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령이 상해에 거주할 당시인 1961년 5월 11일 송경령의 집을 방문한 모택동. 기념관에 걸린 사진을 찍은 사진이다.김종성
어떤 사람들은 "미약한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강대국의 힘을 빌려 문제를 해결한 다음에 강대국을 밀어내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하지만, 강대국이 도움을 제공할 때에는 처음부터 뭔가 계산이 있기 마련이다.
강대국은 자국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도움을 제공하고, 무창봉기 당시의 경우처럼 자국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손문을 버리듯이 가차 없이 상대국을 버리고 만다. 그리고 설사 강대국의 도움을 빌려 문제를 해결했다고 치더라도, 그런 경우 강대국은 그 성과물을 독식하려고 할 것이다.
사실, 약자가 강자를 이용하여 뭔가 해보겠다는 발상 자체가 순진한 생각인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바보가 아닌 이상 약자에게 이용당할 강자가 과연 존재할까.
손문이 그런 외세의 속성을 모르지는 않았겠지만, 그는 어쨌든 간에 행동으로는 강대국 의존적 경향을 보여주고 말았다. 이는 손문의 내면에 자기 자신(손문 자신과 중국)에 대한 끈질기고 확고한 믿음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은 급할 때에 남이 빌려주는 돈에 '독'이 묻어 있다고 판단되면, 당장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남의 도움을 정중히 거절하고 스스로 역경을 헤쳐 나가는 경향이 있다. 모택동은 바로 그 점에서 손문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모택동과 손문의 이러한 본질적 차이점 때문에, 송경령 고거의 응접실에 걸린 두 남자의 사진을 보면서 '차라리 송경령이 손문 대신 모택동을 사랑했더라면 어땠을까'는 생각이 든 것이다. '보다 더 철저하고 유능한 혁명가인 모택동이 송경령 같은 걸출한 인물과 동지가 되었더라면 좋았을 걸'이라는 그런 아쉬움이었다. 손문에게는 너무 미안한 생각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부유한 환경 속에서 자란 송경령에게는 나이를 떠나서 손문 같은 귀족적인 남자가 더 편했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서민적인 모택동은 송경령에게 별다른 매력을 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또 어찌 생각해 보면, 송경령 같은 적극적인 여자에게는 모택동 같은 자기 충족적 남자보다는 손문 같은 외부 의존적 인물이 더 적합했는지도 모른다. 모택동처럼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사람에게는 송경령 같은 여자가 '모성본능'을 별로 못 느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A녀와 B남이 드라마 속의 커플이 되기를 바라지만 당사자인 A녀는 C남을 배우자로 선택할 수 있듯이, 송경령이 정치적으로 누구와 더 잘 어울리더라도 결국에는 그가 손문을 선택하고 말았다는 엄연한 사실의 힘을 느끼면서 송경령 고거를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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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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