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치 있는 함백산 정상서 맞이한 아침

[무박으로 돌아보는 태백 여행 ①] 함백산 일출과 해바라기 축제

등록 2007.09.20 09:47수정 2007.09.2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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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박여행은 가는 자체가 부담스럽다. 무박여행을 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체력이 담보가 되어야 한다. 그래도 무박여행을 선호하는 이유는 출발지에서 보다 먼 거리에 있는 여행지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힘이 들더라도 여행을 통해 얻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여행방법 중 하나다. 밤새 달려야 한다. 그것은 길고 긴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것과 같다. 지루함과 심심함이 동반 엄습하기도 하고, 때론 졸음이란 녀석도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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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백산 정상 표지석(1,572m) 구름이 운치를 자아내고 있는 함백산 정상 ⓒ 문일식


쉽지않은 여정이지만 그래도 함백산 일출을 보자는 얘기에 귀가 솔깃해진다. 8일 밤, 어느 정도 복잡한 고속도로를 벗어나 제천과 영월을 지나야 하는 국도로 접어든다.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가야하는 경우 주로 이용하는 길이다. 3번 국도는 고속도로처럼 길도 넓고 차량도 그리 많지 않아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다. 제천에서 영월까지 역시 국도가 4차선으로 넓어졌다. 예전보다 영월로의 진입이 쉬워지고 확고한 당일 여행권으로 자리잡았다.

태백으로 가는 길은 이제 영월에서부터가 문제다. 2차선 국도에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 거기다 국도 확장공사로 여기저기 위험구간이 참 많다. 새벽을 달리는 사람들에게는 음료수 하나 쉽게 구할 수 없는, 쉬어갈 곳이 마땅치 않은 곳이다.

영월에 들러 잠시 쉬면서 필요한 물품을 산 뒤 구불거리는 38번 국도를 올랐다. 졸음이 밀려와도 쉽게 졸 수 없는 곳이다. 건너편 차선에서 무섭게 달려오는 차들이 쏟아내는 불빛과 잘 보이지도 않는 굽은 길들…. 운전하는 이는 마치 스릴을 느끼는 듯하다.

영월에서는 3개의 국도가 함께 달린다. 석항삼거리에서 갈려 태백산을 지난 뒤 남쪽으로 내려가는 31번 국도와 정선군 남면에서 정선과 평창으로 접어드는 59번국도, 그리고 태백을 거쳐 동해까지 이르는 38번국도가 그것이다. 38번국도를 택해 민둥산을 갈 수 있는 증산을 지나고, 석탄의 고향이자 강원랜드가 있는 사북과 얼마 전 개장한 하이원스키장이 있는 고한을 지난다.

사북·고한을 지나면서 일부구간 개통된 널찍한 국도에 올랐다. 극히 일부구간이긴 하지만, 이 확장된 국도는 38번국도와 정암사로 가는 길이 갈리는 상갈래삼거리까지 이어진다. 늦가을의 차디찬 공기를 만끽했었던 정암사에는 새벽이 훨씬 지난 시간인데도 가로등이 대낮같이 밝혀져 있다. 이 새벽에 오는 사람이 있을까? 괜한 전기세 낭비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가지고 있던 정암사에 대한 흥이 확 깨졌다.


드디어 본격적인 오르막길이다. 정암사를 지나면 만항재로 오르는 길이다. 무려 1300m 남짓되는 고갯길이다. 만행재를 지나 화방재를 넘으면 바로 태백산에 이르게 된다. 만항재에 이르기 전 태릉선수촌 태백분촌방향으로 오르면 목적지인 함백산에 오를 수 있다.

새벽 1시 30분께 무려 1500m가 넘는 고지에 도달했다. 함백산은 1573m로 태백산보다 약간 높다. 차에서 내리자 나를 날려버릴 듯한 바람이 엄습했다. 추위가 느껴지고 서 있기 힘들 정도의 바람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으로부터의 두려움과 갑작스런 강풍에 몸을 던지듯 차안으로 들어왔다. 이제 날이 밝아질 때까지 잠을 보충해야 한다. 숙면을 취하기 위해 그리고 함백산까지의 무사운전을 축하하기 위해 맥주 한 캔을 기쁘게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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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간 과자봉지가 터질듯이 빵빵해져 있다 산이 높긴 높은지 가져간 과자봉지가 마치 터질듯 하다(1,550m 함백산 정상인근) ⓒ 문일식


지대가 높긴 높은가보다. 가져온 과자 한봉지가 배가 터질 듯하다. 통통해진 과자봉지를 이리 저리 만져보며 신기해 하기도 했지만, 터져서 과자눈이 내릴까봐 조심스레 발아래 내려놓았다. 침낭을 푹 뒤집어쓰고 잠을 청하는데, 살짝 열어논 차창 사이로 바람소리가 요란하다. 좁은 차안은 숨소리만 고요하게 흐르지만, 넓은 함백산 위로는 바람만이 새벽을 지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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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백산 정상에서의 일출 함백산 정상 바로 아래 송신소와 어울어진 일출 풍경 ⓒ 문일식


새벽 5시 30분. 역시 차안에서의 숙면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앞 좌석을 뒤로 제끼는 통에 밤새 한 번도 뒤척일 수 없었다. 눈을 뜬 그 시각, 저멀리 동쪽으로부터 붉은 기운이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다. 장엄한 일출이 시작되는 순간, 몸은 바빠지기 시작했고,조급증이 밀려왔다. 카메라 준비하고, 렌즈바꾸고, 삼각대까지 세워놓고 나서 동쪽을 바라보니 붉은 기운이 제법 퍼져 있었다. 구름이 많아서 아쉽긴 했지만, 그저 붉은 느낌만으로도 감동이 밀려왔다.

갑자기 송신탑사이로 붉은 기운을 잔뜩 머금은 해가 솟고 있었다. 급하게 망원렌즈로 갈아 끼우고, 셔터를 누르려는데 하필이면 그때 배터리가 밥달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아 하필이면 이 중요한 때에…." 배터리를 갈아끼우고 다시 카메라를 삼각대에 고정시키고 나니 그 붉은 해는 이미 구름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차 안에서는 허탈해하는 나를 보고 배를 잡으며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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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백산 정상에서 바라본 서쪽 풍경 산 아래쪽에 고한읍이보이고, 겹겹이 둘러쳐진 산세가 장엄하다 ⓒ 문일식


춥지만 함백산 정상에서의 아침 느낌은 참 좋다. 문득 그리이크의 페르귄트 모음곡의 첫 번째 곡인 아침기분이 떠오른다. 추위에 팔을 부비며 바라보는 산아래의 풍경은 아름다움 그 자체다. 산들이 어깨동무를 하며 겹겹이 늘어서 있고, 깊은 골짜기마다 구름을 머금어 제법 운치가 있다.

저 아래 고한읍내는 이제 막 아침을 맞을 준비에 분주한 느낌이 든다. 어제 새벽을 달려 온 길들이 보인다. 그 길을 따라 시선을 보내니 어느새 길은 보이지 않고 끝도 보이지 않는 산 너머다. 구름만 아니었다면 동해 저쪽으로 바다도 보였을 텐데….

함백산 정상에서 태백을 향해 내려갔다. 만항재를 거치지 않고, 태백 시내로 바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다. 유난히 공사차량들이 많이 다니고 있어서 도로공사를 하나 싶었더니 함백산 동쪽을 잘라 만드는 서학리조트 공사장이다. 지난해 정선 깊은 골짜기에 스키장이 들어서더니 이제 함백산 마저도 사람의 영역으로 들어서려 하고 있다.

사람은 갈수록 편해지려만 하고, 그 편한대로 이용하려고만 한다. 그 반대로 자연은 숨쉴 공간을 잃어가고, 사람들의 틈바구니속에서 힘겹게 연명하며 그 원초적인 색깔을 잃게 된다. 자연이 원형을 잃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는 잘 알터. 어차피 개발은 시작된 것이지만, 좀 더 자연친화적인 공간으로 만들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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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 고원자생식물원 입구(해바라기축제장) 태백 고원자생식물원으로 들어가는 길에 차 한대가 달리고 있다. ⓒ 문일식


태백시내에서 35번국도를 타고 가다보면 구와우마을 고원자연식물원이 나온다. 해바라기 축제가 열리고 있는 곳이다. 해바라기라는 꽃으로 열리는 유일한 축제장이다. 매표소 입구까지는 좁은 비포장도로다. 좁은 길이 굽이치는 모습이 자못 인상적이다.

지난해에 왔을 때에도 폭우로 인해 망가진 해바라기 밭을 보았는데, 이번에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 것은 초입에 있는 해바라기 군락 때문이었다. 역시나 많이 상해 있었다. 더군다나 앞서 왔던 사람들이 도로 나오는 모습을 본 직후였다. 근래 비가 많이 와서 그렇단다. 5000원이나 되는 입장료를 앞에 두고 심각하게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마찬가지이리라. 어떤 여행에 대한 최고치를 상상하는 것은.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지에 대해 실망을 많이 한다. 자기가 생각하고 상상한것만큼 못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자연이 테마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있는그대로를 느끼고 즐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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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에 앉아있는 나비 해바리기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나비 ⓒ 문일식


해바라기는 향일화(向日花), 조일화(朝日花)라고도 부른다. 해바라기라고 부르는 것은 중국의 꽃이름인 향일규(向日葵)를 번역한 것이라 한다. 즉 '해를 향하는 해바라기'라는 뜻이다. 흔히 해바라기는 해를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해바라기의 줄기와 잎의 끝부분이 태양을 따라 움직인다고 한다. 즉, 광합성을 하기 위해서인데, 신기하게도 태양을 따라 움직이는 줄기와 잎은 어둠이 내린 뒤에는 다시 동쪽으로 되돌아 온다고 한다.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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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빽빽히 들어선 숲길 산책로 축제장 입구에서 원두막까지 가는 길에 만나는 숲길 풍경 ⓒ 문일식


3.5km정도 되는 산책로를 천천히 걸어 돌아나오는데는 약 1시간 반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해바라기가 많이 상해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원형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원두막으로 가기까지 오롯한 숲길을 걷게 된다.

해바라기를 떠나서 숲이 뿜어내는 신선한 기운에 취해 길을 걷는다. 그 길을 걸으면서 심호흡을 얼마나 했었던가…. 숲 속에는 벤치도 있다. 벤치에 앉아서 숲이 뿜어내는 피톤치드를 맘껏 취하라는 배려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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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하늘과 어울어진 해바라기 군락 해바라기 축제장 초입에서 바라본 풍경 ⓒ 문일식


해바라기는 푸른하늘과 특히 잘 어울린다. 파란색과 노란색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조합이다. 거기다 짙푸는 녹색물결과 조연을 자청한 구름 한점은 화룡점정한 듯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낸다.

원두막에 도착하면 해바라기 축제장 최고의 절경을 만날 수 있다. 원두막에 올라 바라보는 구와우마을의 전경은 파란 하늘과 멋진 조화를 이룬다. 한 조각의 뭉게구름이 조금 아쉽다. 수채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풍경을 보고 나면 광활한 해바라기 밭을 바라보며 잠시 오르막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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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막에서 바라본 광활한 해바라기 군락 원두막 위에 오르면 광활한 해바라기 군락이 한눈에 보인다 ⓒ 문일식


높은 곳으로부터 아래쪽 해바라기 밭의 전경을 굽어보기도 하고, 난간 바깥쪽으로 펼쳐진 웅장한 산세도 보이기도 하고, 넓은 목초지가 반기기도 한다. 꽤 높은 곳까지 올라온 듯하다. 발아래의 풍경은 대관령목장에 버금가는 목가적 풍경을 연출한다. 이제 사람들이 올라오는 저 길로 내려가야 한다.

해바라기 축제장에 들어섰을 때의 찌푸렸던 얼굴이 이제는 해바라기만큼이나 환해졌다. 상상속에 펼쳐진 활짝핀 해바라기의 풍경은 아니었지만, 언덕위에서 바라본 광활한 풍경이 어느새 가슴속에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해바라기 축제장 입구에는 '속상합니다'로 시작하는 애절함이 가득한 글이 적혀 있다.

해바라기 축제를 하려고 노력을 많이 기울였는데, 찾는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의 풍경을 연출 못한 것에 대한 죄스러움이라고 해야할까? 하지만, 어쩔 것인가…. 자연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을…. 오는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고, 줄기가 쓰러질 정도로 부는 바람을 멈출 수는 없다. 그것이 바로 우리네 인간들의 한계다. 그래서 자연은 자연 그대로를 즐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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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숙인 해바라기군락 산책로 끝지점에서는 고개를 정중히 숙이고 있는 해바라기 군락을 만난다. ⓒ 문일식


문득 산책로 마지막 해바라기 군락의 모습이 떠오른다. 미안해하는 듯 고개를 떨구고 있는 해바라기의 모습….

"미안해, 다음에 올때는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 있을께."

산책로의 끝인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덧붙이는 글 | ※ 태백 고원자생식물원에서 열리는 해바라기 축제는 9월 30일까지 열립니다.
※ 일반인 기준 입장료 5000원(주차료 무료)
※ 산책로를 따라 돌아보는데는 약 3.5km정도로 1시간 30분에서 2시간정도가 소요됩니다.
※ 매표소를 지나면 편의시설이 전혀 없습니다.(특히 화장실)


덧붙이는 글 ※ 태백 고원자생식물원에서 열리는 해바라기 축제는 9월 30일까지 열립니다.
※ 일반인 기준 입장료 5000원(주차료 무료)
※ 산책로를 따라 돌아보는데는 약 3.5km정도로 1시간 30분에서 2시간정도가 소요됩니다.
※ 매표소를 지나면 편의시설이 전혀 없습니다.(특히 화장실)
#함백산 #태백 고원자생식물원 #해바라기축제 #구와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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