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300개 담배꽁초, 보기도 싫었다

땡볕에서 '공공근로'로 휴가 보내기

등록 2007.08.05 16:28수정 2007.08.07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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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공공근로 신청해야겠어요."
"……!"

아내는 말이 없었다. 약간은 비참한 얼굴이다.

"오늘은 신청을 해야 하는데."
"……."

아내는 말이 없다. 우울한 얼굴이다. 공공근로를 신청해야 할 정도로 가정 경제는 엉망이다. 어느 정도는 견딜 수 있었지만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꼭 해야 해요?"
"응, 당신이 더 잘 알잖아요."
"그럼 신청하세요."


"고학력인데 할 수 있으세요?"

a 담배꽁초·신문지·캔맥주·페트병 맥주·병맥주· 음식물쓰레기…. 놀이터는 별 쓰레기와 휴지들의 천국이었다. 사진은 2006년 월드컵 축구 경기 뒤 쓰레기를 치우는 환경미화원들(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담배꽁초·신문지·캔맥주·페트병 맥주·병맥주· 음식물쓰레기…. 놀이터는 별 쓰레기와 휴지들의 천국이었다. 사진은 2006년 월드컵 축구 경기 뒤 쓰레기를 치우는 환경미화원들(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공공근로는 IMF 직후 경제적으로 열악한 가정을 위하여 도입한 제도이다. 대부분 '공설운동장 환경정비' '꽃길조성' '녹지조성지 정비' 일을 한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시민정보화 교육' '행정자료전산화 사업' 등의 일도 있다.


일반노무사업은 1일 2만8000원에 교통비 등 부대경비 3000원 별도지급. 청년대상사업은 1일 3만원에 교통비 등 부대경비 3000원 별도지급이다. 주차와 월차가 있다. 일당 3만1000원.

하루 결근하면 일당 3만1000원과 주차와 월차 수당 2만8000원을 받을 수 없으므로 하루 결근으로 8만7000원이 날아간다. 때문에 하루도 빠짐없이 일해야 한다. 아프다거나 급한 일이 있어도 해야 한다.

신청한 지 보름쯤 지나 시청 녹지과에서 전화가 왔다.

"시청 녹지과입니다. 공공근로 신청하셨지요. 할 수 있겠습니까?"
"… 예, 할 수 있습니다."
"고학력인데 할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아닙니다. 학력이 무슨 상관있나요."
"○○둔치 아시죠, 7월 2일 오전 8시 30분까지 ○○둔치로 나오세요."

공공근로를 한다기에 1만원짜리 운동화, 9000원짜리 바지 세 벌을 구입했다. 7월 2일 아침에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비오는 날은 공공근로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첫날이라 무조건 갔다.

장소를 찾기 매우 힘들었다. 좁은 시내이지만 자주 가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참만에 찾은 '○○둔치.' 녹지과에서 나온 공무원을 보니 약간은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왜 내가 이런 일을 해야 할까? 직업에 귀천이 없다하지만 세상이 어디 이것을 인정이라 해주나."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내가 해야 할 일터는 ○○둔치와 어린이 놀이터 여섯 곳이었다. 휴지 줍는 일, 쓰레기를 치우는 일이었다.

어린이 놀이터와 둔치를 자주 갔지만 쓰레기와 휴지가 그렇게 많을 줄 처음 알았다. 담배꽁초·신문지·캔맥주·페트병 맥주·병맥주· 음식물쓰레기…. 별 쓰레기와 휴지들의 천국이었다. 눈물이 났다. 한여름이라 냄새는 심했고, 아무렇게나 먹다버린 쓰레기는 사람을 더욱 치욕스럽게 하였다.

어떤 날은 담배꽁초를 300개 정도는 주웠다. 다 피운 후 버린 담배꽁초는 지겨웠고, 모가지만 톡톡 잘린 것처럼 섬뜩한 생각도 들었다.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들에게 과태료를 물리는 것이 아니라 하루 동안 담배꽁초 줍는 일을 시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담배꽁초는 정말 보기도 싫었다. 하지만 어떤 분들은 음식물 쓰레기는 비닐봉지에 고이 싸서 버렸다. 그런 분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쓰레기통이 없기 때문에 쓰레기를 담을 수 있는 포대자루를 둔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 휴지와 쓰레기는 포대 자루에 담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들이 문제였다. 번개탄에 음식을 해먹고서는 그대로 두고 가버린다. 재를 치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병을 깨버렸다. 깨진 병을 줍는 것도 귀찮은 일이지만 아이들이 다칠 수 있기 때문에 정말 못난 사람들이다.

하루는 아내가 도와주면 어떨까 물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아내에게 도저히 시킬 수 없었다. 하지만 아내는 무조건 도와주겠다고 했다.

월요일과 금요일에는 차를 타고 멀리 있는 공원 네 곳을 청소해야 하기 때문에 가까운 어린이 놀이터 두 곳은 당신이 도와주면 좋겠다고 하였다. 아내에게 휴지줍는 일을 시키다니 가슴이 아렸다. 아린 가슴을 안고 하루종일 줍는 휴지를 바라보면서 내일은 더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으로 일을 한다.

a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들에게 과태료를 물리는 것이 아니라 하루 동안 담배꽁초 줍는 일을 시키면 어떨까.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들에게 과태료를 물리는 것이 아니라 하루 동안 담배꽁초 줍는 일을 시키면 어떨까. ⓒ 오마이뉴스 안홍기

내일은 더 좋은 날이 오겠지?

요즘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35~36℃를 오르내리는 여름날 한낮의 더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이다. 둔치에는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어느 정도는 견딜 수 있지만, 놀이터 같은 경우는 숨이 턱턱 막힌다.

땀은 주체할 수 없다. 모자를 쓰고,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긴소매 옷을 입고, 장갑을 끼었지만 이미 얼굴과 손은 흑인에 버금가는 피부색깔로 변한 지 오래다.

나의 여름휴가는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남들은 돈을 쓰면서 보내는 휴가이지만 나는 돈을 벌면서 휴가를 보내고 있다. 비보다 더 많이 흘러내리는 땀을 보면서 한여름을 보내고 있다.

아이들도 아빠가 하는 일을 보고 싶다고, 공원과 놀이터에 따라나서겠다고 한다. 금요일 하루를 잡아 아이들과 함께 일터에 갔다. 가는 곳마다 미끄럼틀·그네가 있어 마냥 좋은 모양이다. 해수욕장과 계곡에는 가지 못했지만 아빠의 일터에서 아이들은 휴가를 보내고 있다.

아이들에게 못할 짓을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지만, 휴지 줍는 아빠의 모습이 천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더 나은 환경에서 더 좋은 휴가를 보내기를 원하면서 한여름의 한낮에 휴지를 줍는 나는 뜨거운 휴가를 보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나의 여름휴가 실패기> 응모글

덧붙이는 글 <나의 여름휴가 실패기> 응모글
#여름휴가 #공공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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