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란 이름으로 버틴 '오토바이 방랑화가'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터줏대감 거리화가 '박대규씨'

등록 2007.08.29 15:36수정 2007.08.29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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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평화, 반핵'이라는 단어들이 입에서 너무 자연스럽게 나오는 '오토바이 방랑화가' 박대규씨. '히피문화'에 빠져 자유를 누리며 '혼다 쉐도우 1100'이라는 전차 같은 오토바이 한 대와 평생을 함께 살아 왔다는 그를 만난 건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한 쪽, 가로등에 기대어 걸쳐진 작은 천막 속에서다.


a 거리화가 박대규씨

거리화가 박대규씨 ⓒ 김상헌

몇 장의 연필초상화들이 전기줄에 걸린 연처럼, 문패처럼 걸려 있어 천막 밖에 나와 있는 때 절은 붉은색의 간이의자를 굳이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이 천막이 무슨 곳인지는 쉽게 알 수 있다. 낡은 이젤 위에 얹은 종이 위에 열심히 누군가의 얼굴을 그린다. 아니 그의 말을 빌리면 "만들어 낸다."

이제는 화가가 손님을 기다린다. "요즘 그림 그리려는 손님이 많습니까"라고 묻자 "요즘은 초상화 그리는 사람들이 흔치 않습니다. 경기가 어렵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합니다"라며 "한때는 손님들이 그림을 그리려고 밖에서 줄서서 기다렸는데, 이제는 화가가 손님을 기다립니다"라고 현재 거리화가로서의 어려움을 단박에 설명한다.

요즘은 '자신의 얼굴과 닮지 않아도 좋으니 예쁘게 그려달라는 손님'과 '자신의 얼굴보다 젊게 그려달라'는 주문이 많다며 쓴 웃음을 짓기도 한다.

a 박대규씨의 문패인 초상화들

박대규씨의 문패인 초상화들 ⓒ 김상헌

'유신시대'에 맞이한 중학생 시절, 신문에 나온 '육영수 여사'나 '박정희 대통령'의 얼굴사진을 보며 따라 그리기 시작한 것이 자신이 그림(초상화)을 시작하게 된 동기라고 말한다. 이후 미술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공대로 진학, 졸업 후 '전기기술자'로 일하며, 중동건설 붐이 일던 80년대에는 전기공으로 중동에 나가기도 했단다.

직업을 바꾼 것이 아니라 '자유' 선택


1987년 그런 평범한 일상을 버리고 지금의 '초상화 화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는 그는 직업을 바꾼 것이 아니라 '자유'를 선택했다는 말로 자신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는 "지금의 생활이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무척 힘든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자신의 적성에 맞고 무엇보다 자유로움이 있어 이 생활을 버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왔다"라고 말한다.

현재 은행원인 딸과 함께 산다는 그는 "몽마르트 언덕에 있는 거리화가"들의 모습이 보고 싶어 90년에는 한 달간이나 스케치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 올 만큼 자신만의 자유를 즐기고 누리며 살아왔다. 인간이면 누구나 꿈꾸는 일들이 일상에서의 탈출이나 생활이라는 억압을 벗어 버리는 것일 거다.


a 대학로 천막작업실

대학로 천막작업실 ⓒ 김상헌

현재 40여명의 오토바이 동호회 회원들과 주말이면 '정기투어'를 다닌다는 그는 자신의 오토바이를 자신의 분신이라며 자랑한다. '혼다 쉐도우 1100'이 공식 모델명이지만 이미 이것저것 자신의 취향대로 장식이 되어 있어 내 눈에는 '2차 세계대전' 독일군병들이 몰던 전차처럼 보인다.

'오토바이 가격이 얼마나 되냐'는 질문에 즉답을 피했지만 대략 '1300만원' 정도라고 귀띔해 준다. 하지만 배보다 배꼽이라고 장식비로 '1000만원' 정도는 더 들었다고 말한다.

a 오토바이를 탄 화가

오토바이를 탄 화가 ⓒ 김상헌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전국을 떠돌며 거리화가로

"87년 처음 그림을 시작할 때부터 대학로 지금 이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는 그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마음이 내키면 언제든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전국을 떠돌며 거리화가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지금은 전국 어디를 가나 그 지역의 거리화가들이 자리잡고 있어 그것도 이제 여의치 않다고 한다.

자유와 평화를 말하는 그에게 '어떻게 하면 그런 세상이 될 것 같나'라고 물어보았다. 그는 "세상은 자기 스스로가 노력해야 한다"며 "자신이 선한 마음으로 이웃을 배려하고 생활하면 사회는 자연히 평화로워질 것"이라고 나름의 진단을 내리기도 한다.

이어 그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이 있느냐'는 질문에 "70살 80살이 되더라도 지금처럼 오토바이를 탈 것이며 그것을 누리겠다"고 말했다. 덧붙여 "이제 나이가 50대 중반을 넘겼으니 앞으로는 거리화가가 아니라 작은 작업실에서 자신의 작품을 그리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말로 미래의 바람들을 솔직히 고백한 그야말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방랑시인 김삿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a 오토바이를 탄 화가

오토바이를 탄 화가 ⓒ 김상헌

'진정한 자유' 그리고 '실천되는 평화'

'자유'를 누리되 육체만의 자유가 아닌 영혼조차 자유로운 '진정한 자유', '평화'를 외치되 그 외침이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오지 않고 세상 속에 자리 잡아 '실천되는 평화'를 꿈꾸는 자들이 이 각박하고 화려한 세상을 '선한 마을'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오토바이 방랑화가' 박대규씨. 지금까지 그의 인생이 '오직 자유를 누리며 살아온 발자국'이었다면 이제 그에게 남은 삶은 가족과 이웃과 그 자유를 함께 나눔으로 더 풍성한 자유를 누리며 '따뜻한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는 '하늘의 소망'을 가지시길. 그리고 그 기쁨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화가가 되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거리화가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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