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는 타이완을 사랑한다?

[해외리포트] 이안 감독, 2년 만에 다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등록 2007.09.10 11:43수정 2007.09.11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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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가 열린 카지노 건물에 64회 베니스영화제 플래카드가 휘날리고 있다. ⓒ 김은정

영화제가 열린 카지노 건물에 64회 베니스영화제 플래카드가 휘날리고 있다. ⓒ 김은정

제64회 베니스영화제(8.29~9.8)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올해도 어김없이 동서양의 영화들이 리도섬의 카지노를 다녀갔다. 다양한 메뉴와 풍성한 반찬은 영화인들의 구미를 더욱 돋우어 줬다. 그러나 축제가 지나간 리도섬을 바라보는 이들 중엔 '많은 것을 먹은 것 같은데 특별히 맛있게 먹은 음식이 별로 없었다'는 평을 하는 이도 있다.

 

장예모가 이끄는 심사위원단은 2년 전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대상을 수상한 타이완 감독 이안에게 다시 대상(황금사자상)의 영예를 안겨주었다. 이안 감독의 <색, 계>는 일본군에 점령된 1940년대 상하이의 중국스파이를 없애기 위해 파견된 한 여인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스릴러다.

 

작년 <블랙 달리아>로 좋은 평판을 얻지 못했던 브라이언 드 팔마는 이라크전을 배경으로 한 <리댁티드>로 감독상인 은사자상을 받았다. 수상식에서 브라이언 드 팔마는 "반전을 외치며 광장으로 모여들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밝혔다.

 

또 심사위원상은 압델라티프 케시슈의 <곡물과 노새>, 토드 헤인즈의 <난 그곳에 없다>가 동시에 수상했다. 올해 특별상은 러시아 감독인 니키타 미할로프 감독이 배심원 12명의 심리를 미세하게 묘사한 영화 <12>에 돌아갔다. 

 

또 남·여우주연상은 <제시 제임스의 암살>의 브래드 피트와 <반지의 제왕>의 요정 여왕 갈라드리엘 역으로 잘 알려진 <난 그곳에 없다>의 케이트 블란쳇에게 돌아갔다. 신인 배우상인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아니는 <곡물과 노새>의 하프샤 헤르지, 최고 촬영상인 오셀라상은 <색, 계>의 로드리고 프리에토에게 돌아갔고, <자유로운 세상>의 폴 라베티가 최고 각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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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시작을 알리는 기자회견. 다비드 크로프 비엔날레 조직위원장이 말하고 있다. ⓒ 김은정

영화제 시작을 알리는 기자회견. 다비드 크로프 비엔날레 조직위원장이 말하고 있다. ⓒ 김은정

3년 사이에 두 번이나 같은 감독에게 황금사자상을 선사한 베니스영화제를 보는 시선은 그리 따뜻하지 않다.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레 세라>는 9일자 신문에서 이번 시상식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기했다.

 

"영화제 전반에 걸쳐 평론가와 관객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압델라티프 케시슈의 <곡물과 노새>가 심사위원상에 그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폴 해기스의 <엘마의 계곡>도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수상 대열에 오르지 못한 것과 타이완 감독에게 또 다시 황금사자상을 준 것은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다."

 

"토니 길로이의 마이클 클래이튼을 연기한 조지 클루니가 제시 제임스를 연기한 브래드 피트보다 남우주연상에 적격이었다."

 

심사위원장이던 장예모는 브래드 피트가 남우주연상을 받은 데 대해 "자기 자신에게 싸움을 걸었고 제시 제임스 역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미지를 잘 소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안의 재수상에 곱지 않은 시선, 구미영화에 대한 편애 지적도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영화제 기간 중 관객의 박수를 많이 받은 영화는 일본 감독인 미크 타카시의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다. 일본 시대극과 이탈리아의 서부극 '스파게티 웨스턴'(1963~1974)을 접목한 '일본식 웨스턴'인 이 영화는 베니스영화제 75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진행된 '스파게티 웨스턴' 특별기획전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스파게티 웨스턴' 특별기획전에서는 이탈리아 웨스턴 영화의 거장 세르조 레오네의 작품을 비롯해 32편의 영화가 상영됐다.

 

심사위원 7명이 전부 감독만으로 구성되고 4년 동안 집행위원장이었던 마르코 뮬러가 마지막으로 집행위원장을 맡은 올해 영화제의 공식 경쟁부문에선 구미 영화가 강세였다. 작년에 4편에 그쳤던 구미영화들이 올해 7편으로 공식 경쟁부문의 총 22편 중 거의 3분의 1을 차지한 것에 대해 구미영화에 대한 지나친 편애라고 보는 시각도 있었다. 반면 아시아 영화는 4편으로 작년과 비슷한 선에서 초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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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를 기념하기 위해 전시된 조각품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조각품은 단테 페레티의 작품이다. ⓒ 김은정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를 기념하기 위해 전시된 조각품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조각품은 단테 페레티의 작품이다. ⓒ 김은정


공식 경쟁 부문에는 브라이언 드 팔마의 <리댁티드>, 에릭 로메르의 <별과 청도자기의 사랑>, 피터 그리너웨이의 <나이트워칭>, 켄 로치의 <자유로운 세상>, 리안의 <색, 계>, 유세프 샤힌의 <헤야 파우다> 등 거장들의 영화 및 이와 어깨를 나란히 한 젊은 감독들인 장위안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토드 헤인즈의 <난 그곳에 없다>, 미이케 다카시의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 빈센조 마라의 <절정의 시간>, 니키타 미할코프의 <12>, 웨스 앤더슨의 <더 다질링 리미티드>, 케네스 브래너의 <추적>, 이강생의 <나를 도와줘 에로스>, 폴 해기스의 <엘라의 계곡>, 토니 길로이의 <마이클 클레이튼> 등이 초청됐다. 또 베니스 영화제가 매년 선정하는 깜짝 초청작은 홍콩 액션영화의 거장 두기봉 감독의 신작<매드 디텍티브>였다.
 
또한 팀 버튼에게 평생공로상을 수여하기 위해 온 조니 뎁을 비롯해 카트린느 브레이야, 폴 버호벤, 주드 로, 조지 클루니, 기타노 다케시, 브래드 피트, 조지 클루니, 리차드 기어 등이 올해 레드 카펫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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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땅의 소녀와>의 주인공인 유연미 아역배우와 전수일 감독이 레드카펫을 밟고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 김은정

<검은 땅의 소녀와>의 주인공인 유연미 아역배우와 전수일 감독이 레드카펫을 밟고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 김은정

전수일 <검은 땅의 소녀와>, 비공식 경쟁 부문 수상

 

한국 영화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공식 경쟁 부문에는 한 편도 초청되지 않았다.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은 비경쟁 부문의 '베네치아 마에스트리' 부문에 초청됐다. 베네치아 마에스트리 부문은 마뇰 드 올리베이라, 우디 앨런, 기타노 다케시, 클로드 샤브롤 등 거장 감독들이 초청된 섹션이다. 스승격인 감독들을 초청하는 부문에 임권택 감독이 초청된 것은 영예로운 일이다.

 

당초 베니스영화제에 참가하기로 했던 <천년학>의 배우 조재현, 오정해는 불참했다. 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이로 인해 영화 상영 당일 잡혀있던 기자회견이 무산돼 안타까웠다고 전했다.

 

새로운 시도를 중시하는 오리존티 부문에 초청된 전수일 감독의 <검은 땅의 소녀와>는 공식 경쟁 부문의 상은 아니지만 비공식 경쟁 부문인 코라테랄상의 국제예술영화연맹상과 리나 만자 카프레상을 수상했다. 이 상들은 문화와 역사의 다름과 변화를 다룬 영화들에 수여되는 상이다. 2003년엔 소피아 코폴라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가 리나 카프레상을 수상했다.

 

전수일 감독은 <새가 폐곡선을 그린다>로 1999년 오리존티 부문에 초청받은 것을 비롯해 1997년 <내 안에 우는 바람>으로 칸 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고 2001년 스위스 프리부그 영화제 등 국제 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독립영화감독이다.

 

전수일 감독의 차기작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아시아 영화펀드 지원작 27편 중 한 편으로 선정됐다. 아시아 영화펀드는 올해 신설된 제작 지원 프로그램으로 장편독립영화 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한국대중에게 전수일 감독은 아직 낯선 존재일 수 있지만, 이번 부산영화제에서 <검은 땅의 소녀와>가 상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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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회 베니스영화제 기자회견장에 모인 기자들. ⓒ 김은정

제64회 베니스영화제 기자회견장에 모인 기자들. ⓒ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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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땅의 소녀와>의 전수일 감독. ⓒ 김은정

<검은 땅의 소녀와>의 전수일 감독. ⓒ 김은정

- 전편인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 촬영 당시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강원도 탄광촌을 찍으면서 진폐증이 있는 광부가 병원에 입원하기 위해 또 다른 병을 만들어야 하는 슬픈 이야기를 알게 되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들었다.
"그렇다. 이것을 소재로 삼아 영화를 한 번 만들어 볼까 해서 시작했다.

 

이 영화의 배경은 강원도 탄광촌이다. 강원도 태백이 탄광 때문에 형성된 도시이듯 1970~80년대 이 지역에는 100여개의 탄광이 있었다. 1990년대 말 거의 폐광이 됐고 지금은 서너 개가 남아있을 뿐이에요. 더 이상 겨울에 연탄을 난방연료로 쓰지 않기 때문이다.

 

탄광촌에서 일했던 광부들은 지금도 진폐증을 앓고 있다. 이 병은 서서히 나타나고 합병증이 없으면 병원에 입원하기도 힘들다. 보상받기도 힘들다."

 

- 이전 작품들에 나오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상실감을 느끼거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떠났다. 이 영화가 이전 영화들과 다른 점이 있나.
"지금까지 찍은 영화들엔 고향을 찾아가거나 과거를 회상하거나 자서전적인 성향이 많았다. 내면의 어떤 흐름 같은 것을 따라가는 것,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의문을 품고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반면 이 영화에선 처음으로 어린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점점 잃어가고 소외된 지역에서 상실되어 가는 것을 다루고자 했다."

 

- 베니스영화제의 한 평론가는 이 영화가 사실을 사실대로 잘 그렸고 구성에 억지가 없다고 평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영화에는 관찰자적인 시점에서 바라보는 장면이 많다. 이것은 조금 떨어져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다큐멘터리적인 느낌을 주려고 노력했다. 아마도 그 때문인 듯하다."

 

- 사회 문제와 그 삶에 초점을 둔 영화를 계속 만들 계획인가.
"사회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기보다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인물에 초점을 두고 있다. 나는 로드 무비가 좋다. 현실을 떠나고 싶은 인물이 어떤 장소에 가서 다른 현실을 겪으면서 또 다른 차원의 새로운 정신세계로 변화하는 삶의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영화가 로드무비라고 생각한다."

2007.09.10 11:43 ⓒ 2007 OhmyNews
#베니스영화제 #이안 #전수일 #색,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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