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주의자를 설득하려면...

위기의 한국교회, 근본주의 해법을 찾아야 산다

등록 2007.10.02 13:23수정 2007.10.02 13:26
0
원고료로 응원
아프간 인질 피랍사태를 겪으면서, 관행처럼 행해지던 한국 개신교의 낡은 선교 패턴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 나오고 있다. 다행이다. 이 일을 계기로 자의든 타의든 개신교 스스로 돌아볼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 자체가 어찌보면 고마운 일인지도 모른다. 위기는 곧 기회라했잖은가? 앞만 향해 폭주하던 '개신교 기관차'가 일단 잠시 멈짓하며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얻었다는 건 완전히 망할 고비를 간신히 넘긴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번 사건이 위기의 한국 교회에 변화의 시발점이 되려면, 무엇보다 '근본주의' 또는 '문자주의'자들을  깨우는 일이 급선무이다. 성서우상숭배에 빠져버린 문자주의자들이 한국교회에 지금처럼 그대로 넘쳐나는 한, 또 다시 불행한 사태가 계속 재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선교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이라고.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태복음 28:19)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지 않은가? 문자 그대로 이 명령을 준행해야 하기 때문에 해외 선교열정이 불타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이 읽는 똑같은 성서에는 이런 예수님의 말씀도 나온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표징이 따를 터인데, 곧 그들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으로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들며, 독약을 마실지라도 절대로 해를 입지 않으며…"(마가복음16:18)

'설마 아무리 예수님 말씀이라지만, 진짜 뱀을 집거나 독약을 마시진 않겠지'라고 생각하면 크게 오산이다. 문자주의자들 중에는 실제로 이 '말씀'을 금과옥조나 되는 교리마냥 문자 그대로 신봉하면서 실천하려 애쓰는 교파까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미국 애팔래치아 산간지방의 오순절 계통의 한 일파인데 일명 '스네이크 핸들러(Snake Handlers)'라 불린다. 신앙의 위대한(?) 능력을 시연해 보이고자, 예배 도중 방울뱀 같은 독사들을 집어 들고 흔들곤 하기에 당연히 종종 큰 사고가 난다.

이처럼 근본주의자들은 자신이 믿는 신앙을 '절대' 위치에 놓기 때문에 독선과 오만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들에겐 좀체 다른 생각이 끼여들 틈이 별로 없다. 이게 참으로 어려운 과제다.


근본주의자를 설득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 대화, 토론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서 그들에게 다가설 수 있는 방법은 '햇볕정책'인가? 무엇보다 근본주의자들의 두려움, 갈망을 읽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들은 왜 맹목적 신앙노선에서 한치의 타협, 양보를 하려들지 않는가? 그들의 '철저한 신앙'이 눈과 귀를 멀게 해서인가?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근본주의자들 중에는, 그가 과연 신앙인인가 싶을 정도로 세속사업에서 굉장히 이악스런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이 있다. 이는 그들 가운데 진정 신앙심이 투철한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근본주의자들의 집념은, 잘못된 정보, 만남, 욕망이 그들 어깨에 지워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가령, 로켓을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은 달나라에 옥토끼가 산다고 굳게 믿을 수 있다. 달을 다녀온 우주인이 그를 만나, '달은 지구의 위성에 불과하고 옥토끼 같은 동물이 결코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고 해도 그는 헛소리 말라며 박박 우겨댈지도 모른다. 잘못된 정보와 서툰 경험이 그의 머리를 지배하는 한, 이 사람은 마치 화석같은 근본주의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근본주의자와 토론하게 될 때 거듭 절감하게 되는 바는 서로 읽은 책과 경험이, 만남(관계망)이 너무 다르기에 생각의 차이가 크게 난다는 점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생각의 집'은 계속적인 다양한 자극으로 얼마든지 허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만 근본주의자와 대화할 때 적실한 언어를 습득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이를테면 "천당과 지옥이 없는데 왜 교회를 다녀야 하는거죠?"라는 질문을 받으면, "아빠나 엄마가 사고로 사망하셨다고 해서 멀쩡한 나도 세상 살기를 포기해야하나요?"라는 식으로 단순하게 맞받아 칠 수 있어야 한다.

보통 진보주의 신앙노선에 서 있는 사람들은 생각이 무지 복잡하여 단순화에 항상 실패한다. 근본주의가 맹위를 떨치는 것도 그들의 주장이 억지가 많더라도 간명하기 때문이다. '예수천당, 불신지옥', 이 얼마나 단순한 구호인가? 유명한 사영리 전도책자를 봐도 덧셈 뺄셈하듯 너무나 쉽게 되어 있다.

근본주의자를 설득하려면 이에 대한 치밀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을 설득하려 들면 얼마 안가 토론은 중단되고 만다. 근본주의자들은 대개 충분한 토론시간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스탠리 존스 선교사(<인도의 길 위를 걷는 예수> 저자)처럼, 당신이 알고 있는 교리 대신 '예수 그리스도'만 전하라고 하여도 그들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어떤 예수'를 전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문제가 뒤에 남아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일단 신뢰와 공감대를 얻는 것이 필요하다. 신뢰가 쌓이면 생각이 좀 다른 이야기를 할지라도 최소한 귀를 열고 들으려 하는 것이 보통 사람의 습성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송고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송고했습니다.
#근본주의 #문자주의 #성서우상숭배 #아프칸 피랍사태 #예수천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연봉 천만원 올려도 일할 사람이 없어요", 산단의 그림자
  2. 2 은퇴 후 돈 걱정 없는 사람, 고작 이 정도입니다
  3. 3 구강성교 처벌하던 나라의 대반전
  4. 4 왜 여자가 '집게 손'만 하면 잘리고 사과해야 할까
  5. 5 내 차 박은 덤프트럭... 운전자 보고 깜짝 놀란 이유
연도별 콘텐츠 보기