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 여성은 왜 배제하나?

[인터뷰] 이현숙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등록 2007.08.22 16:20수정 2007.08.22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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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현숙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이현숙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 여성신문

[홍지영 기자]10월 2일 평양에서 열리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될 거라는 기대감이 높다. 정상회담 준비위원회측은 이번 정상회담 의제를 ▲한반도 평화 ▲민족 공동 번영 ▲조국통일의 새 국면 등 크게 세 가지로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지난 14일 밝혔다. 방북대표단 규모도 지난 2000년 1차 정상회담 때보다 30명 늘어난 212명으로 확정했다. 육로를 통해 평양을 방문하는 첫 사례인 데다가 두 정상 모두 스케일이 크고 거침없는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회담 성과에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14일 서울 남산동 집무실에서 만난 이현숙(62)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도 이번 정상회담에 큰 기대감을 표했다. 여성평화운동에 투신한 이력을 갖고 있는 데다 남북 여성 간 민간교류의 첫 물꼬를 튼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 부총재는 인터뷰 내내 고조된 목소리로 한반도 평화 정착에 대한 자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적을 친구로 만드는 게 바로 평화"라면서 "평화가 결코 어렵거나 먼 얘기가 아니다"라는 말로 운을 뗀 이 부총재에게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여성의 역할'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다음은 이 부총재와의 일문일답.

-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됐다. 회담 결과에 대해서는 국민들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성과가 없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더 우세하다. 이번 회담을 어떻게 보나?
"먼저 회담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쏟아진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 반대의견이 있음으로 해서 내용이 정교해지게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상생의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한다. 독일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결과적으로 성과 없는 회담이란 없다. 성과가 없는 것처럼 보여도 알고 보면 다음 회담의 초석이 되는 거다.

무엇보다 '대화'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반세기 넘게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말이 안 통한다고 아예 얼굴도 안보는 게 아니라 꾸준히 대화를 해야 한다. 특히 이번 회담은 6·15 공동선언 이후 7년 만에 두 정상이 만나 결산하는 자리다. 때문에 모자란 점이 있다면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진척시킬 수 있는 호기가 될 수 있다."

- 이번 회담 의제 중 하나가 '한반도 평화'다.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북핵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그런데 북핵의 경우 이미 6자회담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을 거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에 대한 생각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이루기 위해 성과 있는 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게 모든 국민의 바람이다. 사실 6·15 공동선언에도 이와 관련한 내용은 없었다. 따라서 반드시 이번 회담에서 중요 의제로 논의돼야 한다. 다만 북한 영변 핵시설 폐쇄 등 2·13 합의가 기본 틀로 마련돼 있으니까 2·13 합의가 굳건하게 뿌리내릴 수 있는 정도의 대화가 됐으면 좋겠다."

여성이 '피스메이커' 역할, 평화협상에 여성목소리 반영해야


이현숙 적십자사 부총재는?

1946년 충북 영동에서 태어났다. 한국신학대학(신학)과 이화여대 대학원(기독교학)을 졸업했고, 가톨릭대 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교회 여성단체에서 빈민촌 어린이·여성들을 위한 교육·복지활동을 펴기도 했다. 이후 재단법인 크리스찬아카데미에서 여성교육부장으로 일했고, 가정폭력 문제를 다루는 사단법인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전신인 '여성의전화'를 만들었다.

2002년에는 남북여성대회를 조직해 분단 후 최초로 700여명의 남북 여성들이 금강산에서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05년에는 노벨평화상 1000인 여성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같은 해 이산가족상봉방문단 단장을 맡았다. 2004년 7월부터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로 인도주의 평화운동 및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 이번 회담과 관련해 실무 및 대표단에 여성을 참여시키지 않아 여성단체연합 등 여성계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를 어떻게 보나?
"남북 철도·도로 개통식이 2005년에 있었다. 내빈들이 단상에 일렬로 나와 개통을 알리는 버튼을 힘껏 눌렀는데 다 남자였다. 당시 한명숙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이 내게 직접 전화를 걸어 '남북통일은 남자끼리 하겠답니까?'라며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나도 개통식에 초대받긴 했지만 단상에 공교롭게도 여성은 없었다.

지난 1차 남북정상회담에서도 이희호 여사와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이 대표단이 아닌 수행원 자격으로 참석했다. 결과적으로 여성의 존재를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게 지난 회담의 결과다. 부디 이번 회담에는 인구의 절반인 여성의 대표성이 반영될 수 있도록 상징적 숫자라도 참여시켜야 한다. 이번 회담이 세계적인 관심거리라 전 세계에 타전될 텐데 화면 가득 남성만 있으면 한국에 여성들은 안 살고 있나보다 할 것 아닌가. 가능하다면 국제표준에 따라 최소 30%를 여성이 채웠으면 좋겠다."


-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나아가 국제사회의 평화를 위해 '여성'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지적돼 왔지만 정부의 노력은 부족한 것 같다. 특히 여성·평화 관련 연구자들은 북핵문제나 한반도 평화체제 형성과 관련해 젠더 관점이 부재하다고 지적한다. 이와 관련해 정부가 어떤 노력을 더 해주기를 기대하나?
"이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 2000년 10월 '여성·평화·안보에 관한 결의안 1325'를 통과시켰다. 이 결의안은 분쟁을 예방하고 관리·해결하는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 반드시 여성을 참여시키고, 젠더 관점을 포함시키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 결의안은 전쟁과 같은 무력갈등이 여성의 삶을 (남성과는 다른, 또는 성별화 된 방식으로) 굉장한 고통 속에 빠뜨린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무력갈등이 여성의 삶을 일생 동안 어떻게 제약하고 고통에 빠뜨리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전형이다. 유엔 헌장에 안보리 결의안은 모든 유엔 회원국이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과 북한도 이 결의안을 이행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남북한 정부는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체제, 통일의 길 등을 모색하는 모든 평화과정에 여성을 참여시키고, 여성의 관점과 목소리와 희망을 반영하도록 평화협상의 모든 테이블에 여성대표성을 확실하게 부여해야 한다. 더불어 여성이 피스메이커(peace maker)로서 지속가능한 평화를 건설(peace building)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적을 친구로 만드는 것이 바로 '평화'

a 2002년 북한 금강산에서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여성통일대회'가 열렸다. 700여명의 남북 여성들이 한자리에 모여 남북 화해의 장을 마련했다. 이현숙(왼쪽에서 두번째) 부총재는 남북여성통일대회 추진본부 상임본부장 자격으로 참가했다.

2002년 북한 금강산에서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여성통일대회'가 열렸다. 700여명의 남북 여성들이 한자리에 모여 남북 화해의 장을 마련했다. 이현숙(왼쪽에서 두번째) 부총재는 남북여성통일대회 추진본부 상임본부장 자격으로 참가했다. ⓒ 여성신문

- '평화'라고 하면 일반인들에게 자칫 추상적인 개념으로 보일 때가 많다. 이를 위해 평화교육을 체계화해 실시하자는 목소리도 있는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분단 상태에서 남북대결 상황이 해소되지 않으면 전쟁위협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한다. 통일되면 남북의 역량이나 자원이 합해져서 민족 생존과 번영에 큰 이익이 된다. 그런데 통일로 가려면 남북 간 적대관계가 먼저 해소되어야 하지 않겠나. 평화란 바로 이 적대관계를 바꾸는 데서 시작된다. 쉽게 말해서 '적'을 '친구'로 만드는 것, 이것이 평화다.

북한은 피를 나눈 형제자매지만 오랫동안 적이었다. 이들을 적이 아닌 동포로 인식하는 것, 이것이 평화의 출발이다. 가정에서도 가족들이 계속 싸우고 반목하면 가족 개개인들은 불행하고 평화가 없다. 마찬가지다. 가족 간에나 국가 간에도 어떻게 덜 싸우고, 싸우더라도 쉽게 화해할 수 있는 방법을 훈련하고 학습한다면 그만큼 평화가 더 잘 지속될 것이다. 우리는 반세기가 넘도록 싸우고 반목해왔기 때문에 더 많은 학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초·중·고교에서 대학원까지 정규교육 과정에 평화교육이 필수과목으로 채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상임대표를 맡고, 대통령 통일고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 한국평화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 2005년에는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노벨상에 추천되기도 했는데, 여성·평화운동에 투신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한국전쟁 직후 초등학생이 된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온통 회색빛이었다. 전후 불안한 시기를 겪으면서 뭔가 자유롭지 못하고 무언가에 갇혀 있는 느낌이었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대학시절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내가 힘들어 했던 부자유함이 '분단'과 연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던 차 30대 중반 영국에 건너가게 되었다. 당시에는 유럽의 평화운동이 최고조에 달했던 때였다. 어느 날 핵미사일 기지로 알려진 그린엄 지역에서 텐트를 치고 반핵 평화캠프를 벌이는 여자들을 만나게 됐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반도야말로 여성들의 평화운동이 더 절실한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이 50이 되면 평화운동에 나설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그때쯤이면 내 나름의 철학도, 목소리도 갖게 될 것이고 비로소 나 자신의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였다. 놀랍게도 50이 됐을 때 나는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비전을 갖고 소망하면 반드시 되는 게 바로 인생이더라.(웃음)"

- 아프간 피랍사태와 관련해 적십자사의 역할이 급부상했다. 피랍자 석방은 물론 탈레반과 한국협상단을 위해 협상 장소도 제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적십자사가 하는 일을 소개해 달라.
"이번에 알려진 '적신월사'는 이슬람 지역에서 활동하는 적십자사를 일컫는다. 이스라엘에선 '적수정'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무력갈등 지역에서는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각국 적십자사(적신월사)의 협력을 받으며 제네바 협정에 따라 인도적 활동을 벌이고 있다. 현재 아프간에는 1000여명의 ICRC 직원들이 전쟁피해자들을 위해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다. 피랍 발생 직후인 지난달 25일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피랍자들이 안전하게 풀려날 수 있도록 중재자 역할이나 중재 장소를 제공해줄 것을 ICRC에 요청했다. 다행히 탈레반도 국제적 신망이 높은 ICRC를 신뢰해 피랍자 2인이 석방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관례로 볼 때 회담이 길어지면 석방 가능성이 그만큼 더 높아진다고 하니 인내심을 가지고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무슬림에선 여성, 특히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이 깊다고 한다. 남아있는 19명의 석방을 위해 특히 한국의 어머니들이 더 많은 관심과 의견을 표명해줬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희망을 갖자."

a 2002년 10월 이라크 침공 1주년을 맞아 47개 여성·시민단체로 구성된 '반전평화공동행동'이 서울 광화문에 모여 반전운동을 벌였다. '평화를만드는여성회' 회원들과 함께 한 이현숙(왼쪽에서 네번째) 부총재.

2002년 10월 이라크 침공 1주년을 맞아 47개 여성·시민단체로 구성된 '반전평화공동행동'이 서울 광화문에 모여 반전운동을 벌였다. '평화를만드는여성회' 회원들과 함께 한 이현숙(왼쪽에서 네번째) 부총재. ⓒ 여성신문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린다.
"적십자에 와서 인간의 고통에 우선적 관심을 두는 인도주의 정신에 큰 감동을 받고 있다. 앞으로 평화운동도 인도주의적 접근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체제나 제도를 바꾸는 차가운 평화접근보다는 사람의 고통을 줄이고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고 사람의 마음을 더 훈훈하게, 사람들의 관계를 더 평화롭게 하는 따뜻한 평화접근 방식을 찾아 나설까 한다."
#이현숙 #대한적십자사 #인터뷰 #남북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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