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새 세상을 보는 아기에게

등록 2007.09.05 18:06수정 2007.09.05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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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숙

ⓒ 이은숙

아기에게 첫 번째 새 세상은 뒤집으면서 보게 되는 세상이라고 한다.

 

늘 누워서 천장만 보다가 몸을 뒤집어 지금까지 머리맡이던 곳을 보는 것, 그것은 아이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는 것과 같다.

 

걷는 것은 두 번째 새 세상이다. 만지고 싶은 것을 향해 자신의 두 다리로 가서 만질 수 있고, 오래 보고 싶으면 앉아서 그것을 보다가 다른 것에 호기심이 생기면 다시 일어서서 가는 것.

 

생각해 보면 나도 겪었을 일이지만 전혀 기억나지 않는 그 일이 요즘 우리 아이에게 일어나고 있다.

 

요즘 우리 수아는 잘 걷는다. 이제 13개월이니 걷는 것이 당연하고 그게 성장인데 괜한 수선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아이가 자라는 모습은 모든 것이 하나의 놀라움이다.

 

서랍을 열어서 물건을 꺼내고, 일단 입으로 가져가서 자기 것이라는 표시의 방법으로 침을 발라 놓는다. 아빠한테도 바른다. 아빠는 엄마 건데. 엄마나 아빠가 그것을 가져가려고 하면 손으로 꼭 쥐고 내놓지 않으려 한다. 자기 건데 왜 가져 가냐는 듯.

 

종이는 빼앗지만 다른 것은 아이의 호기심이 충족될 때까지 만져보게 그냥 둔다. 그렇게 해서 이미 두 개의 휴대폰이 망가졌다. 그래서 아예 고장난 휴대폰과 유선 전화기를 장난감으로 줬더니 그건 또 안 가지고 논다. 고장 난 거 줘서 기분이 상했나 보다. 아니면 소리가 안 나서 재미가 없을까? 어쨌든 아이들도 고장난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자꾸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통에 입구를 가려 놨다. 누가 밖에 나가려는 움직임만 있으면 저쪽에서도 놀다가도 열심히 걸어온다. 자기만 두고 가지 말라는 듯 열심히도 온다. 그러면 한 번 안아주고 나간다. 문까지 걸어온 정성이 있지 않은가. 거의 다 왔는데 시간없다고 가버리면 헛수고를 했다는 생각에 아기가 억울할 것 같다.

 

서랍을 열어서 물건을 꺼내고 책꽂이에서 책을 꺼내놓고 그릇들을 꺼내놓고 장난감을 꺼내놓는다. 그런데 왜 꺼낸 물건을 갖고 놀지는 않는 거지? 꺼내기만 할 뿐이다. 꺼내서 확인하는 그 자체가 놀이일까?

 

혼자 말도 많이 한다. 흉내도 낼 수 없는 외계어를 나불댄다. 아마도 아기들은 우주의 어딘가에 살고 있는 생명체와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난 아기에게 진지하게 묻는다.

 

"너 외계인 맞지?"

 

이제 조금 지나면 말을 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외계인이 아니라 지구인과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직립 보행을 통해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만지고 싶은 것을 만지러 간다. 궁금한 것을 그냥 넘어가면 안 되지.

 

지금은 서랍을 열고 안의 물건들을 꺼내고 있다. 아마도 외계에 보고를 할 모양이다. 지구에는 이런이런 물건들이 있다고.

2007.09.05 18:06ⓒ 2007 OhmyNews
#아기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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