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 신라적성비 모습이기원
적성(단양의 옛 지명)은 죽령이 가로막고 있어 신라가 쉽게 공격하기 어려운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는 진흥왕 때 죽령을 넘어 이곳을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꼭 점령해야 할 곳이 적성이었기 때문이다. 이 비는 진흥왕이 적성을 점령한 뒤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내린 상의 내역이 적혀 있다.
공을 세워 상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신라의 장수들이었지만 적성 출신 야이차란 사람도 등장한다. 비문에는 야이차와 가족 등에게 상을 내린다는 내용도 있다. 신라가 적성을 점령할 때 일부 지역 주민의 도움이 있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더불어 점령지 주민들의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발견되기 전 이 비석은 대부분 땅에 묻히고 윗부분만 약간 드러난 상태였다. 이 산을 오르내리던 사람들은 땅 위로 드러난 비석 윗부분을 신발에 묻은 흙을 터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우연이 어떤 사람이 돌에 글씨가 있는 거 같다는 제보를 하게 되어 단국대학교 조사팀에 의해서 아주 중요한 비석이라는 게 밝혀졌다.
"삼국시대 한강을 장악한 나라가 항쟁의 주도권을 잡았지요. 고구려가 적성을 차지했을 때는 삼국 항쟁의 주도권이 고구려에게 있었지요. 그런데 신라에게 적성을 빼앗기면서 주도권은 신라로 넘어가게 됩니다. 신라는 적성을 점령해서 한강 상류를 장악했어요. 그 뒤에 한강 하류마저 차지하면서 삼국 항쟁에서 주도권을 차지하게 됩니다."
황재연 선생님은 설명을 마친 뒤, 아이들을 데리고 산을 넘어 적성으로 갔다. 적성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정말 볼만한데 아쉽게도 비안개가 자욱해서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저 아래 흐르는 강이 남한강이에요. 적성을 기준으로 북쪽이지요. 적성 남쪽으로는 죽령이란 험한 고개가 있어요. 북쪽에는 강이 흐르고 남쪽에는 험한 고개가 있으니 적성은 요충지가 맞지요."
설명을 듣고 내려오는 길까지 비안개는 따라왔다. 성벽은 길게 꼬리를 내려 내려가는 아이들에게 길 안내를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