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문제는 '조직' 아니라 '바람'이야!

범여권 1위 자리 내준 손학규의 기로... 중도하차?

등록 2007.09.19 11:17수정 2007.09.19 12:26
0
원고료로 응원
 16일 오후 충북 청주시 상당구청에서 열린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충북/강원지역 국민경선'에서 손학규 후보와 정동영 후보가 나란히 앉아 있다.

16일 오후 충북 청주시 상당구청에서 열린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충북/강원지역 국민경선'에서 손학규 후보와 정동영 후보가 나란히 앉아 있다. ⓒ 권우성

16일 오후 충북 청주시 상당구청에서 열린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충북/강원지역 국민경선'에서 손학규 후보와 정동영 후보가 나란히 앉아 있다. ⓒ 권우성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은 지난 주말 제주.울산.강원.충북 등 4개 지역 경선을 거치면서 '손학규 대세론'에서 '정동영 대세론'으로 넘어갔다. 정 후보가 손 후보를 큰 차이로 따돌리고 1위를 한 반면, 손 후보는 강원·충북 지역 경선 득표 합계에서 '꼴찌'를 하는 수모를 당했다.

 

경선 결과는 급기야 여론조사 지지율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동아일보>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코리아리서치센터(KRC)에 의뢰해 지난 17일 실시한 여론조사(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응답률 12.4%)에서 정동영 후보가 10.2%를 기록한 반면, 손학규 후보는 4.5%에 그쳤다.

 

'범여권 후보 중 누가 가장 낫다고 보느냐'는 질문에서도 응답자의 21.7%는 정 후보를, 18.5%는 손 후보를 선택했다. 손 후보가 한나라당을 탈당하기 직전부터 지켜왔던 '부동의 범여권 1위' 자리를 정 후보에게 내준 셈이다.

 

"지금까지 경선은 당 의장 선거" 성토

 

정동영 후보측은 벌써부터 본선을 겨냥, '이명박 후보 때리기'에 집중했다. 반면 손학규 후보측은 연일 선거인단 동원경선 의혹을 제기하며 정 후보를 공격하고 있다.

 

손 후보측 우상호 대변인은 "정치개혁의 기수로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당 의장 출신이 하는 일마다 어쩌면 이럴 수가 있느냐는 황당함이 있다"며 "'(선거인단 명부를 박스째 대리접수시키는) 박스떼기'부터 시작해 투표율 공개 압박, 유리한 룰 만들기, (선거인단을 실어나르는) '버스떼기'까지 문제가 줄을 잇고 있다"고 비판했다.

 

18일 대전에서 열린 후보 정책토론회에서 손 후보도 동원경선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손 후보는 "지금까지 치러진 경선은 대통령 후보를 뽑는 게 아니라 당 의장 선거였다"며 "조직에 의해 선거인단 모집해 차로 실어나르고 하는 동원선거였다는 걸 솔직히 인정해야 하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특히 정동영 후보를 향해서는 "대선후보를 뽑는 경선인데, 열린우리당 최대 계파 의원들이 총선을 보장 받기 위해 대장 선거를 하고 있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실제 정동영 후보 캠프의 최고고문직을 맡고 있는 이용희 국회부의장의 지역구(충북 보은·옥천·영동)에서 충북 전체 투표자의 40%가 넘는 투표율이 나왔다. 정 후보는 이 지역에서 3840표(78.8%)를 받았다. 사실상 '몰표'인 셈이다.

 

그런데 정동영 후보는 이 지역에서 655표를 얻은 손 후보보다 3185표를 더 얻었다. 정 후보가 충북에서 얻은 전체 표는 6334표, 2920표를 얻은 손 후보보다 3414표를 앞섰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정 후보에 대한 몰표가 없었다 하더라도 박빙이기는 하지만, 정 후보가 손 후보를 앞선 것으로 나타난다.

 

또 손 후보는 충주에서 615표를 얻은 반면 정 후보는 174표를 받아, 정 후보측으로부터 '충주에서는 손학규 몰표가 나왔다'는 역공을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몰표나 동원선거가 문제일 수는 있지만, 과연 그것 때문에 손학규 후보가 정동영 후보에게 진 것이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우상호 대변인도 "특정군의 몰표로 전체 표심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지, 손학규 후보가 동원선거 때문에 졌다는 것을 얘기한 것은 아니다"고 인정했다. "낮은 투표율 때문에 민심이 득표 결과에 반영되지 못해서 졌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낮은 투표율도 이미 예상된 결과다. '신정아 쓰나미', '정윤재 게이트' 등 여러가지 악재에 태풍 '나리'까지 가세하면서 선거인단의 발을 묶었다. 무엇보다 예비경선 순위가 뒤바뀌는 어처구니 없는 해프닝에 이어 대리접수 논란, 유령 선거인단 모집, 몸싸움 등 구태가 연출되면서 경선 자체가 흥행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범여권 대선후보 여론조사 지지율 1위를 지키며 '대세론'을 이어왔던 손 후보가 정 후보는 물론 이해찬 후보와 박빙의 승부를 벌이며 고전하는 이유는 뭘까?
 
우상호 대변인은 "단 한 번도 전국 선거를 치러보지 않은 손 후보가 이쪽(범여권)으로 들어온 지 한달 만에 연고도 없는 지역에서 일곱 번의 전국 선거를 치러본 정 후보를 상대로 9000여표를 만들어 낸 것은 의미있는 성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우 대변인은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따끈따끈한 지지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은 아직도 한나라당 전력시비 때문에 (전통 지지층의) 마음을 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동아일보>의 같은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중 대통합민주신당 지지자만을 뽑아 분석하면 정 후보(37.1%)가 1위를 유지했지만, 2위는 이해찬 후보(20.2%)가 차지했고, 손 후보(12.9%)는 3위였다. 경선이 본격화되면서 전통적인 범여권 지지층의 표 결집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손학규 "마음에 상처 드린 것 사죄"... 진정성 통할까?

 

a  5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대통합민주신당 예비경선에서 손학규 정동영 이해찬 한명숙 유시민 후보 5명이 5일 예비경선을 통과, 본경선에 진출했다. 예비경선에서 1위를 한 손학규 후보와 2위를 한 정동영 후보가 악수를 하고 있다.

5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대통합민주신당 예비경선에서 손학규 정동영 이해찬 한명숙 유시민 후보 5명이 5일 예비경선을 통과, 본경선에 진출했다. 예비경선에서 1위를 한 손학규 후보와 2위를 한 정동영 후보가 악수를 하고 있다. ⓒ 이종호

5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대통합민주신당 예비경선에서 손학규 정동영 이해찬 한명숙 유시민 후보 5명이 5일 예비경선을 통과, 본경선에 진출했다. 예비경선에서 1위를 한 손학규 후보와 2위를 한 정동영 후보가 악수를 하고 있다. ⓒ 이종호

손학규 후보는 충북.강원 지역 경선이 있던 지난 16일 '표'가 있는 원주나 청주가 아닌 광주로 달려갔다. 손 후보는 무등산에 올라 "광주(정신)을 훼손하는 정치세력과 함께 했던 사실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분이 많은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여러분 마음에 상처를 드린 것을 마음 깊이 사죄드리고 용서를 구한다"고 '한나라당 전력'에 대해 사과했다.

 

당초 손 후보의 '광주 사과' 계획은 첫 경선이 시작되기 이틀 전인 13일 결정됐다. 우상호 대변인은 "주말 4연전에서 최소한 1승 이상을 올리고 광주에 가서 사과한다는 것이 원래 계획이었다"며 "결국 승리하지 못하고 지는 바람에 급하게 광주에 간 것처럼 됐다. 우리도 이정도까지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워 했다.

 

"'광주 사과'가 너무 늦게 잡힌 것 아니냐"는 지적에 우 대변인은 "그동안 손 후보가 '상처를 줬고, 빚을 졌고, 그 빚을 갚겠다'고 몇 번을 얘기해도 주목을 안하더라"며 "그래서 경선 레이스가 시작되면 해야겠다고 해서 계획을 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점도 시점이지만, 손 후보의 진정성이 얼마나 범여권 전통 지지층에 호소력있게 다가가느냐도 문제다. 상대 후보들은 합동토론회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손 후보의 정체성을 흔들고 있다.

 

18일 대전 합동토론회에서도 정동영 후보는 "양극화와 비정규직 양산의 뿌리는 신한국당"이라며 "IMF 때 국무위원이었고, 신한국당에 몸 담았던 것에 대해 사과할 필요가 있다"고 손 후보를 압박했다.

 

이에 손 후보는 "IMF 때 각료한 것은 충분히 사과 할 수 있다"면서도 "그런데 그때 얘기를 지금까지 해서 언제 미래로 나아가겠느냐"고 반박했지만, 개운치 않았다.

 

이해찬 후보도 손 후보 공격에 가세했다. 이 후보는 "손 후보가 앞서갔다는 언론 보도가 잘못된 것임이 밝혀졌다"며 "손 후보가 한나라당을 탈당해서 나온 것이 정당정치에 어긋나는 일이어서 선거인단으로부터 지지를 못 받은 것 같다"고 손 후보를 공격했다.

 

그러나 손 후보는 "한나라당에 있을 때 제가 잘 못했던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두 분도 열린우리당으로는 대선도 치를 수 없다고 해서 문닫고 여기서 같이 만난 것 아닌가. 새 길에서 힘을 합쳐야 하는데, 자꾸 그런 얘기하는 건 맞지 않다"고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이에 이해찬 후보는 "광주에 가서 사과를 했지만, 광주에 많은 희생을 치르게 한 세력이 집권하고 있는 곳에 입당해 여러 수혜를 받은 경력이 중요한 것"이라며 "사과를 근거로 표를 달라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손 후보를 몰아붙였다.

 

손 후보가 "YS(김영삼 전 대통령이)가 집권한 문민정부는 분명 민주세력의 한 전통을 갖고 있었다"고 해명했지만, 이 후보는 "문민정부는 3당합당, 야합이라고들 했다"며 "손 후보가 그 당에 들어가 처음 정치를 시작한 것이 호남 사람들 보기엔 이해가 안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 후보는 "손 후보가 정말 (광주에서) 표를 얻으려고 한다면 그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적 대안이나, 구체적 정치 철학을 내놔야 그분들이 동의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조직은 바람을 이기지 못한다"

 

손학규 후보는 한나라당에서의 전력에 본선에서 '효자'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있는 중도층을 자신이 끌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손 후보의 인식이 스스로의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캠프의 한 관계자는 "손 후보의 '효자론'은 대세론에 안주해 본선만 생각하고 경선을 너무 안일하게 봤기 때문"이라며 "한나라당을 탈당해 범여권으로 넘어왔을 때 바로 한나라당 전력에 대해 진솔한 사과를 했어야 했는데, 때를 놓친 것 같다"고 안타까워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조직은 바람을 이기지 못한다"며 "대통합신당에 합류한 뒤에도 지지율 정체 현상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른바 '손풍'이 만들어지면서 지지율이 조금만 더 올랐더라도 조직.동원선거가 맥을 못췄을 것이라는 아쉬움이다.

 

실제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당 이인제 후보의 탄탄한 조직력은 결국 '노풍(노무현 바람)'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캠프 내에서는 "경선이 계속 구태정치로 흐른다면 손 후보가 중대한 결심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을 탈당하면서 '새로운 정치'를 기치로 내걸었던 손 후보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 새로운 정치세력의 규합에 나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손 후보도 18일 밤 광주에서 지지자들과 '호프타임'을 갖고, "경선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그러나 우상호 대변인은 "말도 안된다"며 '중도하차' 가능성을 전면 부인했다. "29일 광주-전남 경선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것이다. 손 후보에게는 지금 '정동영'과 '광주'를 넘을 수 있는 '바람'이 필요한 셈이다.

#손학규 #정동영 #광주 #바람 #대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AD

AD

AD

인기기사

  1. 1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2. 2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3. 3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4. 4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5. 5 [단독] "김건희 사기꾼 기사, 한국대사관이 '삭제' 요구했지만 거부" [단독] "김건희 사기꾼 기사, 한국대사관이 '삭제' 요구했지만 거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