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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듯 8월의 끄트머리인 말일이 다가 오고 있었다. 다른 집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 집은 말일이 가까우면 통장 정리를 해 주어야 한다. 자동이체로 빠져 나가야 할 돈이 얼마이고 잔고는 얼마가 있는지.
우리가 주로 쓰고 있는 두 개의 통장은 모두 마이너스 통장이다. 하나는 늘 한도가 차서 다달이 확인을 해서 돈을 넣지 않으면 연체가 되기 십상이라 정리가 필요한 것이었다.
며칠 전 그 정리를 하기 위해 통장이 든 가방을 꺼내놓고 전화기 앞에 앉았다. 가방을 뒤적거리며 정리할 통장을 찾는데 하나의 통장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 넣어 두었지?' 거실, 안방, 내가 일을 하고 있는 베란다에 놓여진 서랍까지 모두 찾았지만 통장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한 번 더 살펴보기 위해 서랍들을 다시 샅샅이 뒤지고 있는데 안방 서랍 문틈에 낮선
초록 봉투 하나가 끼여 있었다.
'이게 무슨 봉투야?' 하고 꺼내 보았더니 겉봉에 '유용하게 쓰세요'라는 글씨가 크게 쓰여 있었다. 필체를 보니 작은 딸 다영이의 글씨였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열어보니 돈 만원이 들어있었다. 지난여름 내내 일감이 없어 놀았던 엄마의 어려운 모습을 보고 제 용돈에서 만원을 꺼내어 엄마 쓰라고 넣어 두었나보았다.
중학교 3학년짜리에게 주는 한 달 용돈이 겨우 2만원이라 제 쓰기에도 부족한 돈이다. 그런데 외할머니 생신을 맞은 지난여름 서산에 갔다가 외할머니와 이모 외삼촌들로부터 제법 많은 용돈을 받았었다. 오는 차표를 끊으려는데 얼른 돈 만원을 꺼내주며 용돈을 많이 받았으니 제 차비는 스스로 내겠다고 했다. 옆에 있는 언니까지 옆구리를 쿡쿡 찔러 엄마의 돈을 아껴주었던 아이인데 거기에서 또 만원을 꺼내 엄마를 준 것 같았다.
이렇듯 아이의 속 깊은 마음은 때때로 작은 감동을 안겨주는데 아이가 네 살 때 지하 방에서 이곳 아파트로 이사 왔다. 숫자를 익히고 엘리베이터를 탈 줄 알게 되면서부터 아이는 절대로 제 먼저 타고 내리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버튼을 누르고 서서 다리 아픈 엄마가 먼저 타고 내리게 한 후에야 뒤를 따르고, 횡단보도를 건너 갈 때도 오른 손을 높이 들고 엄마걸음 한 번 쳐다보고 차 한 번 쳐다보며 행여 엄마가 다 건너기전에 차가 출발할까 걱정 어린 눈길을 보내는 아이가 참으로 신기하기만 했다. 어릴 때부터 심부름도 잘 하여 상인들에게 늘 칭찬을 받으며 덤을 얻어와 신발도 제대로 못 벗은 채 자랑을 하곤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언니랑 함께 공부를 하던 아이가 갑자기 "나는 대학교에 가면 꼭 장학금을 탈거야"라며 결연한 의지로 말했다. 그 소리를 들은 제 언니가 "야! 네가 무슨 장학금이야? 네가 장학금타면 세상에 장학금 못 탈 사람 하나도 없겠다" 며 비아냥 거렸지만 아이는 꼭 그럴 이유가 있다며 입술을 앙다물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한 참을 망설이다가 엄마에게 전동휠체어를 사주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자기가 대학생이 될 때쯤이면 엄마의 나이가 많아져 어쩌면 다리에 힘이 없어 못 걸을 지도 모르니 전동휠체어가 필요할 것이란다. 고작 10살짜리 아이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놀라웠고 이런 딸을 둔 내 가슴은 한없이 뿌듯했다.
그 밖에도 자기의 생일날에는 낳아주신 엄마 아빠께 감사하다며 오히려 선물을 사오고, 엄마 생일날에는 또 인터넷에서 배운 미역국까지 끓여주고, 양말 바닥에 '엄마 힘내세요'라고 써 놓아서 빨래를 하다말고 배를 쥐고 웃게도 만드는 이 아이가 주는 감동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아무래도 이 아이는 엄마의 불편함을 알고 태어나 엄마의 마음을 먼저 읽고 있는 아이인 것만 같다.
학교에서 돌아 온 아이에게 "이거 네가 넣어 둔 거지?" 하며 초록 봉투를 내밀었더니 피식 웃는다. 아이의 그 웃음따라 내 가슴엔 어느 듯 초록물고기 한 마리 유유히 헤엄치며 노닐고 있다. 아주 평화롭게. 또 아주 행복하게.
덧붙이는 글 | mbc라디오 여성시대에도 올리겠습니다.
2007.09.02 12:12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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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용돈 2만원에서 만원을 엄마 주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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