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또 시작입니다

'일본군위안부 역사관' 개관 9주년 및 광복절 행사

등록 2007.08.13 09:24수정 2007.08.1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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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어제 8월 12일, 날은 잔뜩 흐렸고 아침부터 엷게 빗발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비는 오전내내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경기도 퇴촌의 원당리에 자리한 ‘나눔의 집’에서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개관 9주년 및 광복절 기념 행사가 열리는 날입니다. 역사관이 온통 비에 젖기 시작합니다.

비는 사람들에게 두 모습으로 다가서곤 합니다. 하나는 생명의 젖줄로 다가서는 단비이고, 한편으론 찌푸린 궂은 날씨의 또다른 이름입니다. 일제가 남기고 간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곳에서 비는 청산되지 못한 역사가 남긴 먹구름입니다. 역사관의 한쪽 뜰에 마련된 할머니의 조각상도 비에 젖습니다. 비는 할머니의 얼굴에서 눈물처럼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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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행사를 앞두고 양평 양서고의 학생들이 자신들이 마련해온 선물을 벽에 걸고 있습니다. ‘할머니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메시지’를 모아 왔습니다. 들여다 보니 눈에 띄는 문구가 있습니다. “할머니들의 빼앗긴 순정을 우리가 되찾아 드릴께요”라는 말이 눈길을 끌어당깁니다. 그 뒤에 “힘내세요”라는 응원과 “일본은 각성하고 배상하라”는 구호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역사의 한을 짊어지고 계신 할머니들이 역사로 다시 보답받을 거예요”라는 문구도 눈에 띕니다. 한의 역사가 짓밟히고 잊혀진 역사라면 보답받을 역사는 함께 싸워서 다시 일으켜 세우는 역사입니다. 학생들이 마련해온 작은 선물이 먹구름을 약간 걷어내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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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첫번째 행사는 워싱턴 정신대대책위원회 서옥자 위원장(사진에서 왼쪽으로부터 두번째)의 강연회였습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과 사죄를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지난 7월 30일 미의회에서 통과된 위안부 결의안이 발의되어 통과되기까지의 과정과 뒷얘기들을 들려주었습니다.

왜 우리와 일본의 문제를 미국 의회의 힘을 빌려야 하는가에 대해선 이 문제가 전세계가 관심을 가져야할 인간의 기본적 인권에 관한 문제라는 점을 가장 먼저 손에 꼽았고, 미국이 이 문제에 대해 일본을 향해 목소리를 내주어야 할 의무에 대해선 마틴 루터 킹의 말을 인용하여 “결국은 우리는 적의 망언보다 친구인 미국의 침묵을 기억하게 될 것”이라는 말로 미의회의 의원들을 설득했다고 했습니다.

이종연 전 미국 법무부 선임 변호사는 이번 결의안 통과가 끝이 아니라 이것이 또다른 시작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이 문제를 유엔에 상정하여 세계의 관심을 모으자는 뜻이었습니다. 미의회에서의 위안부 결의안 통과는 이제 또다른 시작입니다. 바깥엔 여전히 비가 오고 있었지만 빗발은 그 기세가 많이 꺾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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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그리고 거짓말처럼 빗발이 멈추더니 할머니 조각상에서 어느 덧 눈물이 말랐습니다. 하지만 아직 표정은 어둡습니다. 할머니의 얼굴에 오늘 미소를 선물하고 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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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오후의 공연을 앞두고 김문수 경기도 지사가 행사장을 찾았습니다. 할머니들께 할머니나 어르신네라는 보통의 표현대신 "어머님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습니다. 김문수 지사는 "한국의 역사는 미국에선 구석의 역사일 수밖에 없으며, 그 중에서도 위안부의 역사는 그 구석의 버려진 역사"였다고 말을 뗀 뒤, 그 구석의 버려진 역사를 미의회의 한가운데서 일으켜 세운 할머니들과 미국 교포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습니다.


이어진 참석자들과의 대화에선 이번에 미국에 다녀오신 김군자 할머니가 단연 발군의 유머 감각을 발휘했습니다. 할머니들을 위한 요양원 건립을 부탁받고 광주 시장이 좀 시간이 걸린다고 하자 김군자 할머니는 "그럼 5분 드리면 시간은 충분하겠지요?"라고 맞받았습니다. 할머니의 재치는 모든 사람들의 웃음이 되었습니다.

한국정신대연구소의 이성순 소장은 이번 미의회에서의 결의안 통과에 대해 박수를 아끼지 않으면서도 국내의 무관심에 대해선 매우 안타까워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문제를 중심으로 보면 일본 내에서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심보다도 국내의 관심이 더 못하다고 말했습니다. 하긴 나눔의 집도 일본인들이 더 많이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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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간간히 비치는 빗줄기 때문에 일단 실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마추어 해금협회에서 첫순서를 맡아주었습니다. 실내 공연 때는 다음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과 해금협회의 공연자들이 나란히 앉아 마주하는 진풍경이 연출되었습니다.

학생들이 준비한 공연은 대부분 풀륫과 바이올린, 색소폰과 같은 서양악기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음악으로보면 동양과 서양의 음악이 나란히 마주한 셈입니다. 마치 위안부 문제에 대해 우리와 서양이 따로없듯이 할머니들을 위한 공연 자리에서도 우리와 서양의 음악이 따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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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해금협회 회원으로 행사에 참석한 이원재씨의 품에선 예쁜 딸 조희양이 음악을 듣고 있습니다. 할머니에게 조희양은 예쁜 손녀입니다. 예쁜 손녀는 아빠의 손을 잡고 나눔의 집을 찾는 것만으로 할머니들께 큰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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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비가 그치면서 공연은 역사관 광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야외에서의 공연은 청심국제고의 프론티어 소리회가 풀룻 연주로 시작했습니다. 풀룻의 선율이 사람들 마음에 아름다움 선율을 채우고, 하늘도 언듯언듯 푸른 얼굴을 내밀며 그 선율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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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보고 있던 박옥선 할머니의 얼굴에서 보일듯 말듯 엷은 미소가 스며나오기 시작합니다. 할머니의 삶에 드리운 먹구름이 조금 걷히는 느낌입니다. 할머니들은 이날 “죽기 전에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받고 싶다”고 말씀하셨죠.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힘을 모아 그 힘으로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는 날, 할머니 얼굴에서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는 웃음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이어 양평 양서고의 동아리 햇담에선 '학교를 넘어서'라는 제목으로 짧은 연극을 하나 마련했습니다. 입시 공부에 찌들려 있는 학생들이 나눔의 집 봉사를 계기로 위안부 역사에 눈을 뜬다는 내용입니다.

연극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아니, 정말 이런 일이 있었어”라는 대목이었습니다. 자신들과 똑같은 나이에 끌려간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을 목도한 순간 저절로 튀어나온 말이었습니다.

햇담은 햇살담아를 줄인 말이라고 합니다. 정말 젊은 학생들의 따뜻한 마음으로 역사관 광장에 햇살이 가득 담긴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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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공연의 마지막 순서는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이경욱 학생이 맡았습니다. 색소폰 연주였습니다. 치매 증상으로 정신을 놓았다 들었다 하는 지돌이 할머니(사진의 왼쪽)가 부원장 스님과 함께 색소폰 연주를 듣습니다.

환한 햇살이 광장으로 밀려들고 있었습니다. 먹구름과 비로 시작한 하루를 햇살이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나눔의 집 홈페이지: www.nanum.org 또는 www.cybernanum.org
나눔의 집 후원 및 자원봉사 문의 전화: 031-768-0064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됩니다. 블로그--> 김동원의 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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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갖고 돌아다니면 세상의 온갖 것들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고 그들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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