로 반대방향에서 화물차가 스쳐 지나갔다. 만약 뒤에서 차가 따라오고 있었다면 대형사고가 날 뻔한 상황이었다. 잔뜩 겁에 질린 신부는 신경이 잔뜩 예민해져 한동안 고씨가 살짝만 건드려도 마구 성을 냈다.와인까지 사서 분위기 잡았지만@IMG4@그 외에도 많다.강원도 양양에선 체력이 바닥나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의사는 고씨에 대해 "피로가 쌓여있고 간이 좋지 않다"는 진단을 내렸다. 다리에 힘이 없어 제 자리에 서있는 것조차 힘든 상태였다.미시령고개는 가장 어렵게 넘은 구간이다. 3.7㎞ 미시령터널을 지나지 않기 위해 옛 미시령고개를 넘었는데, 무려 4시간 동안 자전거를 끌어야 했다. 고씨는 "여행 중 한 욕의 절반을 아마 미시령고개에서 했을 것"이라고 기억했다.듣고 보니 아찔하고 고통스런 추억 뿐이다. 재미있는 추억은 없었을까."아뇨. 저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재미있었어요. 물론 아내는 저한테 재미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죠. 그런데 강원도를 지날 때, 만화가들이 부부 동반으로 저희를 위로하기 위해 온 적이 있었어요. 그 자리에서 아내가 내내 '너무 좋다'고 말해서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말은 안 하지만 몸 상태가 좋을 때는 자전거여행을 좋아하는 게 얼굴에 다 드러나더라구요."글세, 부인도 과연 그렇게 이야기할까.울릉도에서 강릉으로 돌아와 정동진에 들른 뒤, 신부 기분도 풀어주고 신혼 기분도 낼 겸 와인 한 병을 사놓고 잔뜩 분위기를 잡았단다. 그런데 피곤해서 잠깐 눈을 붙인 게 화근이었다. 정신을 차렸더니 이미 날은 환했고, 잔뜩 볼멘 표정의 신부가 안주를 질겅거리며 TV를 보고 있었다. 와인 한 병을 다 비운 채로. 고필헌씨는 "속으로 아마 '내가 이 인간을 믿고'라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멋쩍게 웃었다.듣다 보니 이제 윤혜영씨는 자전거여행이라면 지긋지긋할 것 같다. 그런데 벌써 이 부부는 다음 자전거여행 계획까지 다 세워놓았단다. 다음은 일본을 자전거로 둘러보는 일정이라고. 음, 고필헌씨 말대로 신부도 자전거여행에 만족한 게 어느 정도는 사실인 모양이다.아버지는 운전중, 어머니는 수면중... 그런 여행은 그만@IMG5@여름휴가나 신혼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많은데, 자전거여행을 추천할 만한 지 물었다. 고필헌씨는 "물론"이라며 자신있게 말했다.서로를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는 것. 고씨 자신도 여자를 배려하는 성격이 아닌데, 위기 상황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배려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인생의 희로애락을 무엇보다 잘 느낄 수 있는 게 자전거여행이라고. 오르막길의 어려움, 내리막길에서의 상쾌함을 자동차로선 절대 느낄 수 없다고 말한다. 단점도 있다. 상대방을 깊숙이 아는 게 지나쳐 바닥까지 드러나는 경우다. 한 잉꼬부부가 미국 도보 횡단여행을 한 뒤 오히려 서먹해졌다고 한다. 음식이 부족해 항상 배고픔에 시달렸는데 어느 날 한명이 음식을 혼자 먹으려고 몰래 숨킨 것을 들키고, 자고 일어난 뒤 침으로 뒤범벅된 상대방의 얼굴을 보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하지만 시기만 적당히 조절하고 대중교통과 적절히 연계하면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될 것이라고 고필헌씨는 강조했다."승용차 휴가는 정말 바보짓이라고 생각해요. 아버지는 열심히 차를 몰고, 어머니는 옆에서 졸고, 아이들은 뒤에서 창밖 구경하고. 대중교통과 자전거를 이용해서 여행해보세요. 아마 가족간의 새로운 정을 느낄 수 있을 걸요. 아참, 그리고 오늘은 겉만 이야기한 거예요. 두 달간 여행을 어찌 두 시간만에 다 얘기하겠어요."@BOX1@
2007.07.29 12:46ⓒ 2007 OhmyNews
#자전거 #신혼여행 #고필헌 #전국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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