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 연행자의 강제지문채취 거부는 떳떳하다

'이랜드 노조원을 수사하는 한 경찰관의 소회' 기사에 대한 반론

등록 2007.08.06 08:57수정 2007.08.06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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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달 20일 오전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노조원들이 농성하던 서울 잠원동 뉴코아아울렛 매장에 투입된 경찰이 여성노동자들을 끌어내고 있다.

지난달 20일 오전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노조원들이 농성하던 서울 잠원동 뉴코아아울렛 매장에 투입된 경찰이 여성노동자들을 끌어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서울 모 지역경찰서 이동환 수사과장은 8월 3일 <오마이뉴스> 기사에서 강제 지문채취 영장 집행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필자는 묵비권을 행사하다 강제 지문채취 영장을 발부받았던 33인 가운데 한 명이며, 강남경찰서에 구금되어 있었다. 필자는 현재 인권단체인 구속노동자후원회의 상임활동가로 활동 중이며, 인권단체연석회의 경찰폭력대응팀에도 참여하고 있다.

사실 왜곡

이동환 수사과장은 영장발부를 통한 지문채취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중요한 사실을 의도하거나 혹은 의도치 않게 숨겼다.

먼저 뉴코아 강남점을 점거하고 있었던 197명에 대한 연행은 미란다 원칙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은 불법 연행이었다.

"차량 방송 등을 통해 불확실하게 전달되는 미란다 원칙은 무효가 될 수 있음."
"미란다 원칙 고지 내용과 방법에 어긋나면 불법연행."
(인권단체연석회의 경찰폭력대응팀이 제작한 '경찰 인권침해 감시/권리 카드'에서 발췌)


여러 언론사의 동영상을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듯이, 당시 현장의 경찰책임자는 미란다 원칙을 확성기를 이용해 불확실하게 전달했다. 매우 소란스러운 당시 상황에서 어느 누구도 확성기를 통한 미란다 원칙 고지를 들을 수 없었다. 미란다 원칙 고지 방법이 잘못되면 불법 연행이다.


나는 불법 연행이기 때문에 경찰 조사를 거부하며 신분을 밝히지 않고 묵비권을 행사한 것이다. 단지 불리한 진술을 거부하는 것뿐 아니라, 부당한 연행에 대한 항의 표시이기도 하다.

이동환 수사과장은 범법자 신원 확인을 운운하기 전에 스스로 경찰의 범법 행위들부터 확인·수사·처벌하라.


경찰의 불법 행위

경찰 스스로 자신들의 범법 행위를 확인·수사·처벌할 의사가 있다면 몇 가지 사례를 더 알려주겠다. 이는 이랜드 투쟁 연행자들이 겪은 인권침해 가운데 극히 일부일 뿐이다.

금천경찰서에서는 강제 지문채취 영장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영장에 근거하지 않고 연행자의 소지품 전반에 대한 수색, 사생활이 담긴 수첩에 대한 사진 채증 등의 광범한 인권침해를 자행했다. 연행자가 이에 항의하며 변호사를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경찰 10여 명이 달려들어 팔을 꺾고 수갑을 채웠다. 경찰서 안의 복도였으므로 도주 우려는 0%였다. 이런 경찰의 불법 행위는 연행자의 심리를 위축시켜 자신을 방어할 권리를 심각하게 제약한다.

관악경찰서에서는 불법 폭력 연행 과정에서 목을 다친 여성이 병원 치료를 요구했다. 그러나 고통을 호소하는 여성을 1시간이 넘도록 방치하고 증세를 악화시켰다.

강남경찰서에서는 필자 자신이 고열에 탈수 증상이 겹쳐서 고통을 호소하였는데 경찰에게 손가락이 꺾여서 강제로 유치장으로 처넣어졌다. 다른 한 분은 수차례의 구토와 탈진으로 경찰에게 병원치료를 두 차례나 약속받았다. 하지만 점심식사와 약도 제공받지 못하고 저녁까지 수사에 시달려야 했다.

책임

이동환 수사과장은 노사정 모두 사태의 책임이 있다고 운을 떼면서도,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슬그머니 경찰의 책임을 감춰버린다. 심지어 "혹독한 근무" 운운하며 경찰을 피해자로 둔갑시키려 한다.

시위 연행자 때문에 "모든 업무가 정지"된다고 어깃장을 부리기 전에, "정말로 많은 국민들이 고통 받고 있는 대부업 관련 범죄, 환경 범죄 등등을 수사해야 할" 경찰이 도대체 왜 20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불법 연행하는지를 먼저 문제 삼아야 마땅하지 않은가?

또한 유치장에서 벌어진 권리 침해에 대한 정당한 항의를 "유치장에서의 소란 및 항의"로 왜곡하거나, 서울 전역의 경찰서에서 상습적으로 면회를 불허하거나 방해한 것을 반성하지 않고 이를 싸잡아 "특혜 요구"로 왜곡하는 것은 이동환 수사과장 자신이 "일반 유치인"들의 권리 침해에 얼마나 둔감한지 인정하는 꼴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뉴코아-이랜드 노동자들은 합법 파업을 하고 있었고 노사 간 교섭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정부는 이랜드 사용자의 편을 들어 경찰력 강제진압을 결정했다. 그래서 지난달 20일과 27일에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강제 연행했다. 경찰의 힘을 믿고 이랜드 사용자 측은 아직까지 제대로 된 교섭에 응하고 있지 않다. 경찰이야말로 현 사태에서 주요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떳떳함

필자는 지난달 31일부터 8월 2일까지 48시간에서 10분을 뺀 시간 동안 강남경찰서 유치장에 있으면서 경찰의 저급한 인권 수준을 절감했다. 심지어 한 형사는 관등성명도 밝히지 않고 "경찰관집무집행법 모른다"며 버젓이 반말과 폭언을 일삼았다.

법치국가의 경찰이 스스로 '백화점식' 불법 행위를 근절하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경찰에게 "합법화된 강제력"을 집행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까?

마지막으로 다시금 강조하건대, 불법 연행에 기반을 둔 부당한 수사에 대하여 신분을 밝히지 않고 묵비권을 행사한 것은 매우 떳떳한 행동이었으며, 강제 지문채취 영장에 대한 거부 행위 역시 부당한 수사에 대한 일관성 있는 떳떳한 항의 행동이었다.

덧붙여 불법 연행 과정에서 구속된 뉴코아-이랜드 노조간부들도 모두 석방돼야 마땅하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8월 3일자 '이랜드 노조원을 수사하는 한 경찰관의 소회'(이동환 기자) 기사에 대한 반론입니다.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 8월 3일자 '이랜드 노조원을 수사하는 한 경찰관의 소회'(이동환 기자) 기사에 대한 반론입니다.
#구속노동자후원회 #인권단체연석회의 #뉴코아 #이랜드 #강제지문채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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