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감수성 높인 도시 발전 필수적"

캐롤린 하난 유엔 여성지위향상국장

등록 2007.09.03 19:12수정 2007.09.03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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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린 하난 유엔 여성지위향상국장 ⓒ 여성신문

[홍지영 기자] 여성정책 국제회의 전날인 28일 대방동 서울여성가족재단에서 하난 국장을 만났다. 지난 2003년과 2005년에 이어 세번째 한국을 방문한 하난 국장은 "한국에 올 때마다 한국 여성들의 역동성에 반한다"는 말로 인사말을 건넸다.

하난 국장의 이번 방문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서울시가 야심차게 내놓은 '여행(여성이 행복한 도시) 프로젝트'를 전세계 전문가들에게 선보이고, 다각도로 검증을 받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유엔 가입국에 성주류화와 관련한 각종 자문과 지원을 제공한 이력으로 볼 때 하난 국장만큼 적격인 인물도 없다. 하난 국장은 "정책대상자로서의 여성을 능동적 변화주체로 인정할 때 비로소 도시 전체가 행복해질 수 있다"며 서울시의 여행프로젝트에 대해 상당한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다음은 하난 국장과의 일문일답.

- 이번 국제회의에서 '도시 여성의 성평등 향상과 여성 세력화'를 주제로 강연한다고 들었다. 강연 내용을 소개해달라.
"빈곤, 폭력, 청결, 안전 등 도시 여성을 둘러싼 문제는 다양하다. 농어촌에 사는 여성에 비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환경을 갖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지지기반이 약한 게 문제다. 때문에 여성들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정책입안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아직도 여성에 대한 편견이 사회 곳곳에 내재돼 있다.

일례로 과거에 비해 여성고용이 뚜렷하게 늘어났지만, 비정규직에 몰려있거나 임금수준도 남성의 60%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또 도시의 밤은 여성의 안전에 위협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직장생활을 하거나 여가활동을 하는 데 있어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자유를 제한받기도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성희롱, 학대, 폭력에 노출되기도 한다. 이런 공포와 불안이야말로 여성 세력화의 장애물이다. 따라서 이번 회의에서는 시가 정책을 세우고 시행할 때 반드시 성 인지적 관점을 도입할 것을 강조할 계획이다. 도시는 한쪽 성(性)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 지금까지는 여성들의 개입 없이 정책들이 진행됐고, 여성들은 '완전한 시민권'을 얻지 못했다. 여성의 기여도를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 '여성 세력화'를 위해 더 많은 여성들이 정책입안 결정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떻게 참여하는 게 효과적인가?
"여성은 가족, 지역사회, 국가가 지닌 자원과 잠재력의 절반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표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대표성을 갖는 여성의 숫자를 늘리는 것은 중요하다. 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사회적 분위기나 의식이 안바뀌면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정부로 진출하는 것도 중요하다. 흔히 지방정부가 여성들에게 덜 차별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실질적으로는 많은 경우 지연, 학연, 네트워크를 통해 일을 해결하려고 한다. 그리고 정책 수혜자도 대부분 남성이다. 더 많은 여성들이 멘토링, 네트워킹 등을 통해 차근차근 훈련을 받아 진출해야 한다."


- 도시 여성들이 겪는 문제 중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선 빈곤과 안전 문제를 지적하겠다. 빈곤은 모든 사회적 혜택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노숙자들이 늘어나는 것도 세계적인 추세다. 특히 여성의 경우 빈곤에 노출될수록 성폭력이나 인신매매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여성이 결코 단일한 집단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여성들 사이에서도 연령, 인종, 종교, 혼인 여부, 계층 등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빈곤여성처럼 취약계층에게는 더 특별한 관심을 쏟아야 한다.

다음으로 '젠더 폭력'에 대해 말하겠다. 세계 모든 도시에 살고 있는 여성과 소녀들은 거리를 혼자 걷는 게 위험하다고 느낀다. 대중교통, 학교, 병원, 직장 등지에서 여성이 일상으로 겪는 폭력은 다양하다. 폭력은 기본적으로 여성과 남성간의 차별과 불평등에 기반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시 당국은 물론 지역사회 기관, 단체와 함께 도시 변화를 위한 작업에 여성을 참여시켜야 한다. 공원, 주차장, 대학 캠퍼스 등 공공장소들을 좀더 안전하게 만들거나 주거지역에 조명을 밝히는 것도 필수다."

- 지금까지의 도시정책들이 여성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진행됐다고 지적했다. 어떻게 하면 이를 극복할 수 있나?

"시의 계획과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공무원들이 젠더 감수성을 갖지 못했을 경우 여성의 욕구나 기호가 무시되곤 한다. 이를 위해 앞서 말한 성 인지적 관점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 일례로 몇몇 국가에서 시행 중인 성 인지적 예산제도는 예산이 여성과 남성에게 어떤 상이한 영향을 미치는지 가늠하고자 하는 정책적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이밖에도 여성단체 등 여성들과의 네트위킹도 중요하다."

- 서울시가 '여성이 행복한 도시'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특히 돌봄과 일자리 창출 분야를 넘어 여성친화적 도시환경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조언을 해준다면?
"뚜렷한 목표 아래 정확하게 이행해야 하고, 더불어 수시로 평가하는 작업도 수반돼야 한다. 정책에 개입한 사람들은 여성단체 등 민간기관 모두에 개방적 태도를 가져야 한다. 여성이 행복하다는 것은 결국 도시 전체가 행복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내가 강연에서 강조할 안전문제도 반영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왜냐하면 안전은 도시의 교통, 건설, 주거 등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 한국의 여성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겉으로 보면 '수줍다'는 인상이 강한데 보면 볼수록 자신감, 명민함을 느낀다. 그러나 여성들의 능력뿐만 아니라 높은 가능성을 인정하고 함께 발전·변화하려는 남성들의 의지가 더 중요하다. 성평등 정책이 실현되기 위해 보다 많은 남성들의 참여와 활동이 이뤄졌으면 한다. 이를 위해 여성들이 적극 나서주길 바란다."

캐롤린 하난 국장은

스웨덴 출신의 캐롤린 하난은 지난 2001년 12월부터 유엔 여성지위향상국 국장을 맡고 있다. 스위스 국제개발협력국에서 성평등 관련 상임 정책자문위원을 지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의 성평등작업반 의장직을 수행했다. 최근에는 유엔의 성평등 특별자문단에서 성주류화 분과 수석자문위원을 2년 동안 맡았다.

a  지난달 29~30일 서울여성가족재단 주최로 열린 ‘여성정책 국제회의’ 모습.

지난달 29~30일 서울여성가족재단 주최로 열린 ‘여성정책 국제회의’ 모습. ⓒ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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