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시를 그린 드라마 <왕과 나>에 거는 기대

등록 2007.08.29 10:40수정 2007.08.29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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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을 접할 때, 가끔씩 답답한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있습니다. "설정이 역사적 사실과 다르지 않느냐"거나, "이런이런 장면은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있다"는 반응을 보이는 분들입니다.

사극에서 '역사적 사실 그 자체'만 보고 싶은 분은, 역사학 전공서적을 보시거나, 역사 다큐멘터리 DVD를 보시면 됩니다. 웃기게도 전공서적에서도 '역사적 사실 그 자체'에 대한 해석이나 견해가 학자마다 다른 걸 보실 수 있을 겁니다.

특히나 사극은 기본적으로 '팩션(Faction)'일 수도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이라 알려진 이야기에 충분히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역사도 알고 보면 기본적으로, 유물이나 유적, 기록으로부터 추정하는 상상이나 추리의 영역일 수도 있습니다.

왜 '상상' 그 자체에 대해 토를 다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분은, 그냥 사극 보지 마세요. 말씀드린 대로 역사학 전공서적 공부하세요.

"자녀들이 '역사적 사실'을 오해할 수도 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본인이 직접 교육하면 됩니다. 이 기회에, "이 아빠(혹은 엄마)가 학교 다닐 때 공부 좀 했다"고 자랑도 하고 얼마나 좋습니까?

그리고 거기에 "역사는 기본적으로 이긴 자의 기록이니, 역사를 공부할 때는 다양한 시각을 접하면 더욱 좋다"는 당부까지 남긴다면, 더 멋진 부모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내시'는 어떻게 그려져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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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나>의 한 장면 ⓒ SBS

2000년 5월 20일에, KBS <역사스페셜>이 아주 흥미로운 소재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제3의 세력, 내시'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내시'들의 삶과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였습니다.

'내시'라면 왕의 옆에서 허리를 굽신거리며 잔심부름을 하거나, 시중을 드는 존재들로 알려져 있죠. 특히나 '왕의 여자'들이 많은 궁궐의 특성상, 그네들은 거세를 해야 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큰 상징으로 자리잡아왔습니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존재, 그런 이유에서인지 사극에서 다뤄지는 '내시'는 간사하거나 음험한 존재 정도로 등장합니다.

여러분들이 특히 많이 보신 <삼국지연의>에서도 그랬습니다. 후한 말 혼란의 시작은, 일명 '십상시'를 중심으로 한 환관들의 전횡이었고, 이인화의 소설 <영원한 제국>에서는 측근 내시가 정조를 암살하려다 실패하는 장면까지 나옵니다.

하지만, 저 '제3의 세력, 내시'라는 제목의 <역사스페셜>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전형성과는 다른 내용을 다루었고, 그 '내시'들이 왕정에 끼친 미지의 영향력까지 다루었던 좋은 프로그램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난 27일부터 방영된 SBS 사극 <왕과 나>는 그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은 듯, '내시'를 전면에 부각시키면서, 조선왕조 500년에 걸쳐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내시, 연산군에게 폭정을 고치라고 간언(諫言)하다 살해된 '김처선'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실록에는 그가 세종 대부터 7명의 임금을 섬긴 원로 내시라고 기록돼 있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성종과 한 날 한 시에 태어나, 충성을 바친 내시로 등장합니다.

살해될 당시에는 대단히 고령이었다는 김처선의 추정 연령으로 따진다면, '성종과 한 날 한 시에 태어났다'는 가상의 설정이 좀 어색하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사극은 '픽션'이 허락될 수도 있다는 것. 기억합시다. 중요한건, 얼마나 재미있고 설득력 있게 그릴 수 있느냐는 겁니다.

'내시'들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내시의 가정

<왕과 나>를 보면서 여러분들이 가장 놀랐던 장면은, 내시가 처를 거느리고 양자를 들일 수 있다는 이야기였을 겁니다. 하지만 국립중앙도서관에 가면, 고려 말 조선 초기의 내시였다는 윤득부를 시조로 하는 족보가 있죠. 바로, 내시 집안의 가계도입니다.

이 가계도는 생식력이 제거된 내시의 특성상, 내시들이 누구를 양자(내시의 특성상 생식력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과, 내시가 누릴 수 있는 부와 권력을 동경하며 스스로 거세한 사람들을 중심으로)로 들였는지 대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분명히 부자지간인데도 성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권력에 따라서는 심지어 5명까지 양자를 들인 내시도 있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고환을 제거하는 궁형이라는 형벌이 있었기 때문에, 그 형벌을 당한 사람도 환관이 되거나, 환관의 양자가 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나 이 족보에는 내시들의 부인의 이름도 게재돼 있습니다. 그네들도 똑같이 가정을 꾸렸다는 이야기입니다. 내시들은 궁궐 밖, 그리고 내시부가 존재했다는 경복궁 바로 옆 효자동에 집단으로 거주했다고 합니다. 와룡동 종로3가에서 동궐 방향까지는 아예 내시들의 집단 거주촌이 형성됐고요.

내시들은 일제강점이 시작돼 대한제국의 내시부가 폐지되면서, 사실상 궁궐에서 축출됐다고 합니다. 당시 KBS <역사스페셜> 취재팀이 만났던 내시 후손들의 말에 따르면 어쨌든 이때 그네들의 생활 터전이었던 궁궐 바깥으로 나가 뿔뿔이 흩어져 살았던 것입니다.

현재, 서울 외곽 월계동 공원이나 경기도 고양의 어느 야산에 형성돼 있는 다소 을씨년스러운 무덤터는 바로 내시들의 공동묘지입니다. 비석이며 뭐며 다 뿌리뽑혀져 나가 '을씨년스러운' 이유는, 조상이 '내시'였음을 밝히기 싫어하는 후손들의 처분 때문이라는 추측도 있습니다.

<왕과 나>에서 그려지는 '내자원(내시 양성소)'

'내자원'은 사설 양성소로 나옵니다. 내시가 되는 과정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거의 없어, 내시 후손들의 증언으로 알려진 것입니다.

<왕과 나>에서는 '소귀노파(여운계)'가 운영하는 내자원이 부각됐는데, 이 역시 KBS <역사스페셜>에서 방영된 내시 후손들의 증언으로 알려진 것입니다.

'소귀노파'는 아마, '내시 양성소 주인' 그 자체에 대한 통칭이라기보다, 후손들이 증언한 대한제국 말기의 '내시 양성소 주인'의 특별한 별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귀가 커서 쇠귀라고 했는지 확실치 않다"라는 증언이 있었거든요.

드라마에서는 '소귀노파'가 사실상 '내시의 어머니' 대접을 받으며 막후의 권력을 누릴 존재로 그려질 것 같은데, 증언자들에 따르면 이 '소귀노파'는 그야말로 엄격한 교육을 시켰고, 자기가 키운 내시를 책임지고 여러 경로를 활용해 내시부에 진입시켰다고 합니다.

그러니, 내시들로서는 '소귀노파'를 추앙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며, '소귀노파'가 사망한 이후에는 깍듯히 제사까지 모셨다고 합니다.

KBS <역사스페셜>이 <경국대전>에서 발굴한 기록대로라면, 내시들은 '1년에 4번 성적을 평가해 고과에 반영하는 관행'이 있었다는 것으로 봐서, '소귀노파'의 교육은 철저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교육했는지에 대해서는 역사적 기록이 없기 때문에, 아마 <왕과 나>의 유동윤 작가가 상상으로 꾸며낼 것으로 보입니다.

역사적으로 알려진 '내시'

왕으로서는 '내시'처럼 활용하기 좋은 존재들이 없었습니다. 특히나 선비들이 생각했던 조선의 정치근간은 "왕과 사대부가 함께 하는 정치"였기 때문입니다.

100년 가까운 세월을 여당으로 군림하며 위협적인 정치세력으로 성장한 노론 벽파와 대립했던 정조는 그 당시에 '홍재유신'이라는 특별한 선언까지 했다고 합니다.

왕마저도 위협하는 사대부 측의 정권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 왕으로서는 가깝고도 눈치빠른 수족들인 내시들이 유용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왕의 밀명, 왕이 하달한 특수한 임무를 비밀리에 실행했던 내시들의 기록이 실록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왕의 비서실' 승정원의 공문 결제가 너무 많아 귀찮을 경우에는 내시들에게 일임한 왕까지 있었다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내시들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왕명을 변조하거나, 공문을 위조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왕조체제에서의 권력이란, '왕'과 얼마나 가까운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배분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시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막후의 정치적 조종 임무까지 행사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게다가 '내시'들로서는 어쨌든 조선의 신분제도대로라면 '천한 신분'이었기 때문에, 신분 앞세워 거들먹거리길 좋아하는 사대부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왕으로서는 이용가치가 아주 높은 존재들이었던 겁니다.

우리가 '내시' 하면 떠올리는 '간사함'과 '부패함'의 이미지는 아마도 역사를 서술하는 이들이 '사대부'들이었기에 굳혀진 듯합니다.

그러다 보니, 내시들의 악행이 과장돼 기록됐을 가능성도 있어보이는데, '부패'와 '간사함'은 '내시'들만의 문제라기보다 인간 본연의 문제라고 보는 게 더 일리있을 듯합니다.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이고,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유혹이라는 거죠. KBS <역사스페셜>은 그런 의미에서, 조선 출신으로서 명나라 환관이 돼 높은 직위에 올라 조선의 어려움을 해결한 바 있다는 '정동'이라는 내관을 소개해, 내관들의 스펙트럼이 다양했음을 이야기합니다.

연산군 당대에는 2명의 판이한 내관이 존재하는데, 그 이야기를 바로 <왕과 나>가 그릴 것으로 보입니다.

충직한 내시 '김처선'과 왕의 옆에서 악랄한 행동을 선도한 '김자원'이 그렇지요. '김자원'이 행차하는 곳에는 제아무리 양반이라도 고개숙여 인사를 해야 했고, 그가 '비서실' 승정원에 나타나면 모든 승지들이 고개를 숙여야 했다고 합니다.

<왕과 나>, '팩션'의 진수를 보여주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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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나>의 한 장면 ⓒ SBS

'팩션'의 목적이란, 역사적 사실에 상상을 가미해 재미와 함께, 좀 더 확고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일 듯합니다. 주인공 '김처선'에 대해서는 '상상'과 '가상'이 가미됐지만, 내시의 이면을 파헤치겠다는 기획의도를 표현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사극'을 보면서 지나치게 '역사적 사실' 운운하는 것은, 지나치게 완고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사극'이 실록재현극이 아닌 이상, 상상이 가미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제가 앞서 언급한 '내시'에 관한 역사적 사실과 증언은 드라마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것이지, 사실을 강요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두시길 바랍니다.

드라마가 내시를 어떻게 표현할지, 우리가 몰랐던 '내시'들의 삶이 어떤 것이었는지 잘 그려내는 것이 오히려 그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막 시작한 드라마, 좀 더 지켜보도록 합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내시 #김처선 #연산군 #역사스페셜 #왕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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