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쓰레기, 황금 방망이인가 마약인가?

[해외리포트] '폐품 수집의 메카' 중국 광둥성 구이위진을 가다 ①

등록 2007.08.09 15:51수정 2007.08.22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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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구이위의 한 작은 창고에서 발견한 미국에서 밀수된 전자쓰레기.

구이위의 한 작은 창고에서 발견한 미국에서 밀수된 전자쓰레기. ⓒ 모종혁


a 갓 밀수돼 쌓여 있는 전자쓰레기 상자들. 최근 정부의 강력한 단속으로 분해 작업을 하지 못하는 전자쓰레기가 은밀하게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

갓 밀수돼 쌓여 있는 전자쓰레기 상자들. 최근 정부의 강력한 단속으로 분해 작업을 하지 못하는 전자쓰레기가 은밀하게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 ⓒ 모종혁


중국 광둥성 산터우시 차오난구 구이위진. 13만여 명이 거주하는 12개 마을로 구성된 면적 52.4㎢의 구이위는 중국에서 그리 크지 않은 읍 소재지다. 시 중심가에서 1시간 거리인 이 곳은 산터우에서도 특이한 존재다.

차오양·제양·푸닝 등 3개 도시의 교차점에 있는 구이위는 2003년 3월에야 차오양이 산터우에 합병되면서 도시 권역에 포함됐다.

이전까지 구이위는 사람이 많고 농토는 적은 지리적 환경에다 어느 곳도 관여치 않은 행정관리 때문에 1930~1940년대부터 특이한 산업이 태동, 성장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폐품 수집업. 구이위 사람들은 주변 도시 뿐만 아니라 460여㎞나 멀리 떨어진 광저우까지 오리털·돼지뼈부터 오래된 가구·폐 금속제품 등 다양한 폐품을 수집하러 광둥성 일대를 돌아다녔다.

폐품 수집의 고장, 새 사업 아이템은

1978년 덩샤오핑이 제창한 개혁개방정책에 따라 1980년 중국 국무원은 홍콩과 인접한 광둥성 선전·주하이·산터우와 타이완의 맞은편인 푸젠성 샤먼 등 4곳을 경제특구로 지정했다.

1966년 발동돼 중국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간 문화대혁명 시기에도 폐품 수집을 근근이 이어온 구이위는 개혁개방에 발맞춰 새로운 산업을 발육시켰다.


폐품 수집과 처리·재활용에 일가견이 있었던 구이위의 전통(?)과 외국산 제품이 물밀듯이 들어오는 개방도시 산터우와 가까운 지리적 조건 속에서 전자제품 폐기물 처리산업이 잉태된 것.

1980년대 구이위 일부 마을에서 쌓이기 시작한 외국산 전자쓰레기는 1990년대 들어서 구이위 전역으로 넘쳐났다.


2004년 9월 중국 국영 'CCTV'는 "1995년부터 전자쓰레기의 수입 및 처리·폐기는 구이위의 중요한 산업으로 정착했다"면서 "2004년 현재 구이위 주민들의 80%가 밀수된 전자쓰레기 관련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02년 10월 구이위를 처음 찾은 그린피스 홍콩지부 활동가 라이윈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내가 삼륜 오토바이를 타고 구이위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들어온 광경은 놀라운 것이었다. 집 곳곳마다 산더미처럼 쌓인 전기·전자제품의 폐기물, 아무런 안전장비 없이 맨손으로 폐품들을 분해 처리하는 주민들, 공기 중에 나돌며 숨을 제대로 쉴 수 없게 하는 매캐한 냄새, 전자제품 쓰레기들을 가득 실은 채 어디서인지 끊임없이 구이위로 밀려들어오는 트럭과 경운기…. 나는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유명한 전자폐품 처리기지 구이위에 발을 딛었음을 실감했다."

전자쓰레기로 살아가는 두 도시, 구이위와 롱탕

a 경운기로 운반되어 들어오는 전자쓰레기. 2004년 전까지 구이위에서 이런 광경은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경운기로 운반되어 들어오는 전자쓰레기. 2004년 전까지 구이위에서 이런 광경은 흔하게 볼 수 있었다. ⓒ 그린피스 홍콩지부

a 산업화된 전자쓰레기 관련 산업은 운송수단 또한 대형화했다. 현재 대부분의 전자쓰레기는 대형 트럭이나 컨테이너로 운반돼 구이위로 들어온다.

산업화된 전자쓰레기 관련 산업은 운송수단 또한 대형화했다. 현재 대부분의 전자쓰레기는 대형 트럭이나 컨테이너로 운반돼 구이위로 들어온다. ⓒ 그린피스 홍콩지부

지난달 26일 구이위를 찾은 기자는 라이윈이 목격했던 처절한 장면은 볼 수 없었다. 최근 중국과 외국 언론매체에서 전자쓰레기 고발기사를 잇따라 내보내서인지 낮선 외부인의 등장마저 극도로 꺼리고 있었다.

6월 11일 <로이터통신>은 구이위 현지르포를 통해 "현대판 골드러시의 마을인 구이위에서 노동자들은 안전 마스크도 없이 유독한 냄새를 맡으며 폐 컴퓨터를 분해하여, 가치가 높아진 구리와 같은 귀중한 금속을 추출한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매년 쓸모없어진 수백만 톤의 컴퓨터·키보드·텔레비전 세트·휴대폰 등 전자쓰레기가 바다를 통해 중국으로 밀수된다"면서 "작년 구이위에서는 3만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전자쓰레기 관련업종에 종사하고 한해 10억위안(한화 약 1200억원)의 매출액을 달성했다"고 전했다.

같은 달 8일 <신콰이바오>는 또 다른 전자쓰레기 처리산업의 메카 광둥성 칭유안시 롱탕진의 실상을 심층 보도했다. <신콰이바오>는 "칭유안시 중심가에서 20여㎞ 떨어진 롱탕진은 인구 10만의 작은 읍 소재지이지만, 1000여개의 불법 전자쓰레기 처리공장에서 5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날마다 조업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콰이바오>는 "중국 정부는 외국 전자쓰레기 수입을 금지하고 있지만 제품에서 추출된 다양한 부품과 금속이 높은 이윤을 보장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며 "지난 몇 년 동안 구이위가 정부의 지속적인 단속으로 쇠퇴의 길을 걸으면서 롱탕진이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구이위에서 만난 한 주민은 "한동안 각종 언론매체에서 시끄럽게 전자쓰레기 관련 문제를 떠들어대면서 요즘 단속이 심해진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20여년을 이어온 산업의 명맥은 앞으로도 끄떡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높은 환경규제와 처리비용 피해 저개발국으로 수출

a 길바닥에서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작업하는 구이위 주민들. 지금은 실내에서 가내 수공업 형태로 분해 작업이 이뤄진다.

길바닥에서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작업하는 구이위 주민들. 지금은 실내에서 가내 수공업 형태로 분해 작업이 이뤄진다. ⓒ 그린피스 홍콩지부

a 전자쓰레기 더미는 구이위 아이들에게 놀이터이자 장난감이었다. 구이위 어린이들은 심각한 납 중독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전자쓰레기 더미는 구이위 아이들에게 놀이터이자 장난감이었다. 구이위 어린이들은 심각한 납 중독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 그린피스 홍콩지부

21세기 새로운 패권국인 중국이 전자쓰레기로 몸살을 앓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전자쓰레기는 쓸모없게 된 컴퓨터·휴대폰·전화기·복사기·TV·냉장고·에어컨 등과 폐기된 전자전기제품을 통칭한다.

국제연합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매년 5000만 톤의 전자쓰레기가 발생하는데 그 중 70% 이상이 중국으로 유입되고 있다.

대부분의 전자쓰레기는 미국·일본·유럽 등 선진국에서 발생하지만 중국을 비롯해 인도·아프리카로 수출되고 있다. 자국 내의 까다로운 환경규제와 높은 처리비용을 피해서, 돈을 지불하고 타국으로 수출하는 것이 10배 이상 저렴하기 때문.

국제 NGO단체인 '바젤 행동 네트워크(Basel Action Network)'는 미국 정부의 통계를 인용하여 "미국에서 회수된 80%의 전자쓰레기가 아시아로 수출되고 그 대부분이 중국에 보내진다"고 지적했다. 본래 전자쓰레기는 1992년 발효된 바젤협약에 의해 유해 폐기물의 하나로 규정돼 국가 간 이동이 금지되어 있다. 중국도 2000년 4월 관련 법률을 시행하여 전자쓰레기의 공식적인 수입을 금지했다.

그러나 오늘날 전자쓰레기는 중국인들에게 매력적인 비즈니스 상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전자쓰레기 수입이 짭짤한 돈벌이가 되는 데다 일부는 가공하면 완제품 혹은 뽑아낸 부품을 각각 재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부분의 제품에서 금·은·구리·크롬·아연·니켈 등 고가의 금속물질을 대량으로 추출한다. 바젤 행동 네트워크는 "1톤의 전자쓰레기에서 143㎏의 동, 0.5㎏의 금, 2㎏의 각종 금속이 추출되는데 그 현금 가치는 미화 6000달러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전자쓰레기가 단순한 쓰레기가 아니라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셈이다.

강력한 단속에도 번성하는 전자쓰레기 산업의 생명력

a 지방정부가 롱탕진의 전자쓰레기 처리공장을 철거하는 모습. 이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떠나지 않고 공장이 다시 열릴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지방정부가 롱탕진의 전자쓰레기 처리공장을 철거하는 모습. 이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떠나지 않고 공장이 다시 열릴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 신징바오

a 선전시 화창베이루(華强北路) 전자상가에서 컴퓨터를 갓 구입한 젊은이들. 날마다 쏟아지는 신제품은 전자제품의 수명을 갈수록 단축시키고 있다.

선전시 화창베이루(華强北路) 전자상가에서 컴퓨터를 갓 구입한 젊은이들. 날마다 쏟아지는 신제품은 전자제품의 수명을 갈수록 단축시키고 있다. ⓒ 모종혁

전자쓰레기가 안겨주는 막대한 부는 관련 산업 업자들에게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2002년부터 구이위를 비롯해 중국 전역에 널려 있는, 외국에서 유입된 전자쓰레기 처리지역의 실상이 잇달아 보도됐다. 그러나 그 어느 지역에서도 전자쓰레기 관련 산업의 명맥이 끊기지 않았다.

작년 5월 산터우시 환경보호국의 내부보고서는 "구이위 전자쓰레기 처리산업의 완전한 척결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보고서는 "수십 년 동안 발전한 전자쓰레기 처리산업은 현지의 지주산업이자 주민들의 주요한 수입원"이라며 "높은 경제적 이익에다 빨라진 전자제품의 갱신으로 끊임없이 폐품들이 쏟아져 나와, 강력한 단속을 해도 단기적인 성과에만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3일 <남방도시보>는 중국 내 전자쓰레기 처리산업의 질긴 생명력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구이위에서 광둥성 북부 산골까지, 전자쓰레기 처리산업은 단속해도 결코 죽지 않는다. 1980년대부터 중국으로 유입된 대량의 외국산 전자쓰레기 뿐만 아니라 맹렬히 성장하는 중국 전자산업 발전과 더불어 전자쓰레기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언론매체와 국내외 NGO단체에서 지속적인 비판과 개입을 하고 정부 감독기관에서 단속해왔지만 전자쓰레기 처리산업을 몰아내지 못했다. 오히려 관련 산업은 지역을 더욱 확산하면서 견고한 산업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중국에서 전자쓰레기는 마약과 같다"

리(李)아무개 롱탕진 부진장은 <신콰이바오>와 인터뷰에서 "전자쓰레기 처리산업은 1970년대 말 형성돼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면서 "관련 산업은 완전히 경제적인 고려에 따라 형성, 발전한 것으로 매년 대량의 금속원료를 국가에 제공하는 이점이 있다"고 옹호했다.

우추이원 칭위안시 환경감찰대 대장은 "간단한 운송과 분해 처리, 저가의 운영자본으로 높은 이윤을 남길 수 있는 것이 전자쓰레기 처리산업"이라며 "트럭 한 대당 적게는 10만위안(약 1200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위안(약 1억2000만원)의 전자쓰레기를 들여와 20~30%의 순이익을 남기는데 누가 그 일을 마다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오랫동안 전자쓰레기의 문제점을 비판해온 라이윈도 "중국에서 전자쓰레기는 마약과 같다"고 단언했다. 라이윈은 "지금과 같은 지역보호주의의 상황 아래에서 지방정부가 강력한 단속을 하지 않으면 견고한 산업 카르텔을 뿌리 뽑기 힘들다"면서 "중국은 이미 전자쓰레기 하치장으로 변모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돈벌이에 눈먼 수입업자와 처리업자, 이들을 눈감아주면서 뒷돈을 챙기는 관리들, 내륙에서 일자리를 찾아오는 풍부한 노동력, 물밀듯이 밀려들어오는 외국산뿐만 아니라 자국 내에서 쏟아져 나오는 전자쓰레기의 홍수…. 이 모든 원인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오늘도 중국 곳곳은 쌓이는 전자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국 #전자쓰레기 #납 중독 #구이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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