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희식
호박잎 껍질을 벗기고 있던 한 할머니가 비에 쫄딱 젖어 들어오는 나를 고생한다고 격려를 하자 옆에 있던 할머니가 대뜸 말허리를 자르고 하는 얘기다. 작년 8월에 옥수수대가 다 부러져 날아가고 지붕이 날려서 개골창에 처박혔던 이야기가 시작된다.
밭에서 따 온 토마토 소쿠리를 할머니들 앞에 내려놓고 잡수시라고 하자 한 할머니는 "집에 어머니 갖다드리지 여기 줄 게 어딧냐?"고 사양했다. 그러자 또 다른 할머니는 토마토 소쿠리를 휙 끌어당기면서 무슨 소리냐고 하신다.
"주는 거는 일단 받아먹는 겨. 고맙다 그러고 우선 챙겨놓고 보는 겨." 억척스런 그 할머니의 말투에 할머니들이 와르르 웃었다.
"맞어 맞어. 자식들이나 사위가 돈 줄때 '괘안타. 나도 있다.' 그러면 안 돼야. 그러면 담부터 절대 안 줘어."
"있을망정 받아야지 무슨 소리여. 저것들이 도시 나가서 돈 벌먼 지 에미 용돈이나 푸짐하게 줘야지 안 그럴꺼면 돈 왜 번디야?"
"요즘은 돈 벌기도 힘들어 야."
"돈 있으먼 뭐 해여어! 동네에 수퍼가 있나 도가가 있나. 쓸데가 있어야제?"
"그 돈 다 저것들 자식들한테로 도로 되돌아가는 거여. 손자손녀들 귀엽다고 주는 돈이 그 돈이 그 돈 아녀?"
"저 아래 형엽이네 손자는 이번에 셋째 놧다매?
"여름휴가 때 집에 아들은 온대 안 온대? 우리 아들은 해외로 간다고 몬 온다나 어쩐다나."
토마토 한 소쿠리를 놓고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온 세상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여름 장맛비처럼 질기고 질긴 이바구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