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더위쯤이야" 뱀초 고추머리 세우고

[북한강 이야기 253] 보랏빛 꽃들과 이 여름을 시원하게

등록 2007.08.05 16:38수정 2007.08.05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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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장맛비가 몰아치더니 언제인 듯 싶게 뜨거운 폭염이 내려 쪼이고 있다. 더위가 마지막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달력을 보니 입추(8.8)와 말복(8.14)이 며칠 앞이다. 돌아가는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어느새 가을이 코앞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새벽마다 아침잠을 깨워주던 휘파람새와 뻐꾸기가 산을 떠난 지도 깨나 되었다.


말복 때가 되면 가을기운 금(金)이 여름기운 화(火)에게 자리를 양보하라 채근을 해댄다. 초중복도 지나 가을이 가까웠으니 어서 의자를 비우라는 것이다. 화가 난 염(炎)이 무슨 소리냐며 더운 김을 '확확' 뿜어낸다. 열이 하도 강렬해 얼떨결에 금은 복(伏)하고 무릎을 꿇는다. 열이 올라 초복, 중복 그리고 말복이 되면 그 더위가 절정에 달한다.

복 더위도 아랑곳없이 꽃망울을 터뜨리며 무더위를 식혀내는 꽃들이 있다. 맥문동, 냉초, 청 꼬리, 달개비들은 이름만 들어도 땀이 저절로 스며든다.

a 달개비 꽃물은 시리도록 푸르고 투명하다. 그냥그대로의 청보랏빛 순수, 땀방울은 물론 영혼까지 씻어내릴 것만 같다. 하늘을 날아오르는 파란 나비요정이랄까.

달개비 꽃물은 시리도록 푸르고 투명하다. 그냥그대로의 청보랏빛 순수, 땀방울은 물론 영혼까지 씻어내릴 것만 같다. 하늘을 날아오르는 파란 나비요정이랄까. ⓒ 윤희경

맥문동(麥門冬)은 산과 들에 그늘진 곳에서만 자란다. '맥'은 보리와 같은 수염뿌리로, '동'은 겨울에도 푸른빛을 잃지 않고 끈덕지게 살아남아 붙여진 이름이다.

맥문동 잎은 난과 비슷하나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난은 서늘한 아침 햇살, 적당한 온도와 습도, 맑고 깨끗한 물, 하얀 난석 속에 살지만, 맥문동은 그렇지 않다. 나무 밑 그늘진 곳이면 누가 돌보지 않아도 잘도 살아남는다. 난이 고고한 선비라면 맥문동은 무지렁이 촌부이다.

a 진보랏빛 맥문동, 보랏빛은 고귀와 수난의 상징이기도 하다.

진보랏빛 맥문동, 보랏빛은 고귀와 수난의 상징이기도 하다. ⓒ 윤희경

맥문동은 민초를 닮아 생명력이 강하고 꿋꿋하다. 성격도 민중적이어서 깐깐하다거나 까탈지지도 않다. 그저 수더분하고 수수한 모습 그대로다. 서민적이면서도 이들이 개화할 땐 일정한 원칙을 가지고 차례대로 망울망울 피어오른다.


맥문동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면 그 빛깔이 진보라 색으로 변한다. 폭염아래 내려다보는 보라색 꽃물에선 서늘한 바람이 일어난다. 또 보라색은 겨울을 이겨낸 고난의 상징이기도 하다. 인고를 헤치고 겨울 숲 속을 건너와 더위를 식혀내는 차질긴 꽃이다.

a 맥문동은 겨울에도 살아남는 민초이다.

맥문동은 겨울에도 살아남는 민초이다. ⓒ 윤희경

성격도 차고 서늘하며 달착지근한 맛이 난다. 한방에선 땀이 많이 나는 복더위에 갈증해소와 기력회복을 해내는 데 효험이 많다 전해오고 있다. 오미자와 인삼과 맥문동이 함께 만나면 흐르는 땀도 멈출 수 있다니, 유난히 땀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 번 복용해 봄이 어떨까 싶기도 하다.


a 개맥문동은 키가 작고 흰바탕에 노란 꽃술을 갖고 있다.

개맥문동은 키가 작고 흰바탕에 노란 꽃술을 갖고 있다. ⓒ 윤희경

'냉초'는 말 그대로 차가운 풀이다. 열을 내리고 땀이 나는 것을 멈추게 한다는 냉초, 이름만 들어도 시원한 바람이 일어난다. 냉초는 여인들의 냉증을 다스려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서릿발처럼 차갑고 매몰찬 여인들을 닮았다고나 할까.

처음엔 청색 잎이 밑에서부터 층층이 돌려나고 꽃도 촘촘한 층을 이루며 끝이 뾰족해질 때까지 피어오른다. 훌쩍한 키에 보랏빛 댕기머리 고추 세우고 층층이 쌓아 올라가는 모습은 천국계단을 보듯 산뜻하고 시원하다.

a 냉초는 냉을 다스려내는 여인들의 꽃이다.

냉초는 냉을 다스려내는 여인들의 꽃이다. ⓒ 윤희경

청꼬리도 푸른 잎에 긴 꼬리처럼 꽃이 피어오른다. 냉초와 비슷하나 꼬리가 길고 꼬부라지며 땅을 내려다보고 있다. 연녹색에서 서서히 청보랏빛으로 색이 변해간다. 꼬불꼬불 긴 꼬리가 바람에 흔들거릴 때마다 서늘한 바람이 일어나 더위를 식혀내는 데 그만이다. 어릴 때는 이 꽃을 '뱀초'라고 부르며 뱀 놀이를 하던 꽃이기도 하다. 지금도 청꼬리를 만질 때마다 뱀이 고추머리를 바짝 들고 곧 튀어나올 것만 같아 머리가 섬뜩하니 찬바람이 일어난다.

a 청꼬리는 '뱀초'라고도 한다. 어릴 때는 이 꽃을 꺾어 쌀자루에 넣고 뱀놀이 소꿉장난을 하던 추억의 꽃이기도 하다.

청꼬리는 '뱀초'라고도 한다. 어릴 때는 이 꽃을 꺾어 쌀자루에 넣고 뱀놀이 소꿉장난을 하던 추억의 꽃이기도 하다. ⓒ 윤희경

보랏빛은 고귀함과 수난의 상징이다. 보랏빛 꽃물들을 가까이 하며 한 송이 꽃을 피워내기까지의 지난한 몸짓도 생각해보고, 더위를 식혀내는 일은 꽃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에도 함께합니다. 우측 상단 주소를 클릭하면 쪽빛 강물이 흐르는 북한강 상류에서 고향과 농촌을 사랑하는 님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에도 함께합니다. 우측 상단 주소를 클릭하면 쪽빛 강물이 흐르는 북한강 상류에서 고향과 농촌을 사랑하는 님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맥문동 #달개비 #냉초 #청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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