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해 먹는 별식, '키조개 철판 볶음'

단돈 만원으로 키조개와 팽이버섯의 앙상블을 즐기세요

등록 2007.08.03 08:41수정 2007.08.03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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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손질한 키조개와 야채들

손질한 키조개와 야채들 ⓒ 김대갑

'큰 놈은 지름이 대 여섯치 정도이고 모양이 키와 같아서 평평하고 넓으며 두껍지 않다. 빛깔은 붉고 털이 있으며 맛은 달고 산뜻하다.' - 정약전의 <자산어보> 중에서


모양이 키와 같아서 평평하고 넓은 조개라. 키조개는 생긴 모양이 농가에서 곡식을 골라낼 때 쓰던 '키'와 아주 흡사하다. 그래서 아예 키조개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키조개는 이름만큼이나 크고 웅장한 조개이다.

아마 시장에서 파는 조개 중에서 키조개만큼 큰 몸매를 자랑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속을 까보면 그렇게 실망감을 안겨 줄 수가 없다. 넓은 껍질에 비해 속살이 별로 크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본 사람들은 대뜸 속았다고 비난할 조개가 바로 키조개이다.

키조개의 핵심은 패주 혹은 폐각근이라고 불리는 관자이다. 모든 조개에는 관자가 있다. 조개껍데기에 조개뱃살이 붙어 있게 하는 단단한 힘살을 관자라고 부른다. 생긴 것이 꼭 젖꼭지처럼 보이는 묘한 조갯살이다.

관자는 힘살이다 보니 육질이 단단하고 질기다. 조개껍데기에 딱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도 않는다. 홍합을 먹을 때 꼭 계륵처럼 느껴지는 것이 바로 이 관자이다. 버리자니 아깝고 먹자니 별로 먹을 게 없고.

그런데 키조개에는 핑크빛이 감도는 관자가 도톰하면서도 매혹적인 살덩이의 모습으로 도도하게 앉아 있다. 사람들은 그 고혹적인 살덩이에 금세 침을 흘린다. 계륵처럼 느껴지는 관자가 키조개에서는 가장 먹음직한 살집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관자의 맛을 이미 간파했음인지, 200년 전에 정약전은 그 맛이 달고 산뜻하다고 했다. 정말 키조개의 관자 맛을 이렇게 깔밋하게 표현한 것은 없을 것이다. 정약전의 말마따나 키조개의 맛은 산뜻하면서도 청량하다. 또한 시원하다. 관자를 얇게 썰어 오이나 레몬에 살짝 묻혀 먹는 맛은 사람들을 황홀경에 빠트린다.

a 키조개의 핵심, 관자

키조개의 핵심, 관자 ⓒ 김대갑

키조개를 요리하는 방법은 참 다양하다. 회로 먹는 것은 기본이고, 각종 볶음요리도 괜찮고 튀김이나 전을 부쳐 먹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구운 돼지고기와 쇠고기에 살짝 잘라낸 키조개 관자를 얹어 먹는 것도 별미이다.


특히 관자 자체로 샤브샤브를 해 먹는 것도 가능하니 키조개 관자요리만으로도 책 한권을 써도 모자랄지 모르겠다. 그러나 키조개 요리의 진수는 해물 볶음 요리라고 할 수 있다. 팽이버섯과 마늘, 양파, 파, 땡초 등을 넣고 적당히 익힌 볶음 요리야말로 키조개 요리의 맹주이다. 이름하여 '키조개 철판 볶음!'.

주말에 마땅히 해 먹을 게 없다면 무조건 키조개 철판 볶음을 하면 된다. 재료도 간단하고 가격도 저렴하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키조개는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귀족 조개였다. 조개 관자를 환장할 정도로 좋아하는 일본인들에게 거의 수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 요즘엔 키조개의 가격이 대폭 내려갔다. 달면서도 산뜻한 키조개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날이 온 것이다.

a 철판에 함께 넣고 그냥 버무려!

철판에 함께 넣고 그냥 버무려! ⓒ 김대갑

우선 키조개를 다섯 마리 정도만 준비해라. 2명이서 이 정도면 실컷 먹을 수 있다. 그리고 팽이버섯 5봉지 정도와 양파 몇 개, 파 약간, 얇게 썬 마늘, 그리고 아주 매운 땡초 몇 개를 준비하면 모든 것은 끝이다.

이것들을 후라이팬에 올려놓고 그냥 슬슬 젓기만 하면 된다. 기름도 필요 없다. 키조개에서 나오는 물과 야채들이 적당히 혼합하여 걸쭉한 국물이 자연스레 흘러나오니까 말이다.

중불에서 시작하여 약한 불로 살짝 줄이면서 계속 뒤적이다 보면 어느새 부엌에는 바다와 숲의 향기가 가득 퍼지게 된다. 키조개에서 우러나오는 향에는 호호탕탕 파도의 숨결이 담겨 있고, 팽이버섯에서 나오는 향에는 흙의 숨소리가 묻어 있다. 그 두 향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육향이란 그 얼마나 달콤한지!

a 다시 껍데기에 담아서 맛있게 먹어보자.

다시 껍데기에 담아서 맛있게 먹어보자. ⓒ 김대갑

적당한 향과 적당한 익힘이 되었다고 판단하면 이제 커다란 접시에 옮겨담아 먹기만 하면 된다. 이왕이면 그냥 접시에 담기 보다는 키조개 껍데기에 요리한 것들을 담아 보자. 훨씬 운치도 있고, 맛나게도 보인다. 거기에 향내 좋은 와인도 괜찮고, 시원한 맥주도 어울리고, 쓰디 쓴 소주도 멋지다.

주말의 별식이 뭐 별거냐. 신선한 아이디어와 약간의 발품만 팔면 얼마든지 맛있는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다. 가격도 얼마나 저렴한가. 위에서 말한 키조개 철판 볶음에 들어간 재료비는 만 원이면 족하다. 오히려 남는다. 남은 돈으로 소주와 맥주 한 병씩 사도 될 것이다.

아빠라면 오랜만에 생색내 볼 수 있는 요리이고, 엄마라면 으스대면서 가족들에게 내놓을 만한 요리이다. 달면서도 산뜻한 키조개 철판 볶음 요리, 또 먹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키조개 #별식 #팽이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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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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