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에 일하기 싫으면 회사 그만둬!"

휴일에도 근로를 강제받는 이주노동자들

등록 2007.09.21 14:05수정 2007.09.21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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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이주노동자 문화 축제가 있거나 큰 행사가 있을 때면 행사의 주요한 부분을 책임지거나 공연을 하게 된 이주노동자로부터, 혹은 구경이라도 하기를 원하는 이들로부터 '사장님께 전화해 주세요', '회사로 협조 공문 좀 넣어주세요' 등의 부탁을 받는 일은 다반사입니다.


얼마 전에 끝난 '용인다문화축제'를 앞두고도 같은 일들이 몇 건 있었습니다. 그중 인도네시아 전통춤을 추기로 돼 있던 다마리아니(Damariani)는 공연을 앞두고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회사에서 일요일에도 일을 해야 하니 절대 외출은 안 된다고 못을 박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몇 주 전부터 고향 친구들과 전통춤을 연습하며 공연을 약속했던 다마리아니 입장에서는 휴일에 근로를 강제하는 사장에게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전했지만, 사장은 "니들이 무슨 공연이야. 일하라면 일이나 할 것이지"하며 일요일에 일을 하지 않을 거면 회사를 그만두라고 했다고 합니다.

a  인도네사아 전통춤 마까사르 지역의 춤을 다마리아니와 그 친구들이 추고 있다.

인도네사아 전통춤 마까사르 지역의 춤을 다마리아니와 그 친구들이 추고 있다. ⓒ 고기복


그 일로 다마리아니는 공문을 통해 다문화축제의 성격과 자신의 역할에 대한 안내를 해 줄 것을 부탁해 왔습니다. 그래서 축제기획위원회에서는 해당업체에 협조공문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공연을 마쳤던 다마리아니는 핸드폰을 건네며 사장에게 자신이 공연에 참가했음을 확인하는 전화를 해 줄 것을 요청해 왔습니다.

'그런데 받아든 전화로 인사를 끝내기도 전에 상대 측에서는 "당신이 뭔데 상관이야. 일 싫다고 나갔으니 알아서 하라고 그래"하며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끊어버리더군요.

휴일에 근무를 강제할 수 있는 권리가 고용주에게 없음에도 다마리아니의 고용주처럼 '외국인들은 휴일에도 일하라면 해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하다는 것을 상담을 통해 쉽게 접하게 됩니다.


심지어 노동절에 하루 쉰다고 이틀치 급여를 떼고, 심지어는 허위사실을 조작하여 경찰에 신고하여 협박을 하기까지 하는 몰상식한 고용주를 본 적도 있습니다.

그들의 기본적인 생각은 이주노동자들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존재이어야 하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 같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로마에 왔으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말이 모순되는 것은 '한국의 근로기준법'은 국적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순응주의적 요구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도 쉬는 날에 쉬고, 야간 근무도 계속하기 싫으면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존재인데, 말로는 법을 따르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고용주 임의로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돈을 벌러 온 입장에서야 일할 직장이 있고, 그 직장이 일거리가 많다는 것은 행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휴일에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하고, 근로를 강제 당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서는 휴일에도 일해야 하는 현실이 서럽기만 합니다.

이처럼 이주노동자들은 보통의 경우 한국인들이 일을 하려 하지 않는 휴일에도 일을 할 것을 요구받는 경우가 많은데, "일을 하지 않을 거면 회사 그만둬!"라는 말이 너무 쉽게 나오는 현실에서, 어지간해서는 그러한 요구를 거절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현실을 보며 십계명의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성경이 쓰인 4천 년 전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십계명에는 안식을 규정을 말하며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노동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자본가의 입장에서야 하루라도 쉬겠다는 노동자들의 요구가 마뜩찮을 수도 있겠지만, 이미 4천 년 전에도 사회적 약자인 이방 나그네까지 포괄하여 휴식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는 것은 인간의 무한한 욕심에 의해 피조물로서의 인간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이번 추석 연휴에도 수출 물량을 맞추느라, 납품 일자를 맞추느라 근로를 강제 당할 이주노동자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중 한 명에게 형편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제가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 추석 때 언제부터 쉬어요?"
"몰라요."
"아직 그런 말 없어요? 물어 보세요."
"아니요. 그런 거 물어보면 싫어해요. 쉬라고 할 때 쉴 거예요."


이미 한국 물정을 알대로 알아버린 그의 답변에 마음이 울적해졌습니다.
#추석 연휴 #휴일 #안식일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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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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