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겉표지미디어2.0
소설 <죽이러 갑니다>는 버스 속의 한 승객이 "저요? 저는 지금 사람을 죽이러 갑니다" 라고 말하는 데서 시작된다.
단순히 스쳐 지나가며 겪을 수 있는 흔한 이런 황당한 시추에이션은 사실 이 작품 전체를 뒤덮고 있는 테마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호러도 아니오, 스릴러도 아니다. 단지 문득문득 우리의 삶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살짝 살짝 스케치한 것에 불과한 보고서일뿐이다.
결혼 전 이후에도 일을 계속하겠다는 자신의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약속을 남편이 깼을 뿐만 아니라 시댁으로 돌아가는 일은 절대 없다고 하다니 결국은 백화점, 슈퍼마켓 하나 없는 시골마을 시댁 근처로 옮긴 것에 힘들어하던 '구리코'.
그렇게 낳고 싶던 아이를 낳아서 기뻤음에도 점점 아이에 집착하고 자신의 꿈따위는 하찮게 여기게 되는 자신을 견뎌낼 수 없던 '히로에와'. 이들은 모두 시어머니를 죽이고 싶거나 아이를 죽이고 싶다고 이야기를 내뱉는다. 그러나 이들의 말을 잘 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사실 시어머니나 아이를 죽이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현실 속에 조금씩 물들어가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라는 건 그저 현실 속에 매몰되어 가는 자신에 대한 동정심에 다름 아닌 말이다.
구리코는 자신의 꿈따위는 하찮게 여기는 남편에게서 떨어져 어쩌면 다시는 그에게 돌아오지도 않을 지도 모른 채 자신만의 여행을 떠난다. 그 정착지가 친구 히로에와의 집이며 종착지는 어릴 적 스승이었던 시루야마가 있는 병원이다.
도입부에서 들려주었던 누군가를 죽이러 간다는 말은 계속해서 구리코의 머릿속에서 뱅글뱅글 돈다. 그것은 히로에와의 대화의 테마 역시 누군가 죽이고 싶다,,였고 기어이 구리코는 진정 죽이고 싶은 상대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무런 이유없이 자신을 괴롭히던 선생이었다. 이 중요한 순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니 찰나라고 해두자. 그것은 구리코가 자신의 꿈따윈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남편과 계속 살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떠날 것인가 결심하는 계기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을 괴롭히던 선생을 찾는 여행을 떠난다. 어쩌면 뜬금없이 보일 지 모르는 이러한 구리코의 행적은 사실 필연적인 것이다.
용서하기 위해 어딘가 계속해서 떠나고 누군가를 찾고 헤매는 구리코의 모습에서 인간의 연약함을 새삼 깨닫는다. 인간은 약하다. 과거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구리코를 괴롭히던 시루야마 선생은 바로 앞에서 구리코가 "사람들은 당신이 어서 죽어버렸으면 바란다."는 말을 전달하는데도 단지 미소를 지을 뿐이다. (물론 외견상으로 이 미소는 정신을 놓아버린 선생의 의미없는 미소일 수도 있겠다)
더욱 그런 그녀를 괴롭히고 싶다는 구리코의 발언은 과거 구리코를 아무런 이유없이 괴롭히던 선생이나 무방비상태인 선생을 더욱 괴롭히고 싶어하는 구리코를 동급으로 올려놓는다. '선생=구리코=인간'이라는 등식을 성립하게 하는 꼴이라고 해야 될까.
그럼에도 난 삶이 좋다. 사람이 좋다. 내가 좋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인정해주지 않아 자신들의 취향을 권하는 가족들의 손짓에서 쓸쓸함을 느껴도 아직 재능이 있는지조차 몰라 이 길을 계속 걸어가도 되는가, 고민하게 만드는 나의 처지가 나를 압박해와도 난 내가 좋고 이 삶이 좋고 사람들이 좋다. 그것이 내가 삶 내내 미소 짓고 살아가는 삶의 원동력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죽이러 갑니다
가쿠타 미쓰요 지음, 송현수 옮김,
Media2.0(미디어 2.0),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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