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아프간 현지 취재 허용할 때다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남북정상회담과 아프간 인질사태

등록 2007.08.08 13:00수정 2007.08.09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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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통상부에 이어 한국신문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를 거쳐 한국기자협회 등으로 열심히 전화를 돌리고 있는데 느닷없이 한 사람이 묻는다.

"정상회담 열리는 것 알고 있어요?"

속으로 뜨끔했다. 이게 무슨 소린가. 남북정상회담 일정이 잡혔단 말인가? 어쨌든 지금까지 그것도 모르고 웬 엉뚱한 취재냐는 식의 핀잔 섞인 그 물음에 "정상회담,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라며 일단 받아넘기긴 했다.

실제 그렇다. 지난 주말부터 <조선일보> <한겨레> <경향신문> <한국일보> 등이 잇달아 제기하고 있는 정부의 아프가니스탄 현지 취재 불허 방침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 전화를 돌리고 있던 참이었다. 남북정상회담, 정말 중요하지만,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게 붙잡혀 있는 21명 인질들의 생명, 이것 또한 그 생명의 무게로 저울질해본다면 결코 그 어떤 것보다 가볍지 않을 터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는 것을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사실 오늘(8일) 외교통상부로, 신문협회로, 편집인협회로, 기자협회로 그렇게 전화질을 해댄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불안감 때문인지 모른다.

지난달 23일 아프간 피랍자 가족들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한민족복지재단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협상기간이 길어지면서 언론의 관심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지난달 23일 아프간 피랍자 가족들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한민족복지재단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협상기간이 길어지면서 언론의 관심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오마이뉴스 문경미
아프간 인질 사태에서 발 빼는 언론들

오늘 신문들을 보라. 아프간 인질 소식을 다루는 신문 지면은 며칠 전부터 눈에 띄게 줄었다. 하나마나 한 '공자님 말씀'만 잔뜩 늘어놓던 일부 신문들은 느닷없이 '미국책임론'을 부각시켜 '친미-반미'로 편을 가르더니, 이제는 조용히 발을 빼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길게는 해결까지 3년이 걸린 인질 사건도 있다"며 정부의 '집요함'과 마지막까지, 또 순간순간 '인내심'을 잃지 말 것을 촉구했다. <중앙일보> 또한 인질사태의 장기화를 예상하면서 "인내심을 갖고 정부와 관련국들의 노력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외적 위기 상황에는 '가족 희망'이나 '국민 정서'보다는 '국익'과 '국가 이성'에 따라야 한다는, 교과서 같은 '국가이성론'이 <중앙일보> 외부 필진의 칼럼 중간 제목으로 선명하게 뽑혀 있다.

다른 신문들의 지면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한 때 서너 면씩 할애하던 아프간 인질 관련 소식은 이제 한 면 정도로 줄었다. 이 한 면도 오래가지는 않으리라. 게다가 남북 정상회담 같은 '빅 이벤트'까지 벌어진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래서다. 지금이라도 기자와 PD들의 아프가니스탄 현지 취재를 허용해야 하는 것은. 기자를 비롯한 언론인들의 안전 문제, 결코 가볍게 생각할 수 없다. 기자들을 사지(死地)로 몰아넣자는 것도 아니다. 또 누가 강요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현지 취재에 나서겠다는 용기 있는 언론과 언론인들이 있다면, 이제는 그것을 허용할 때가 됐다.

어제 <한겨레>의 집중적인 문제 제기에 이어 오늘 <한국일보>는 김승일 국제부장의 칼럼을 통해 '외신의 포로가 된 한국 언론'의 답답한 자화상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국제 뉴스의 흐름을 압도해 온 이른바 서방언론들의 침묵에 가까운 인색한 보도, 이런 취약성을 모면해보고자 시도하고 있는 아프간 현지 통신원들을 통한 간접취재의 함정, 이래저래 외신과 통신원, 그리고 탈레반과 아프간 정부 관계자들의 언론플레이성 정보 제공 등에 휘둘리고 있는 답답한 한국 언론의 현실은 '독자적 취재'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반증일 것이다.

김승일 국제부장은 다만 그 길잡이가 될 만한 NHK 등 일본 언론의 사례를 들어 "긴 세월을 통한 취재원 확보 노력" 필요성을 그 선행 조건으로 제시했다.

아프간 현지 취재 포기는 '직무유기'

하지만 바쁜 걸 어찌하랴. 1994년 체첸 전쟁이 발발했을 때 당시 모스크바 특파원이었음에도 신변 안전 때문에 현지 취재를 포기했던 '과거'를 고백하고 나선 <경향신문>의 김철웅 논설위원은 절박한 목소리로 호소한다. 자칫 '맨땅에 헤딩하기'가 될지 모르지만, "당장 필요한 것은 지금이라도 우리 시각으로 사건을 보고 분석하는 일"이라면서 "언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의무"인 '현장취재 포기는 직무유기'라고 자신을 질타했다.

그렇다면 그 첫 출발은 아프가니스탄 현지 취재의 물꼬를 트는 일이 아닐까? 그래서다. 한국신문협회나 편집인협회, 기자협회 등 언론 단체에 전화를 돌린 것은.

참여연대, 평화여성회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아프간 피랍자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7일 오전 서울 광화문 인근 가로수에 노란 리본을 매달고 있다.
참여연대, 평화여성회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아프간 피랍자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7일 오전 서울 광화문 인근 가로수에 노란 리본을 매달고 있다.오마이뉴스 남소연
이미 아프가니스탄 현지 취재의 필요성을 역설한 한국기자협회 이외에는 이와 관련해 아직까지 '공식입장'을 천명한 곳은 없다. 국정홍보처가 마련한 엠바고 지침 등에 대해 편협 등 언론단체는 긴급 성명을 통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나섰다. 그러나 지금 더 시급한 일은 아프가니스탄 현지 취재에 대한 '원천 봉쇄'부터 푸는 일 아닐까.

그 와중에 남북정상회담 소식이 들려 왔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저 머나먼 아프가니스탄에 억류돼 있는 한국인 인질들에게는 그리 좋은 소식은 아닐 듯하다. 서서히 잊혀진다는 것, 기억이 희미해진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재앙과도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위해서라도 언론의 아프간 현지 취재를 허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정부의 주요 정책 자원과 역량, 핵심 인력을 정상회담 쪽에 배치하는 수밖에 없다. 그 공백을 메워줄 수 있는 것은 언론밖에 없다. 그래야 기존의 외교 역량이라도 제대로 가동될 것이다.

무엇보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현지 취재에 나서고자 하는 용기 있는 언론과 언론인들이 있다. 이들에게 최소한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 그것이 한국 언론의 질적 수준을 진정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또 이미 현지에서 취재하고 있는 한국 언론인도 있다.
#백병규 #미디어워치 #남북정상회담 #아프가니스탄 #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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