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는 나를 두 번 울리네요"

5일 서울 홈에버 목동점 앞에서 만난 정복술씨 이야기

등록 2007.08.06 22:23수정 2007.08.06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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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랜드 파업 44일째인 5일 오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주최로 전국에 걸쳐 '이랜드 유통매장 집중 매출타격투쟁(4차)'이 벌어졌다. 사진은 서울 홈에버 면목점 앞. 민노총 소속 200여 명이 모여

이랜드 파업 44일째인 5일 오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주최로 전국에 걸쳐 '이랜드 유통매장 집중 매출타격투쟁(4차)'이 벌어졌다. 사진은 서울 홈에버 면목점 앞. 민노총 소속 200여 명이 모여 ⓒ 안윤학

"이랜드가 나를 두 번 죽이네요."

정복술(50)씨는 서울 양천구 홈에버 목동점으로부터 두 번 해고를 당했다. 지난해 6월 12일에는 절도 혐의를 받아, 올 해 6월 10일에는 계약 기간 만료로 6년간 일한 직장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노동자 분신? 사실 이해할 수 없었죠. '다른 회사에 취직해서 돈 벌면 되지 않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죠. 그런데 막상 내가 당하고 보니, 그 심정 이해가 가더라고요. 내 아이를 뺏긴 기분이랄까. 해고된 뒤 집에서 혼자 있으려니 화병이 솟고 우울증까지 걸려…."

정씨는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비정규직이라는 이유 때문에 6년 동안 정든 직장으로부터 쫓겨나야 했다. 설움이 복받쳤던 모양이다. 정씨는 "평생의 한이 될 것"이라고 가슴을 쳤다.

5일 밤 홈에버 목동점 앞에서 정씨를 만났다. 이랜드 파업 44일째. 이날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주최로 전국에 걸쳐 '이랜드 유통매장 집중 매출타격투쟁(4차)'이 벌어졌다. 서울에서는 목동점 외에 홈에버 면목점, 그리고 인천 홈에버 구월점, 경기 뉴코아 평촌점 등 전국 8개 이랜드 유통매장 앞에서 집회가 진행됐다.

6년간 일한 일터 '계약 만료'로 해고... "내 아이 잃은 마음"

정씨가 두 차례나 회사로부터 해고를 당하고 거리로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a 홈에버로부터 두 차례나 해고를 당한 정복술씨.

홈에버로부터 두 차례나 해고를 당한 정복술씨. ⓒ 안윤학

정씨는 지난 2003년 10월 홈에버(당시 까르푸) 직영사원(계약직)으로 발령을 받았다. 2002년 우수사원으로 뽑히는 등 영업실적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파견직으로 일을 하던 2001년부터 주로 농산물 코너를 담당해 왔다.

그러나 정씨는 지난해 6월 절도 혐의를 받아 사내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해고 통보를 받았다. 동료가 계산기를 조작한 뒤 저렴한 가격에 본인(동료) 물품을 구입하다 계산원들에 의해 적발됐는데, 정씨가 그 동료와 함께 퇴근을 하기 위해 매장 밖에서 기다리다 '공범'으로 몰린 것이다.


정씨는 '해고'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정씨 스스로 행한 일이 아니었기에 억울했다. 그는 누명을 벗기 위해 징계위 재심을 신청하기로 결정했다.

회사 측은 재심을 신청할 경우 "형사고발을 하겠다"고 압력을 가했지만 정씨는 굴하지 않았다. 그는 '누명을 벗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결심을 했고, 홈에버 목동점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또 회사 측과 경찰에 적극 해명했다.

그러기를 3개월. 절도 혐의와 관련해 경찰 수사가 검찰로 넘어갈 때쯤 그는 회사 측으로부터 '복직' 통보를 받았다. 이에 대해 정씨는 "사건이 커질 것을 우려한 회사 측이 한 발 물러서는 듯 보였다"고 추측했다. 정씨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무혐의 처분을 받을 듯하다"는 경찰 관계자의 의견을 회사 측에 알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복직을 통보받았다는 것.

반면, 회사 측의 주장은 다르다. 회사 측은 '정씨가 절도 행위에 가담했다'고 보고 있다. 홈에버 홍보실의 한 관계자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해고가 정당하다는 결정을 받았으나, 중앙노동위원회 측으로부터는 '해고는 과하고 징계로 충분하다'는 의견을 전해 받고 복직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홈에버 목동점 인사과의 한 관계자도 홍보실을 통해 "지난해 해고 결정은 정당한 절차였다"고 전했다.

정씨 주장과 회사 측 반박은 서로 엇갈리고 있다. 정씨는 "회사 측이 '무혐의 결정이 날 듯 하다'는 경찰 내부 의견을 접하고 복직을 결정했다"고 하는 반면, 회사 측은 "중노위가 '징계'를 권고해 해고를 철회했다"고 정씨 주장을 반박했다.

그러나 확인 취재 결과, 지노위는 정씨의 해고건과 관련해 어떤 결정도 내린 바 없었다. 정씨가 회사 측으로부터 복직 결정을 받은 뒤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a 5일 오후 서울 홈에버 목동점 앞.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주최로 '이랜드 유통매장 집중 매출타격투쟁(4차)'이 벌어지고 있다.

5일 오후 서울 홈에버 목동점 앞.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주최로 '이랜드 유통매장 집중 매출타격투쟁(4차)'이 벌어지고 있다. ⓒ 안윤학

해고, 1년 뒤 또 해고...회사 측 "정당한 결정"

정씨의 복직에는 '정직 1개월'이라는 조건이 따랐다. 결국 정씨는 회사를 상대로 3개월간을 맞서 싸웠고 1개월 징계를 받는 등 총 4개월 동안 일손을 놓았던 셈이다. 정씨는 지난해 10월께야 비로소 일터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정씨는 첫 번째 해고를 당한 지 1년 뒤인 6월 10일 또 한 차례 날벼락을 맞았다. '계약 기간 만료'로 회사 유니폼을 재차 벗어야 했던 것이다.

정씨는 "책임감과 주인 의식을 가지고 사장과 다름없이 열심히 일했다"면서도 "'복직되고 고작 7개월을 더 일하려고 지난해 힘겹게 싸웠나' 하는 생각에 피눈물이 났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두 번째 해고된 뒤에는 "내 아이를 잃은 마음이었다"면서 "비정규직의 설움을 모르고 살다 막상 내 일이 돼 보니 분노가 터져 나왔다"고 털어놨다.

정씨는 고용보장을 받는 조합원이었다. 그는 까르푸 시절 회사 측과 노조가 맺었던 '18개월 이상 근무한 직원에 대해서는 계약기간을 이유로 해고하지 않는다'는 단체협약 조항을 적용받는 노동자였다. 따라서 회사 측이 정씨를 해고하기 위해서는 징계위원회 등 정당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 그러나 회사 측은 계약 만료를 이유로 정씨를 해고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홈에버 목동점 인사과의 한 관계자는 "현재 지노위에 구제 신청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입장을 밝히기 어려운 상황"이라고만 전했다.

"10 분 시위? 100시간 일하는 게 마음 편하지만..."

정씨는 회사 측으로부터 두 번이나 버림을 받았다. 그래서였을까. 집회에 나서는 그의 마음가짐은 남달랐다.

정씨는 "이제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홈에버를 비롯해 모든 비정규직을 위한 싸움이 됐다"면서 "억울하게 구속된 조합원들이 풀려나는 날까지, 해고된 비정규직 동료들이 복직되는 그날까지 싸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어 그는 "이렇게 집회 현장에 나와 동료들과 함께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고 토로했다.

정씨는 지난달 20일까지 총 20일간 진행된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점 점거 농성 당시에도 18일 동안 동료들과 함께 지냈다. 정씨의 꿈은 해고된 옛 동료들과 함께 일터에서 즐겁게 일하는 것이란다. 그는 최근 해고를 당하기 전까지 "정규직·비정규직 구분 없이 마음과 마음이 통하며 즐겁게 일했다"고 회상했다.

"해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10분간 시위를 벌이는 것보다 100시간 일하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하죠. 그러나 우리는 부당하게 해고를 당했고, 이미 먼 길을 왔습니다. 돌아갈 수 없는 길입니다. 고용안정, 해고자 복직, 가압류 해제, 비정규직 철폐 등이 이뤄지는 날까지 싸울 것입니다. 이랜드가 자본이 많으면 얼마나 많겠습니까? 동료들과 함께 하는 싸움은 지지 않습니다."

정씨는 "옛날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면서 "투쟁을 하다보면 정직원이 되는 꿈을 꿀 수 있어 마음이 오히려 편해진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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