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사부님의 당부를 잊었단 말이냐?"

추리무협소설 <천지> 267회

등록 2007.09.06 08:15수정 2007.09.06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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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빤히 바라다보고 있는 사람은 뜻밖에도 십여 세가 될까 말까한 어린 동자(童子)들이었다. 알록달록한 아이들 옷을 입고 아주 맑은 눈으로 자신들을 바라보았는데 겉모습과는 달리 이상하게도 아이들 같지가 않았다.

오른쪽의 아이는 붉은 무늬가 들어간 옷을 입었고, 왼쪽의 아이는 파란색의 무늬가 들어간 옷을 입고 있었다. 분명 어린애들인데 머리칼이 검은색이 아닌 하얀 흰머리어서 도대체가 아이들인지 아닌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얼굴을 보면 어린애들이 분명했다.


'저 놈들이 우리의 뺨을 갈긴 것인가?' 

분명 이곳에 나타난 것이라곤 저 아이들 밖에 없었으니 자신들의 뺨을 호되게 때린 것은 저 아이들이 분명했다. 하지만 믿을 수 없었다. 아무리 자신들이 당황해 있었다고는 하나 어찌 저 조그만 놈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뺨을 갈길 수 있는가?

"네 녀석들은 누구냐?"

지공이 갑작스런 아이들의 출현에 대해 그 허실(虛實)을 궁리하는 사이 손번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도 아이들임을 감안해서 버럭 소리를 지르지 않고, 달래듯 물은 것은 저 아이들의 출현에 대해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손번의 말에 자신들을 빤히 바라보던 두 아이의 눈에 노기가 떠오르는 듯 보였다. 두 아이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가 다시 지공과 손번을 바라보았다. 그 중 오른쪽 아이가 큰기침을 하더니 물었다.


"어험… 너희들은 머리가 세지 않았다. 나이가 어찌 되었느냐?"

분명 목소리는 남녀를 구분하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분명한데 말투는 늙은이의 그것과 다름없었다. 더구나 갑작스럽게 묻는 질문에 지공과 손번은 도대체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들의 뇌리에 어처구니없게도 똑같이 생각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호…혹시…. 반로환동(反老還童)한 기인들……인가?'

반로환동이란 말은 들었어도 실제 그런 인물은 보지 못했다. 아니 보지 못한 게 아니라 전설상으로만 있을 것이란 말이 들릴 뿐 실제 반로환동했다는 인물은 지금까지 전무했다. 또한 실제 반로환동한 사람이라면 다시 속세로 나오는 경우가 없는 전설상의 신선(神仙)들이나 될법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공과 손번으로서는 정말 당황스런 상황이었다. 지하석로에 사람이 갑자기 나타난 것도 그렇지만 자신들의 뺨을 갈긴 장본인들이 분명 저 아이들이 틀림없는 상황에서 단지 어린애라고 치부하기엔 꺼림칙한 부분이 많았다.

당혹스런 표정으로 아이들을 주시하다가 손번이 떠듬거리며 물었다.

"내… 나이….. 이제 불혹(不惑)을 지났다…. 이 분은 나보다 서너 살 위고…."

반말도 아니고 그렇다고 존대하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말투였다. 그러자 오른쪽에 있는 아이가 왼쪽에 있는 아이에게 물었다.

"불혹이라면……?"

"어험…. 사십을 말하는 것이다… 아우야…."

"우헤헤헤……"

그러더니 갑자기 두 아이가 동시에 마구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은 배를 잡고 웃었는데 잠시 동안 그렇게 웃던 아이들이 웃음을 멈추고는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어쩐지….? 아직 머리가 세지 않았다 했지…. 네 녀석들은 덩치만 컸구나….. 하기야 사부님께서 이르시길 오십 살만 더 먹으면 나도 완전히 자랄 수 있다고 하셨으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더구나 사부라니…? 반로환동한 기인들도 사부가 있는 것일까? 또한 반로환동한 기인들은 모두 저런 말투와 모습일까? 분명 행동과 음성은 어린애들인데도 말투는 늙은이의 말투라서 점점 더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어험…. 올해 노부의 세수가 일백하고도 십삼 세니라…. 이쪽 형님은 백이십일 세이시고…. 아직 한참이나 어린 것들이 어른들을 몰라보고 반말 짓거리나 해대고 있으니…."

"허허… 아우… 참게…. 요사이 어린 것들은 버릇이 없다는 것쯤은 나이 먹은 우리가 이해해야지. 사저께서도 우리에게 이르지 아니하셨나? 세상에는 천방지축 날뛰는 아이들이 많다고…" 

"형님 말씀이 옳소. 그래서 사부님께서 우리들이 세상에 나가는 것을 말리는 것이 아니오?"

도대체 알지 못할 말들만 해대는 두 어린애들을 보고 지공과 손번은 도대체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할 지 정말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노련한 그들로서도 정말 저 아이들이 백십삼 세와 백이십일 세를 먹은 기인들인지 아니면 자신들을 놀리고 있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아무리 영악한 어린애라도 거짓말을 하고 있으면 뭔가 표정이나 말투에서 이상한 눈치를 채기 마련이다. 허나 두 어린애의 말투와 표정을 보면 거짓말하고 있거나 이상한 기미를 발견할 수 없었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닥친 지공과 손번은 졸지에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그런데 너희들은 어찌해서 이곳에 들어온 것이며 왜 이 어르신들을 부른 것이냐?"

백십삼 세(?)라고 밝힌 아이가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물었다. 정확히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질문에 손번은 지공을 쳐다보았으나 지공은 여전히 입을 다문 채 두 아이인지, 아니면 정말 반로환동한 기인들인지 모를 두 아이를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

그러다가 손번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시선을 힐끗 보고는 대답을 하라는 눈짓을 주었다.

"우리는…. 나쁜…놈들을 쫓아 이곳으로 들어오기는 했지만…… 우리가…. 너희….. 아니 어르신들을 부른….적은 …없다…요…."

손번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반말도 아니고, 그렇다고 뻔히 열 살이나 될까 말까한 아이들에게 존대말도 할 수 없어 말끝을 흐리며 말도 되지 않게 애매하게 대답했다. 정말 곤란한 모습이 역력했다.

"허어…. 너들은 삼색관(三色關)을 지나오지 않았느냐? 거기서 너희들이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이 구룡동(九龍洞)으로 들어오겠다는 것이었고, 또한 우리들을 뵙겠다고 붉은색의 돌을 밟지 않았느냐?"

"삼색관? 구룡동? 붉은 색의 돌이…."

이곳이 구룡동이라는 사실은 짐작이 갔다. 삼색관이라니…. 그렇다면 바닥과 벽에 세 가지 색깔의 돌이 있는 곳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그제야 지공은 그 삼색관에서 세 가지 색깔의 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세 가지 색깔은 그의 짐작대로 천지인 삼재를 의미했다. 그리고 아주 간단하게 그 세 가지 색깔은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을 의미했다. 자신은 검은색을 택했다. 그것은 땅에 있겠다는 선택이었다. 그래서 이 구룡동이라고 불리는 땅속의 석실로 온 것이다.

그리고 손번이 장난치듯이 밟은 붉은색의 돌은 사람을 만나겠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저들이 나타난 것이고…. 어쩌면 잘 된 일인지도 몰랐다. 이미 사라진지 삼십여 년이나 지난 구룡의 실체를 비록 부조된 모습이나마 여기에서 보게 된 것은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곳은 분명 구룡과 관계가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저 아이(?)들 역시 구룡과 관계가 있음에 틀림없었다. 점차 마음이 안정되어 가고,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지공은 정중하게 포권을 취하며 물었다.

"어르신들…. 이곳이 도대체 어디인지 가르쳐 주시겠소이까? 과거 천하를 진동시키던 구룡어르신들의 존체가 안치된 곳이라 생각되오만……"

"험…. 그래도 자네는 예의를 아는 사람이구먼…. 자네 말이 옳으이…. 이곳으로 말하면 구룡 어르신들의……"

지공이 예를 갖추며 묻자 오른쪽의 아이가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짐짓 점잔을 빼며 말을 하자 왼쪽에 있는 아이가 말을 막았다.

"아우! 너는 사부님의 당부를 잊었단 말이냐?"

그러자 오른쪽 아이가 찔끔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천지 #무협소설 #추리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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