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여행을 떠나요

처음에 낙성공원이 위치한 산이 '낙산'이란 말을 들었을 때는 '떨어지는 산인가, 기쁜 산이던가' 했다. 그런데 거기 적힌 안내표지판을 보니 산 모양이 낙타를 닮았다고해서 낙타산 또는 줄여서 낙산이란다. 그 낙타를 닮은 산에 성곽을 쌓았으니 그래서 낙성이고 그런가보다. 문득 인도에서 보았던 속눈썹 짙었던 낙타의 선한 눈매가 떠올랐다.

▲ 마을과 나무와 어우러진 낙성 ⓒ 박경내

원래 계획은 아침 일찍 출발이었지만 잠에 대항하는 나의 심약한 의지로 인해 늦어져버렸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대학로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낙성공원 종점까지 가니 약속시간까지 한 시간 남짓 남아있었다.

낙성공원은 들어가는 초입에 한 발짝 딛고 서서 그 자리에서 휘 한 바퀴 둘러보고는, 됐다며 늘 잿밥에 관심이 더 많은 오문선양과 나는 그 길로 돌아서 성곽이 둘러싼 그 아랫동네를 골목길 따라 걸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눈이 오면 금방이라도 뒤로 미끄러내려갈 것 같은 그 낙산 꼭대기에 있는 낙성공원 아래 모인 집들이 풍겨내는 기운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그냥 을씨년스럽다고나 할까.

아니나 다를까 좁은 골목을 비집고 집들 사이로 들어가보니 창과 문은 열려있고, 소복히 쌓인 먼지에다가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이불까지 내팽겨쳐두고 이사를 가버려 텅 비어있었다.

밤 중에 자아내는 공포심보다 보일 것 다 보이는 그런 쾡한 느낌이 맘을 더 섬뜻하게 만들었다. 안 되겠다며 급히 뒤돌아 나와 성곽 아랫길로 난 조금 큰 길을 따라가보았다.

▲ 표지판 글귀는 '막다른 길', 담쟁이에 둘러싸인 낙성 ⓒ 박경내

보아하니 공사현장에 설치하는 철봉들이 빈 집들을 한 데 모아 길다란 계단을 경계삼아 쭉 둘러싸고 있었다. 때 마침 마주친 어느 아저씨께 여기다가 새로이 아파트를 짓는 거냐고 여쭤보니 바로 옆 낙성공원을 더 넓게 조성할 계획이라고 말씀해주셨다.

▲ 낙성공원 확장공사 착공 예정 중 ⓒ 박경내

그래도 그나마 그 계단너머로는 여전히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어도 사람의 온기가 포근히 전해졌다. 그 까닭은 뭘까? 그 당시에는 느낌뿐, 현상해온 사진을 들여다보며 그 답은 수많은 '화분'과 '빨래'에 있음을 깨달았다.

쑥쑥 자라나고 있는 풀잎들과 어여삐 삐져나온 꽃들, 장마때 잠시 개인 날씨에 길에 내놓은 이불과 축제 날 만국기마냥 펄럭거리는 빨래를 가는 내내 볼 수가 있었다.

▲ 옥상 위 화분들의 합창 ⓒ 박경내

▲ 장마 쉼, 빨래가 펄럭 ⓒ 박경내

여기저기서 사람 냄새가 솔솔 풍겨져왔다. 지나치며 우연히 보게 된 발랄한 빨간 초인종을 딩동하고 누르면 짠하고 나타날 것 같은 두 아이들을 만났다. 이쁜 여자아이의 똥그란 눈을 마주치자 별안간 누군지 의문스럽다는 듯 쳐다보더니 어느새 나타난 오빠를 따라서 금세 또 잔뜩 으르렁 거리고 있다.

남자아이는 문 앞에까지 따라나와 멀어져 가는 내내 엄청나게 몸을 크게 하는 포즈를 연신 취하며 우리를 위협(?)했다. 아이고, 무서워라. 이런 무지막지하게 귀여운 협박이라면 앞으로 언제든지 대환영이다.

▲ 우리 참 무섭죠? ⓒ 박경내

여름 발을 친 문 안과 밖에 앉아 나누는 두 사람의 대화, 잠시 쓰레기 버리러 롤을 돌돌 감은 머리를 내미신 아주머니, 잘 차려입고 외출 나가시는 분들도 종종 지나가셨다.

그즈음 일명 빵문선으로도 통하는 우리의 오문선양은 아껴둔 샌드위치가 그새 떡이 되어버려 울상, 찰나 지나가시는 아저씨 그 빵 눈여겨보시고는 빵문선양에게 공감한단 위로의 웃음 씨익 지어보이신다.

어느 정도껏 내려가니 찻길도 나오고, 표지판 보니 한양대 지하철 입구다. 약속시간이 십분 정도 밖에 안 남았지만 한 정거장 거리라서 열심히 걷기로 했다. 가는 길 벽담에 붙은 담쟁이들이 여름 느낌 초록빛 길을 내주었다.

그 길 끝에는 <외국노동자를 위한 일요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짐짓 동남아시아의 멋을 느낄 수 있지않을까 기대를 했던 것과 달리 통조림류나 음료수 판매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무척 그리울테야' 싶을 만큼이나 국제전화카드 판매상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그 분들에게 있어서 함께 어울릴 만남의 장소를 지나치며 이제 한 시간여의 서울 여행을 마무리하며 우리가 약속한 만남의 장소, 학림다방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