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듬떠듬 읽는 "저엉 구업 지너언..."

<엄마하고 나하고 18회>

등록 2007.08.25 11:12수정 2007.10.0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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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어머니는 먹던 과자를 내려놓고 스님들 욕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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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희식

“아이고오. 모내느락꼬 남은 바빠 죽겠는데 골목 밖에서 꼭 그라는 고마. 들으락꼬 목탁을 탕탕 침스로 동냥 달락꼬.”
어머니는 적어도 40~50여 년 전으로 돌아가셨다.
“중놈들이 꼭 혼자 안 댕기고 둘이 댕김스로 부지깨이 하나도 농사일에 나서는 판에 빌빌 돌아 댕기는 동냥아치들 보믄 속이 디비지는구마.”

고향마을에는 교회가 두 개나 있었고 절에 다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동네 사람들이 교회랑 이런저런 연고를 갖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교회에서는 항상 조상 제사 모시는 것이나 불상 앞에 가서 비는 것을 우상숭배라고 하면서 쫒아 버려야 할 마귀라고 했었다.

어머니가 들려주는 스님과 얽힌 많은 이야기들은 모두 안 좋은 것들이었다. 제일 충격적인 것은 우리 동네 천석꾼인 맥꼴댁이라는 양반집에서 동네 앞을 지나가는 스님을 잡아다가 볼기를 쳤다고 하는데 연대는 이조 말엽 쯤 되어 보였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동네 앞을 지나가면서는 동네보고 절을 한 다음 신발을 벗어들고 가야 하는데 뻣뻣하게 고개 쳐들고 갔다는 것이다.

피 곤죽이 되어 풀려 난 스님이 돌아서면서 뭐라 뭐라 중얼거려서 맥꼴양반이 종을 시켜 다시 캐물었더니 냇가 물레방앗간 옆에 있는 키 큰 바위가 동네를 넘겨다보고 있어서 동네에 만석꾼이 안 난다는 것이었다.

욕심 많은 천석꾼 맥꼴양반은 돌쟁이들을 동원해 그 큰 돌 허리를 잘라서 두 동강이를 냈다고 한다. 그 날로부터 천석꾼 집안은 자식들 간에 송사가 벌어져 서울로 쌀가마니를 달구지로 쉴 새 없이 실어 날랐고 3년이 가지 않아서 집안이 폭삭 망해 거지신세가 되었다는 것이다. 집안에 망조가 들자 종들이 너도나도 빼 돌려서 실어 내는 쌀가마니 반의반도 서울에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에이 어머니는. 맥꼴양반이 몹쓸 짓 했네요 뭐. 지나가는 스님을 그렇게 했으니 종들한테는 평소에 잘 했겠어요? 요즘 스님들은 다 사람들 잘 되락꼬 하지 벌 주락꼬는 안 해요. 교회나 절이나 다 똑 같은 거라요.”
“하기사 교회 댕기는 것들도 지 욕심 차릴 때는 부모형제도 없더구마.” 어머니가 맞장구를 치셨다.

내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스님이 부처님오신 날을 며칠 앞둔 바쁜 중에도 우리집에 찾아 오셨다. 어머니 속옷이랑 반찬도 가져오셨고 금일봉까지 가져오셨다. 점심을 같이 먹고 가셨는데 어머니가 스님의 환한 웃음과 재롱(?)에 완전히 홀라당 빠지셨다.

“저 중은 좋네. 사람 좋아 보이네. 나무도 패 주고 늙은 내가 뭐락꼬 용돈까지 주시고.”
어머니 앞에 <불자독경>을 꺼내놓고 한번 읽어 보시라고 한 것은 부처님오신 날을 이틀 앞두고였다. 어머니는 첫 장을 넘기고는 천연스레 읽기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한자 한자 짚어가며 천수경을 읽는데 떠듬떠듬 하는 게 도리어 큰 스님의 독경처럼 관록 있게 들렸다.

“천언 수 겨엉. 저엉 구 업 지너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오 방 내 외 안 위 제 신 진 어은.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

처음 해 보는 어머니의 독경이 ‘개법장진언’으로 넘어 가면서는 반복되는 7음조에 운율까지 들어가면서 흥이 났다. 물론 잠시였지만.(계속)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농어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국농어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전희식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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