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학교 급식 제공은 어른들의 의무

‘학교급식 지원조례 시행 촉구를 위한 토론회’에 다녀와서

등록 2007.08.24 08:39수정 2007.08.2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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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수요일 오후 1시 50분, 안양시청 6층 회의실은 분주했다. ‘학교급식 지원조례 시행 촉구를 위한 토론회’가 2시부터 열리기 때문이다. 안양시는 지난 2004년 10월에 주민 발의로 ’학교급식 지원조례‘를 제정했다. 조례의 주요 내용은 안양시내에 소재하는 초중고등학교 중 직영 급식을 실시하고 ’국내산 우수 농축 수산물‘을 식자재로 사용하는 학교에 대해 시에서 추가 경비를 지원해 주는 것이다.

조례는 제정됐지만 안양시는 지금까지 한 푼도 학교에 지원해 준 적이 없다. 2004년에 조례는 제정되었지만 아직까지 시행령 제정이나 예산 확보 등의 절차를 이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 경기도 ‘학교급식 지원조례’ 가 WTO 협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조례 무효 청구소송’ 이 제기되어 있다는 이유다. 다시 말하면 상급기관의 조례안이 소송에 걸려 있으므로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는 하위기관인 안양시에서 조례안을 시행할 수 없다는 것.

이날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토론회에 참석해 달라는 연락을 받고 며칠을 고민했다. 짧은 시간에 학부모 입장에서 설득력 있는 내용으로 친환경 우리 농산물 사용 필요성을 피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양시 담당 공무원이 반대 토론자로 나온다는 것이 나를 더 부담스럽게 했다. 분명히 급식 지원 예산을 지원 할 수 없는 갖가지 논리와 자료를 가지고 나올 터였기에. 그 논리에 대응할 수 있는 논리를 만들고 자료를 수집하는 일이 추가된 것이다.

지난해 여름, 학교급식 식중독 문제로 세간이 떠들썩했을 때도 비슷한 토론회에 학부모 대표로 참석한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위탁급식의 문제점과 친환경 우리 농산물 사용 필요성에 대해서 ‘발제’ 했었다.

“예산이 부족해서” 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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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선

발제자는 정명옥 영양교사(안양 삼성초등학교, 학교급식 전국네트워크 공동대표) 다. 일선에서 일하는 영양사답게 아이들 건강문제를 꼼꼼하게 짚었다. 발제문을 듣고 고3 비만율이 아시아 최고 수준이라는 것에 놀랐다.

아이들 체력이 해마다 나빠지고 있다는 통계는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눈으로 직접 보니 충격적이었다. 발제문에 따르면 ‘성장기에 비만이나 심각한 질병이 예상되는 아이들’이 전체 아동 인구 중 30%(2006년 기준)나 된다. 80년대 5%에 비하면 여섯 배나 높아졌다.

정명옥 영양교사는 자연환경이 점점 나빠지면서 어린이 건강이 악화되고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리고 대안으로 친환경 급식을 주장했다. 그러나 일선 학교에서는 ‘가격’ 때문에 쉽사리 친환경 급식을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친환경 농산물 가격이 일반 농산물에 비해서 높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부담스럽다는 것.

구체적 근거로 설문조사 결과를 제시했다. 친환경 식재료를 사용하지 않는 학교의 경우 학교장과 영양사 모두 “예산이 부족해서” 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안양시에 있는 초, 중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친환경 급식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38억원이 필요하다는 계산을 산출했고 안양시에서 내년 예산에 편성 해 줄 것을 요구했다. “아이들에게 질 나쁜 급식을 제공하려면 차라리 급식을 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말로 정명옥 영양교사는 발제를 마무리 했다.

첫번째 토론자 심규순 의원(안양시의회)은 WTO는 국가간의 협정이기에 광역 단체까지는 제약을 받더라도 시,군,구 단위는 제약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때문에 경기도가 급식조례 문제로 제소당한 것과 안양시에서 급식 조례를 시행하는 것은 연관이 없다는 것. 조례가 2004년도에 제정이 되었고 2005년도에 개정이 됐는데도 아직까지 예산을 한 푼도 배정하지 않은 것은 안양시 담당 공무원의 ‘직무유기’라고 성토했다.

드디어 내 차례다. 학부모들이 친환경 급식을 하자고 학교 측에 요구하고 싶어도 급식비가 과다하게 인상되는 것이 두려워 말도 꺼내지 못하는 사정을 얘기했다. 참가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눈치다. 이날 참가한 사람들은 각 학교 영양사와 조리 종사원, 시민단체 회원, 생협 회원 등이다.

친환경 우리 농산물을 급식 재료로 사용하기 위해 내년 예산에 기필코 급식지원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것이 곧 우리 농촌을 살리고, 우리 아이들의 건강을 보살피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마지막 토론자인 안양시 담당 공무원의 논리는 빈약했다.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를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했다. 그가 발언을 마치자 패널들로부터 곧바로 반박이 쏟아졌다.

담당 공무원은 WTO 조달협정과 농업협정상, 시에서 우리 농산물을 직접 구매하여 지원해 주는 것은 가능하지만 경비를 지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때문에 안양시 조례를 개정하지 않고는 지원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안양시 조례에는 예산을 지원할 수 있게 명시되어 있다.

정 영양교사와 심 의원은 시, 군, 구는 WTO협정에 제재를 받지 않는다며 그의 발언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담당 공무원은 별다른 반응 없이 같은 말만 계속 되풀이 했다. 당초 예정은 2시간이었지만 토론회는 3시간 동안 진행됐다. 참가자들의 질문이 계속 쏟아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질문은 담당 공무원에게 쏟아지는 것이었다.

“내년 예산에 급식비를 편성하겠느냐?” 는 질문에 담당 공무원은 “대법원에 계류 중인 경기도 재판결과를 지켜본 후에 생각해 보겠다” 고 대답했다.

우리농산물 사용... 마음의 빚 갚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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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의 한 농가 (장을 숙성시키는 항아리) ⓒ 이민선

친 환경 급식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작년 10월 26일, 양평 농수산물 센터를 견학하고 난 이후부터다. 양평은 무너져 가고 있는 농가를 살리기 위해 군에서 정책적으로 친환경 농가를 지원해 주고 있었다. 이곳을 방문하기까지는 ‘친환경’ ‘무농약’ '저농약‘ 이란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농촌에서 태어나 농촌에서 성장기를 보내면서 늘 보아왔던 것이 농약 치는 광경이다. 때문에 ‘무농약’ ‘유기농’이라는 것을 그리 신뢰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모든 농가에서 독성이 강한 농약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말을 듣고는 신뢰하게 되었다. 부근에 있는 모든 농가가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면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에서다.

해충을 잡으려고 한 농가에서 농약을 살포하면 부근에 있는 농가는 모두 비슷한 농약을 살포해야 한다. 농약을 살포하지 않은 곳으로 해충들이 옮겨가기 때문이다. 만약 혼자만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친환경으로 농사를 지으려 한다면 그 농부는 해충들에게 작물을 모두 빼앗길 것이다. 그러나 모든 농가에서 농약을 뿌리지 않는다면 혼자만 굳이 독한 농약을 뿌릴 이유는 없는 것이다.

양평군에 있는 농가 중의 40% 정도가 현재 친환경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다고 한다. 양평군의 친환경 농가 비율이 높은 이유는 자치단체에서 정책적으로 지원해 줬기 때문이다. 11년 전부터 친환경 농작물을 재배하는 농가에 여러 가지 혜택을 주는 ‘인센티브 방식'의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2005년 12월에 '친환경 특구'로 지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양평을 방문한 후, 무너져 가는 우리 농촌을 살리려면 친환경 우리 농산물을 학교에서 식자재로 사용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농산물을 소비해줘야 농민들은 다시 힘을 내서 농사를 지을 것이다. 그러려면 법으로 강제할 수 있는 곳에서 우선 우리 농산물을 사용해야 하는 데 그 첫 번째 대상이 학교라고 생각했다.

날로 악화되어가는 환경 속에서 저항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아토피 등 각종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우선로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먹거리를 제공해야 하는 것은 어른들의 당연한 의무다. 환경을 악화시켜 놓은 것이 어른들이기에.

나를 키워준 곳이 농촌이기에 내 속 깊은 곳에는 항상 보답해야 한다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급식 문제가 불거져 나오면 만사 제쳐두고 뛰어가게 된다. 우리 농산물을 식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빚을 갚는 일이라 생각한다. 마음의 빚 갚을 때까지 열심히 뛰어다닐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안양뉴스(aynews.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안양뉴스(aynews.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급식 #안양시 #조례 #친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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