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풀 현상에 담긴 시대적 감수성

변화하는 인터넷 만화, 인기 요건은?

등록 2007.09.13 15:50수정 2007.09.13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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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다음에 연재한 강풀 웹툰 <그대를 사랑합니다> ⓒ 미디어다음

미디어다음에 연재한 강풀 웹툰 <그대를 사랑합니다> ⓒ 미디어다음

인터넷 인기 웹툰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연재 완료되었다. 인터넷 만화는 대개 젊은이들의 가벼운 감수성에 의존한다는 인상이 짙다. 그러나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노인들의 사랑이야기다. 영화로 제작중인 <26년>은 광주민중항쟁을 다루고 있다. 무거운 주제임에도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해 단행본으로도 출간되었다. 이 두 작품의 작가는 강풀이다.

 

새삼스럽게 지적하지 않아도 인터넷 만화의 대표적인 흥행 작가는 강풀이다. 인터넷 조회 수도 단연 앞설 뿐만 아니라 인터넷에 발표된 그의 작품은 발표되는 족족 단행본으로 묶이는가 하면 영화와 연극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왜 강풀의 만화는 이렇게 각광을 받는 것일까? 강풀 만화를 통해 디지털 시대의 세대 간을 연결하는 감수성을 짐작해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웹툰의 힘은 작가와 독자의 소통

 

예전에는 만화하면 종이에 인쇄된 만화책을 떠올렸지만, 인터넷에 연재된 만화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이것이 출판으로 이어지는 일이 많다. 인터넷 만화는 '웹툰'이라고 하는데 웹툰은 문단이나 출판계에 대한 복수 코드로 읽히기도 한다. 출판사가 외면해 인터넷으로 쫓겨 갔던 만화들이 혼자 블로그나 개인 홈피에 연재하며 고군분투하다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오프라인 출판 시장으로 금의환향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인터넷 만화는 작가와 독자가 직접 자유롭게 소통한다. 이런 가운데 작품이 완성된다. 편집자나 출판업자, 평론가들이 중간에 개입하지 않으므로 일종의 검열이 없다. 다르게 말하면 정제되거나 걸러지는 작업이 덜하다. 따라서 인터넷 만화는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소소한 이야기들이나 경험과 느낌들을 여과 없이 보여주곤 한다. 이 때문에 읽는 직접 공감과 감동이 크다. 인터넷 만화의 강점이고, 최근 인터넷 만화의 단행본 출간 붐의 배경이다.

 

그간 이렇게 기존의 출판계에 일종의 복수(?)를 한 작품들에는 어떤 게 있었던가? 대표적인 경우가 <감자도리> <순정만화> <위대한 캣츠비> <게임회사 이야기> <마린 블루스> <파페포포 메모리즈> 등이다. <파페포포 메모리즈>는 대형베스트셀러로 100만 권이상 팔렸고 관련 시리즈를 포함하면 200만권 이상이 팔렸다. 이 작품의 작가인 심승현씨는 인터넷에 자신의 작품을 몇 개 올린 뒤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정헌재의 <포엠툰>도 역시 작가가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 올렸던 글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인데, 2003년 '네티즌 선정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인터넷 만화의 원조이고 단행본으로 출간된 선구적 작품은 권윤주의 <스노우캣 다이어리>. 이 작품은 개인 홈페이지에 연재한 만화를 엮은 것이다. 최초의 달력 형식의 일기체 만화였다.

 

웹툰에 이어 책으로도 출간된 강풀 <26년> ⓒ 문학세계사

웹툰에 이어 책으로도 출간된 강풀 <26년> ⓒ 문학세계사

인터넷 연재물을 오프라인 단행본으로 가장 많이 발행한 작가는 단연 강풀이다. 그는 2003년 10월부터 인터넷 연재를 통해 폭발적인 사랑을 받아왔다. 그의 이름이 만화스럽다는 평이 많은데, 대학교 때 풀색 옷을 많이 입고 다녀서 별명이 강풀이었다고 한다.

 

그의 본명은 강도영이다. 오히려 강도영보다 강풀이 더욱 친숙하여, 그의 작품에 대해 주목하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강풀의 만화는 매번 영화화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는데 그래서인지 문화계의 블루칩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단행본으로 발행된 장편만화만도 <순정만화> <아파트> <순정만화 시즌2-바보> <타이밍> <26년> 등 모두 다섯 작품이고, 모두 영화로 만들어졌거나 만들어지고 있다. 여기에 연재가 끝나기도 전에 <그대를 사랑합니다>도 영화화가 결정되었다.

 

<26년>은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의 이해영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파트>는 영화로 개봉되었고, <순정만화>는 연극으로도 제작되어 호평을 받았다. <순정만화>는 착하고 순수한 연인들의 순정한 사랑을 그렸는데 총 조회수 6천만회, 하루 평균 조회수 2백만을 기록했고,  '강풀 신드롬'을 일으켰다. <타이밍>은 영화 <여고괴담>의 박기형 감독이 영화화하고 있고, 김종학 프로덕션이 TV 미니시리즈로 제작하고 있다.

 

인터넷 만화가 아무리 인기가 있어도 오프라인에서는 잘 팔리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그의 만화 책들은 잘 팔린다. <순정만화>가 10만부, <바보> 5만부, <아파트> <일상다반사> <타이밍>이 각각 2만부 이상 팔렸다. 강풀 만화의 출판은 국내에서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작품은 일본, 프랑스, 중국에서도 한국 책으로는 쉽지 않게 최고의 판권 계약을 맺고 출판됐거나, 출간 예정이다.

 

<아파트> <25년> 등 강풀 작품 줄줄이 영화화

 

강풀의 작품이 영화 등 다른 장르로 빈번하게 형상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점은 초기의 인터넷 만화가 가진 한계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초기 인터넷 만화는 '다이어리 툰(diary toon)'의 형식이었다. 말 그대로 하루 단위로 업데이트 되었다. 물론 '마시마로' ,'졸라맨'과 같은 플래시 툰은 인기는 있었으나 주류는 되지 못했다. 이후 <감자도리>같은 '캐릭터 툰'과 <파페포포 메모리즈> <포엠툰> 같은 '에세이 툰'으로 명확하게 구분되기 시작했다. 한동안 에세이툰이 성공하면서 많은 작품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지나치게 감상적이며 캐릭터 상품을 팔기 위해 만화를 그린다는 비판이 가해졌다. 특히 이들 작품은 아주 개인적이고 한순간의 기지를 발휘하는 순간적 즐거움만 강조했다. 너무 사적이기 때문에 폭넓게 대중적 호응을 받을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고 소수 마니아들만이 즐기는 차원에서만 머물렀다. 더구나 매우 짧은 호흡의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영화나 연극 드라마로 만들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포털'에서 스포츠신문 사이 서비스하던 <트라우마> <츄리닝>이 아무리 인기가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마치 <광수생각>을 영화화하기 힘든 것과 같았다. 그런데 2002년부터 강풀은 물론 강도하 등의 재발견이 이루어지면서 <위대한 캐츠비>가 탄생했다.

 

강풀 작품을 원작으로 지난해 개봉한 영화 <아파트> 포스터 ⓒ 아이엠픽처스

강풀 작품을 원작으로 지난해 개봉한 영화 <아파트> 포스터 ⓒ 아이엠픽처스

이들 작품은 어떤 면에서 기존의 웹툰과 어떻게 다른 것일까?

일정한 서사적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소설이나 만화를 영화화할 때 장편보다는 단편이 각색에 적합한데, 너무 짧아도 곤란하다. 이들 만화는 길이가 적당하고, 캐릭터가 선명한 게 장점이었다. 여기에 이전 만화가들처럼 서사 이야기 구조에 집착하지 않는다. 강풀만이 아니다. 탄탄한 스토리와 짜임새 있는 구조를 지닌 강도하의 <위대한 캣츠비> 또한 뮤지컬 공연이 이루어져 좋은 평가를 얻으며 무기한 공연에 들어갔으며 드라마로도 제작되고 있다.

 

주위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한국적인 일상 소재의 이야기를 기발한 상상력과 호흡으로 풀어내기 때문에 세대를 가로질러 인기를 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강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노인들의 사랑을 통해 전 세대를 아우르는 사랑이야기를 펼친다. <아파트>는 한국인 대부분의 일상적인 주거 공간 형태이자 한국인의 코드가 되어버린 아파트에 관한 여러 의미들을 공포를 통해 풀어내고 있다.

 

일상적 반영웅들이 등장한다는 지적에도 의미점이 있을 수 있다. 등장인물들은 정말 평범하다. 등장인물들은 거창한 관념이나 추상적인 철학을 나열하지만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행동한다. 그리고 작지만 소중한 꿈들을 향해 나아간다. 사람이 지닌 근원적인 감수성에 충실하다. 삶의 꿈에 대한 자기 확신으로 세상을 조용하게 움직인다.

 

무엇보다 다른 인터넷 만화가 자기 스스로 내면에 고립된다면 이들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통을 강조하기 때문에 더욱 감동을 준다.

 

이 작품들은 기존의 칸 만화와는 다른 스크롤 방식만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이 더욱 주목받게 한다. 종이만화처럼 칸을 나누지 않고 자유로운 시각적 효과를 최대한 살린다. 이에 따른 색상의 변화, 장면의 전환과 역동적인 효과들이 더욱 작품에 몰입하게 만들고 결국 감동을 더욱 준다.

 

어떻게 보면 인터넷 만화는 가볍기만 하다라는 인식을 뛰어 넘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들 만화들은 기존의 인터넷 만화 같이 자극적이고 단순하고 일회성의 내용과 형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슴 한 구석을 따뜻하게 적셔주면서 생각할 여지를 남겨준다. <그대를 사랑합니다>와 <순정만화>는 사랑이야기를 통해  젊은이들에게는 두근거리는 설렘을 주고, 기성세대에게는 아름다운 사랑을 되새기게 한다.

 

여기에 사회적 메시지도 중요하다. <위대한 캣츠비>는 26세의 '백수' 주인공 캣츠비를 중심으로 같은 또래의 남녀 주인공들의 사랑을 다뤘는데, 작품의 무대는 철거가 진행 중인 판자촌이다. <26년>도 사회적 메시지와 개인의 감수성을 같이 적절하게 형상화했다. 여타 인터넷 만화들이 개인적인 심리에 천착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들이다.

 

그런데 강풀 작품을 비롯해 최근 큰 인기를 끈 작품에 대한 비판이 없을 수 없다.


강풀은 한 매체 인터뷰에서 "대중성이죠. 전 철저하게 대중 상업만화가예요"라고 한 적이 있다. 평소에 자주 하는 말이다. 지나치게 대중성을 추구하는 이들에 대한 비판은 당연할 수 있다. 정형화에 대한 '작가주의 만화'의 비판이 있어왔다. 잘 팔리지는 않지만 의미 있는 주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말에 반대하기는 쉽지 않다. 작가주의 계보로는 박흥용, 이희재, 신일섭, 오영진, 석정현, 최규석 등으로 볼 수 있겠다.

 

또한 작가와 작품에 대한 논평 외에 인기 있는 대중적 작품만 선호하는 문화 산업 의사결정자들에 대한 비판도 있다. 만화 원작이 언제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아파트>를 정작 영화로 만들었지만, 원작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14만 명 관객 동원에 머무는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다세포 소녀>도 마찬가지였다. 만화와 영화는 매체 성격이 다르다. 새삼스러운 이야기는 아니라고 해도 여전히 인터넷 인기에 힘입어 무조건 영상화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안에도 보낸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2007.09.13 15:50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데일리안에도 보낸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강풀 #웹툰 #인터넷 만화 #강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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