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야! 산길 백리? 인적 없는 수덕사라고?"

[두 바퀴에 싣고 온 이야기보따리 16] 충남 서산으로 다녀온 여름휴가③

등록 2007.08.29 16:12수정 2008.04.09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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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와 이웃하며 지내는 천막사 사장님 부부랑 함께 대천에서 회도 먹고, 각설이 공연도 보고... ⓒ 손현희

여름휴가 둘째 날(7월28일), 지난밤 서산 언니 덕분에 대천까지 나가서 밤바다도 보고 싱싱한 회도 실컷 먹었어요. 바다를 끼고 있는 곳이라 해물이 무척 싱싱하고 맛있더군요. 더구나 언니와 아주 가깝게 지내던 이웃 아저씨 덕분에 더욱 고마웠지요. 해미면에서 천막사를 꾸리는 사장님 부부였는데, 며칠 동안 이분들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처음 내려올 때, 새벽 12시가 다 되었는데도 자기 차를 가지고 우리를 마중 나왔던 청년도 바로 이 천막사 사장님 아들이었어요."멀리 구미에서 예까지 오신 손님인데 대접을 잘 해드려야 한다"면서 하나하나 챙겨주시는 게 퍽 고마웠답니다.

 

더구나 언니한테 우리 부부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고 하면서, "참 재미나게 사는 분들이셔유~, 두 분 사는 모습이 참 부러웠시유"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살갑게 맞아주고 챙겨주신 이분들 덕분에 마치 고향에 온 듯 아주 편안하게 놀다가 왔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인사를 합니다.

 

응? 수덕사가 여기에 있다고?

 

이날 술자리에서 예산 '수덕사'가 서산 해미면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걸 알았어요. 해미에서 고개 하나만 넘으면 된다고 하더군요.

 

"응? 수덕사가 여기에 있다고?"

 

구미에서 내려올 때 서산만 둘러볼 생각이었는데, 가까이에 있다는 얘기에 귀가 번쩍 뜨여서 계획에 없던 '수덕사'에 가게 되었어요. 이 수덕사는 우리한테 아니, 남편한테 아주 남다른 추억이 있는 곳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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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웅전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고 합니다. 수덕사 대웅전(국보 49호), 나이가 자그마치 700살이나 되었어요. ⓒ 손현희

여러분은 '수덕사'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워낙 많이 알려진 곳이라 이 절을 아는 사람이 많을 듯해요. 그런데 우리한테는(남편 덕분에 이젠 나한테도) 재미난 얘깃거리가 있는 곳이에요. 구미에서 서산으로 올 때도 버스 창밖으로 '아산·당진·예산' 팻말을 보면서 이 수덕사 얘기를 했거든요.

 

"아! 수덕사가 이쪽에 있었구나!""수덕사? …. 아! 그 수덕사의 여승!""난 아주 옛날부터 수덕사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었거든.""알만해. 하하하!"

 

그래요. 맞아요. 우리 부부한테는 '수덕사'하면 떠오르는 게 바로 송춘희씨가 노래한 '수덕사의 여승'이에요. 이 이야기 때문에 계획에도 없던 예산 수덕사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남자들은 '군대 이야기'를 참 많이 하지요? 그것도 아주 자랑스럽게…. 제 남편도 다를 게 없었어요. 보통 '군대 이야기'하면 모질게 훈련 받던 이야기, 매우 멋지게 공을 세운 이야기…. 이런 것들이죠.

 

하지만, 남편은 이런 이야기와는 너무나 달랐어요. 군대시절 3년 내내 '수덕사의 여승'을 불렀다고 합니다. 하하하!남편은 노래를 꽤 잘 부른답니다. 그것도 옛 노래와 트로트를 참 잘 불러요. 목소리가 구성진데다가 애절하고 구슬픈 가락을 여자보다도 더 멋들어지게 부르지요. 하기야 나도 그 노래 솜씨에 홀딱 반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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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만든 대웅전 벽에서 예쁜 나비 한 마리가 가느다란 빨대(?)를 꽂고 부지런히 무언가를 빨아들이고 있어요. ⓒ 손현희

'수덕사의 여승'에 얽힌 남편 군대시절 이야기

 

내무반에서 '첫 신고식'을 할 때였대요. 갓 들어온 모든 신병이 그렇듯 남편도 바짝 군기가 들어 고참들이 모두 하늘같고 저승사자 같았겠지요.

 

"노래 일발 장전!"

'노래? 노래라면 문제없지.'

 

하긴 중학교 때부터 조용필이니, 이용이니 하는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마다하고 트로트만 고집하며 불렀던 사람이니, 더구나 군에 오기에 앞서 맘에 맞는 동무들과 그룹사운드까지 했던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러니 노래를 부르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벌떡 일어나서 할 사람이었어요. 바로 이때, '노래 일발 장전'하여 불렀던 노래가 '수덕사의 여승'이었대요. 노래를 듣던 내무반 식구들이 처음엔 여느 신병과 마찬가지로 그저 즐거운 놀이거리로 여기다가 구성지게 부르는 남편 노랫소리에 차츰 귀를 기울여 듣는다는 걸 알았대요.

 

더구나 '속세에 두고 온 님 잊을 길 없~어'하고 꺾어지는 부분에선 모두 숨을 죽이고 들었다고 해요. 노래가 끝나고 손뼉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 건 말할 것도 없고요.이렇게 첫 신고식을 마친 뒤로는 틈만 나면 불려 다녔다고 해요. 쉬는 시간이나 따로 마련한 여흥 시간에는 으레 '수덕사의 여승! 일발 장전!'을 외쳤고, 하다못해 부대에 지휘관이 바뀔 때에도 연병장 앞에 나가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또 노래 한 곡 덕분에 나중에는 '수덕사의 여승'이 남편 별명이 되기도 했고, 군대생활 3년을 편하게 보낼 수 있었다고 하더라고요.속세를 떠나 머리 깎고 비구니가 되었으나, 두고 온 임을 잊지 못하는 여인, 부처님 품안과 속세의 인연 사이에서 마음 아파하는 여승의 애타고 안타까운 마음이 잘 드러나는 노랫말과 애절하고 구슬픈 가락은 누가 들어도 가슴 먹먹해질 듯해요.

 

남편 군대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나 또한 팬이 되었지요. 남편 노래 솜씨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노래만큼은 몇 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아요. 나도 틈만 나면 이 노래를 불러달라고 한답니다. 남편은 이 노래 한 곡 때문에 많은 얘깃거리를 몰고 다녔고, 자기도 알게 모르게 '수덕사'를 그리워했다고 할까? 이런 까닭으로 다른 계획을 다음 휴가 때로 미루고 '수덕사'를 찾아가게 된 거랍니다.

 

뭐! 산길 백리, 인적 없는 수덕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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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을 등지고 산 아래를 내려다보는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또 그 옛날 수덕사의 여승은 여기에 서서 무얼 생각했을까? ⓒ 손현희

아침부터 푹푹 찌는 더위와 씨름하며 끈끈한 오르막길을 따라 고개를 넘어 드디어 닿았을 때…. '아! 여기구나!' 하고 기뻐한 것도 잠깐. 수덕사 들머리부터 넘쳐나는 자동차와 잇따라 있는 상점과 밥집들이 우리 부푼 꿈을 와르르 무너뜨렸어요. '인적 없는 수덕사'는 온데간데없고, 사람들로 넘쳐나서 복잡하기만 한, 노랫말과는 아주 다른 풍경이었어요.길은 산속 절집 안까지 곧게 잘 깔려있고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지... 게다가 절집 전각도 구석구석 한눈에 셀 수도 없을 만큼 여러 채가 있고 그 크기보고 있자니, 그만 입이 딱 벌어졌어요.

 

"이게 뭐야! 뭐, 산길 백리? 인적 없는 수덕사라고?""하하하! 왜? 실망했어?"

 

우리는 크고 화려한 절집이나 교회 건물을 좋아하지 않아요. 산속 깊이 있는 작은 암자나, 마을 한 구석에 낮은 지붕을 얹은 소박한 교회를 좋아하지요. 남편이 실망한 것도 그런 까닭이었을 거예요.

 

"스무 해가 넘도록 '수덕사의 여승'을 몇 백번은 불렀는데…."

 

노랫말 속에 나오는 수덕사 모습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어요. 그러나 그걸 누가 탓할 수 있겠어요. 그만큼 오랫동안 흘러온 세월 탓을 해야겠지요. 아무튼 우리가 수덕사에 와서 본 첫 느낌은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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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대웅전을 등뒤로 하고 내려다 본 절안 풍경이에요. 수덕사 삼층석탑(충남유형문화재 제103호)과 수덕사금강보탑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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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해마다 버선꽃이 핀다는 '관음바위'에 동전을 붙이는 사람들, 아래-'관세음보살입상'뒤로 커다란 바위가 바로 '관음바위'에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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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원통보전 ⓒ 손현희

그래도 예까지 왔는데 즐기고 가자! 생각하여 구석구석 둘러보니 뜻밖에 볼거리도 많고 놀라운 게 퍽 많았어요.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수덕사 대웅전'이었어요. 국보 49호라고 하던데 우리나라 절에 있는 대웅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래요. 고려 충렬왕 34(1308)년에 세웠다고 하니 대웅전 나이가 자그마치 700살이나 되었어요. 수덕사는 백제 때에 지었다는 말도 있는데 정확한 기록은 없고 다만, 수덕사 옛 절터에서 찾아낸 기왓장(백제와당)으로 짐작만 할 뿐이라고 하네요.

 

그러나 이 대웅전을 세운 때는 올바르게 기록으로 남아있다고 합니다.칠백 해 앞서 나무로 지은 대웅전은 크기도 크면서 꽤 멋스럽게 잘 지켜져 있어요. 가장 마지막으로 단청 칠을 한 때가 1937년이라고 하는데, 오랜 세월을 견디느라고 빛깔이 많이 바래기는 했지만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도 무척 놀라워요. 생각한 대로 우리나라 국보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근차근 절 안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는데, 대웅전 곁에 있는 '관세음보살입상' 뒤로 커다란 바위에 동전을 붙이는 사람이 여럿 있었어요. 애써 동전을 붙여놓고 두 손 모으고 고개 숙여 절하는 모습도 사뭇 진지하게 보입니다. 이 바위를 '관음바위'라고 하는데, 해마다 버선꽃이 피는 아주 남다른 전설이 깃든 바위라고 해요.

 

백제부터 조선말기까지의 역사와 문화를 두루 보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수덕사의 여승' 노래에 얽힌 추억을 따라 갔던 수덕사에서 노랫말과는 달리, 잘 닦인 길과 크고 화려하게 지은 전각들, 또 사람 발길이 끊이지 않는 복잡함 때문에 크게(?) 실망했지만, 나름대로 꽤 멋진 구경을 했어요. 돌아오는 길에는 아주 맛난 '산채정식'을 먹기도 했지요.

 

또 수덕사에서 아주 가까이에 있는 '한국 고건축박물관'도 둘러보고 왔어요. 이곳은 '거암 전흥수' 선생이 자기 돈을 들여 손수 지었다는 곳인데, 우리나라 고궁이나 절에 있는 옛집, 전각들을 옛 선조들이 집지을 때 모양 그대로, 전통공법 그대로 작게 줄여서 만들어 놓고 전시를 하고 있었어요. 우리 옛 조상들의 슬기가 잘 드러나는 멋진 솜씨와 놀라운 문화를 느끼기엔 너끈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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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로 쭉 늘어선 절집이 안개싸인 도비산 풍경과 잘 어우러진 부석사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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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전흥수 선생이 자기 돈을 들여 만들었다는 '한국 고건축박물관'에서 슬기롭고 빛나는 조상들의 솜씨를 느껴봅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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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에서 쪽지에 곱게 소원을 쓰고, 예쁘게 접어서 걸고는 두손 모아 기도하던 여학생 모습이 참 예뻤어요. ⓒ 손현희

이번에 서산에서 보낸 여름휴가는 아주 짧았지만 매우 알차게 보냈어요. 백제, 고려, 통일신라에 이르기까지 시대에 따라 여러 가지 불교문화를 잘 알 수 있었지요. 또 이런 것에 깃들어 있는 옛 얘기를 들으면서, 오늘날 우리 남은 자손들이 지키고 가꾸어야 할 문화를 손수 되짚어 보기도 하고 마음속에 깊이 새기기도 했답니다.

 

기사에 소개한 곳 말고도 가로로 길게 늘어선 절집이 안개 자욱한 도비산 풍경과 어우러져 아주 멋스러웠던 '부석사', 정겨운 누렁이 소떼들이 푸른 풀밭을 자유롭게 다니면서 풀을 뜯고 있던 삼화목장도 참 놀라운 곳이었어요. 우리가 사흘 내내 머물었던 해미읍성 둘레는 밤에 보면 더욱 멋진 곳이지요. 긴 성을 따라 여러 가지 빛깔로 등을 켜놓아 매우 아름다웠답니다.

 

조선 말기 대원군 시절부터 100년간 계속된 천주교 박해 때문에 순교 당했던, 1000명이나 되는 사람들 넋을 기리고 있는 '여숫골 해미천주교성지'까지 두루 돌아봤어요. 백제부터 조선 말기까지 여러 시대를 아우르면서 남다른 문화와 역사가 깃든 충남 서산에서 보낸 며칠은 참으로 즐거웠답니다. 이 모든 것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바로 이 지역 사람들의 살갑고 따뜻한 마음씨와 정겨운 말씨였답니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람과는 달리, 가는 곳마다 늘 웃는 낯으로 인사하며 정겹게 얘기하던 말씨 때문에 매우 즐거웠거든요. 어느 가게에 들렀을 때 들은 얘기로 이 글을 마무리 합니다.

 

"이거 깡통커피는 두 개 해서 1200원이구유, 또 이 음료수는 2000원이에유, 이건 1300원이구유, 다해서 4500원만 주시면 되겠네유.""네. 여기 있습니다.""예. 고마버유, 재미나게 놀다 가세유."

덧붙이는 글 | 한빛이 꾸리는'우리 말' 살려쓰는 이야기가 담긴 하늘 그리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2007.08.29 16:12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한빛이 꾸리는'우리 말' 살려쓰는 이야기가 담긴 하늘 그리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수덕사 #수덕사대웅전 #수덕사의 여승 #서산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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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이 기사는 연재 두 바퀴에 싣고 온 이야기보따리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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